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꽃들이 가득한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경계를 내려놓고 카메라 앞에 섰다. 영국 사진가 시안 데이비(Siân Davey)는 자신의 집 뒷마당을 찾은 인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프레임에 담았다.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 속에서 사진가가 마주한 인간의 본질, 그 안에서 돋아난 연결의 가능성.

이 프로젝트는 아들 루크(Luke)의 제안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 할 순간은 언제였나?

4년 전, 가족 전체가 깊은 위기를 겪던 시기였다. 나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로 한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루크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뒷마당을 아름답게 가꿔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어때요? 엄마에게 사진을 찍히고 싶어질 만큼 말이에요.” 그 말이 내게는 하나의 이정표처럼 다가왔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명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뒷마당에 직접 꽃과 수목을 심어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꾸었다.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쳐 공원을 조성했나?

루크와 나는 오로지 직감에 의존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 공간이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그 본능적인 감각이 모든 결정을 이끌었다. 우리는 완벽하게 조성된 정원이 아니라 질서와 규칙에서 빗겨난 공간을 원했기에, 가능한 모든 틈새에 꽃을 빽빽하게 심고 강가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로 구조물을 세워 높이와 깊이를 더했다. 정원을 찾은 사람들이 다채로운 색과 질감 속에서 자연에 완전히 둘러싸인 듯한 기분을 느끼길 바랐다. 이를 위해 생체역학적 재배 방식부터 달의 주기에 따른 식재, 토양의 성질, 수목과 꽃들의 언어까지 철저히 조사했다. 하지만 언제나 자연을 통제한다기보다는 함께 일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

사진 속 인물들과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나? 이들이 당신의 정원에 찾아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친구나 이웃, 전시에서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만난 사람들을 직접 초대하기도 했고, 지나가다 우연히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도 있었다. 정원을 둘러싼 담장이 근처 학교와 강으로 이어지는 보행로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그런 관심이 자연스럽게 참여로 이어졌다.

정원 안에서 사람들은 경계를 내려놓은 채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에 임한 듯하다. 그들의 마음을 열게 만든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나?

전적으로 정원이라는 공간이 지닌 힘 덕분이었다. 꽃이 만개하자 사람들은 오직 사진을 찍히기 위해, 마치 순례하듯 이곳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꽃으로 가득한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스스로 무장을 풀었다. 열려 있는 장소였음에도 많은 이들이 먼저 나체로 촬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자기 자신이라는 감각이 잠시 사라지는 듯한 그 순간을 목격하는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다.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원에는 늘 깊은 평온이 흐르고 있었다.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 일관되게 유지하고자 한 태도나 원칙이 있었나?

야망이 아닌 비전에 집중하는 것. 이를 위해 개념적 사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향해 작업이 우리를 이끌도록 두었다. 특정한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매 순간이 발견의 연속에 가까웠다. 생각만으로 작업을 끌고 가려 하면 가능성은 닫힌다. 그 너머에 더 큰 지성이 있고, 그저 그것과 연결되면 된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오랜 시간 심리치료사로 일하며 타인의 삶에 귀 기울여온 경험 역시 작업에 영향을 주었을 듯하다.

그 경험은 내 작업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남겼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그 전부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은 기쁨부터 강렬한 고통까지,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감정의 스펙트럼 전체를 말이다. 덕분에 사진을 찍을 때도 피사체와 나 사이에 흐르는 감각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초상 사진가로서 내 역할은, 그들이 사진가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으로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진행하며 마주한 장면들 가운데 여전히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순간이 있다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하루는 한 노인이 담장 앞에 조용히 서 있었고, 나는 그를 안으로 조심스럽게 초대했다.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묻자, 그는 지난 30년 동안 아내와 함께 다니던 음악학교를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몇 달 전 아내를 떠나보냈지만, 두 사람이 긴 세월 동안 쌓아온 관계와 음악에 대한 사랑이 그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견딜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목소리를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촬영을 하루 앞둔 날, 그는 목소리를 되찾았다.

세 번째 여름을 지나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카메라를 내려놓아도 되겠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처음부터 작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은 있었지만 왜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결국 무엇을 배우게 될지는 알지 못했다. 3년에 걸쳐 글을 쓰고, 꽃과 수목을 정성껏 돌보고,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어떤 작업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그 작업은 끝난다. 그동안 작업을 움직여온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자 비로소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음을 알게 됐다.

방치되어 있던 정원에 다시 생명력이 깃들었듯이 프로젝트가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새롭게 깨워주기도 했나?

이 작업은 내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지만,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를 안겨주었다. 자연은 내게 위대한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그 가르침에 귀 기울일수록 더 많은 것을 내어주고,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내게 필요한 것을 보여준다. 우리 정원의 생태계에는 포식자가 없어 식물이 자라며 크게 훼손되는 일이 드물었다. 덕분에 모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날 수 있었고, 그 광경을 지켜본 경험은 내 삶에서 손에 꼽을 만큼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인류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선명하게 느꼈다.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연결의 의미를 자주 떠올렸 듯하다. 공동체의 감각이 희미해져가는 시대, 서로 연결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 작업은 타인과의 연결이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되찾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 각자가 지닌 두려움과 취약함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좋겠다. 그래야 친밀한 관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물론 취약해질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전사의 심장이 필요하겠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확인한 것만 같다. 우리는 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과 연결뿐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진가의 딸 앨리스.
작가는 앨리스에게 헌정하는 프로젝트 ‘Looking for Alice’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원에는 늘 깊은 평온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과 연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