지난 4월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리고’가 공개 직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TOP 10 시리즈’ 1위를 지키며 한국 오컬트 시리즈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한국 오컬트의 계보가 무당과 봉인, 원한으로 이어져 왔다면 이제는 그 계보에 전혀 다른 언어를 새겨 넣은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공포의 무대가 스마트폰 화면 위로 올라온 지금, ‘기리고’의 흥행이 심상치 않습니다.

욕망의 알고리즘, 그 잔인한 주구(呪具) 기리고
과거의 저주가 오래된 고서나 먼지 쌓인 항아리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은 이제 익숙한 공식이 되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신작 ‘기리고’는 우리 손안의 가장 친숙한 매체인 ‘스마트폰 앱’을 저주의 제물로 삼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데요. 서린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퍼진 이 앱의 사용법은 기괴할 정도로 간편합니다. 앱을 켜고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입력한 뒤, 카메라를 응시하며 소원을 말하는 셀피 동영상을 찍기만 하면 되죠. 가장 현대적인 인터페이스가 가장 원초적인 무속 신앙과 결합하는 순간, 공포는 화면을 뚫고 나와 피부에 닿을 듯 선명해집니다.
생명을 담보로 나의 욕망을 채우는 이 잔인한 ‘디지털 주구(呪具)’는 장난처럼 시작한 클릭 한 번이 돌이킬 수 없는 저주가 되는 과정을 통해 무한 경쟁 사회 속 10대들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비춥니다. 결과를 가늠하지 못한 채 욕망 앞에 먼저 손을 내미는 미숙한 판단, 그 찰나의 희열 뒤에 찾아오는 서늘한 카운트다운. ‘기리고’는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치명적인 결말로 이어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죠. 어쩌면 이 학생들의 모습은 욕망 앞에서 멈추지 못하는 현대인의 가장 솔직한 민낯과 닮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낯설어서 더 강렬한, 새로운 얼굴들의 발견
정형화된 연기톤을 벗어난 신예들의 등장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하이틴 호러 그 이상으로 끌어올립니다. 극의 중심을 지탱하는 것은 우정으로 다져진 다섯 친구들, 그리고 그 관계가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 빚어내는 섬세하고 입체적인 서사입니다. 육상부 유세아 역의 전소영은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단단한 눈빛으로 극의 흐름을 이끌고, 그의 남자친구 김건우 역의 백선호는 세아만을 향하는 진득하면서도 따뜻한 존재감을 내뿜습니다. 모델로 시작해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굳혀가고 있는 강하준 역의 현우석은 다섯 친구들과 무당인 누나 사이를 잇는 균형 잡힌 연기로 극에 안정감을 더하죠. 가장 먼저 기리고의 저주에 희생되어 파격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최형욱 역의 이효제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각기 다르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다섯 친구들의 관계는 공포라는 장르 안에서도 드라마를 더욱 탄탄하고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악귀보다 더 무섭고, 저주보다 더 끈질긴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임을 이들은 온몸으로 증명해내죠.


기존의 전형적인 무당 이미지에서 탈피해 현대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인 햇살 역의 전소니와 그의 든든한 조력자 방울 역의 노재원 역시 빠질 수 없는 핵심 인물인데요. 스릴 넘치는 전개 사이사이 드러나는 두 사람의 다정한 호흡과 촘촘한 관계성은 극의 완성도를 한층 높이며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게 합니다.
‘기리고’가 기성 배우의 무게감 대신 선택한 새로운 얼굴들의 에너지는 마치 실제 사건을 목격하는 듯한 생생한 몰입감으로 시청자들을 화면 속 깊이 끌어당깁니다. 낯선 얼굴들이 만들어낸 가장 진짜 같은 공포. 그것이 한국 오컬트 계보의 새로운 장을 한 겹 더 열었습니다.

한국 오컬트의 계보는 계속된다
‘악귀’가 민속학적 고증으로 장르의 기반을 다지고, ‘파묘’가 세련된 무당의 시대를 열었다면, ‘기리고’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한국 오컬트의 무대를 디지털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이제 한국 오컬트는 단순히 귀신을 쫓는 이야기를 넘어 특유의 ‘한(恨)’과 사회적 문제를 장르의 언어로 풀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되었죠.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가 예고하듯,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를 한국 오컬트는 매 작품마다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운명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이 장르의 끝이 어디일지, ‘기리고’의 흥행이 더욱 궁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