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를 깨우고자” 박찬경 작가는 자신의 출발점인 회화로 돌아왔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관리되지 않은 것, 현대가 쉽게 규정하지 못하는 전통의 영역이에요. 아주 오래 지속되었지만,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 깨어났을 때 드러나는 힘이 있을 거라고 봐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미술비평가로 시작해 미디어 아티스트, 기획자, 사진작가, 영화감독 등으로 활동해온 박찬경 작가가 40여 년 만에 자신의 출발점인 회화로 돌아왔다. 이는 ‘멋있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소망의 실현이자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 등 오랜 시간 탐구해온 주제를 다시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특히 사찰의 벽화나 조선 민화 등 민간의 전통 미학을 재해석하는 회화적 시도는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를 깨우”는 동시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작가의 선문답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관념과 시선이 담긴 회화 작품 20여 점이 국제갤러리의 전시 <안구선사(眼球禪師)>에서 펼쳐지는 중이다. 그곳에서 전통을, 회화를, 그리고 현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의 답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오랫동안 중단했던 그림을 그려봤습니다”라는 말로 전시 소개를 시작하셨어요. 실제로 얼마 만에 그림을 다시 시작한 건가요?

10년 전부터 작은 드로잉 작업은 했지만, 본격적이라 말하긴 어려워요. 마음먹고 그림을 그린 건 2024년부터니까 처음 그림을 그렸던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헤아리면 거의 40년 만이죠. 오래됐네요.

다시 그림을 해보자는 결심에는 어떤 동력이 작용한 건가요?

1980년대에 컬러 TV가 생긴 이후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했잖아요. 그러면서 회화가 어떤 힘을 가질 것인지 의심스러웠고, 그래서 다른 매체들을 시도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럼에도 그림으로 미술을 시작한 터라 멋있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쉽게 사라지진 않더군요. 그러다 어느덧 나이가 예순이 되니 이러다가 평생 못 그리겠구나 싶어 초조해진 거죠. 마침 그림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생겼고, 그래서 시도하게 됐어요. 구체적인 동기라면 꾸준히 민간신앙이나 무속, 그리고 사찰에서 발견되는 그림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를 그림으로 각색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며 ‘회화’라는 매체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처음 그림을 그릴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변화가 있었을지 궁금해요.

워낙 좋아해 그림에 관한 글도 많이 써왔지만, 한편으로는 반대의 마음도 있었어요. 말하자면 애증의 관계?(웃음) 그러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애(愛)’가 훨씬 커졌죠. 회화 작업이라는 게 육체노동에 가까운데, 그래서 잡생각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 그림을 보는 분들에게도 그림을 그려보라 권하고 싶어요. 하루에 한 개씩 돌을 그리고 날짜를 붙인 ‘헛수고’ 연작 같은 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꼭 돌이 아니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무언가 그려보는 거죠. 흥미로운 점이 그림으로 그날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일기와 비슷하지만, 조금더 추상적인 기록인 셈이죠. 내가 오늘은 고민이 많구나, 오늘은 몸 상태가 좋지 않구나, 오늘은 좀 괜찮네, 이런 식으로 잘 파악되지 않는 자기 자신을 그림을 통해서 볼 수 있어요.

설명을 듣고 나니 ‘헛수고’ 연작을 다시 보게 되네요. 실질적인 기능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는 돌탑 쌓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헛수고’의 또 다른 의미가 ‘스스로를 바라보기’에 있었군요.

색을 선택하거나 돌 모양을 정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어떻게든 그날의 제가 반영되는 거죠. 이 연작의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이응노 선생의 ‘군상’을 보면요, 전체를 계획하고 그린 게 아니라, 한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에 맞춰서 다른 사람을 배치하는 식으로 대단위 군상이 완성된 거예요.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나타나게 하고, 저 사람이 그 사람을 나타나게 하고, 이런 식으로 개인이 개인에게 영향을 주면서 전체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처럼 ‘헛수고’의 돌탑도 다음에 쌓을 돌의 위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다음 돌은 이전 돌에 영향을 받게 되고요. 우리가 사는 게 그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고, 오늘의 끝과 내일은 맞닿아 있어요.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이 그림을 통해 하고 싶었어요.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전시와 동명의 작품인 ‘안구선사’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승의 동작을 흉내 내는 동자승의 손가락을 잘라 깨우침을 주었다는 구지 선사 설화에서 손가락을 눈으로 바꿔 표현한 이 작품은 괴이하면서도 어쩐지 유머가 느껴집니다.

절에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사찰 외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많아요. 특히 좋아하는 게 혜통 선사와 구지 선사 그림인데요, 보면 굉장히 그로테스크 해요. 손가락을 자르고, 불이 이글거리는 화로를 머리에 이고. 게다가 스토리를 모르고 보는 이들에겐 더 이상하게 보이는 거죠. 그 이미지와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작업을 시작했는데, 관건은 어떻게 하면 전통을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에 머물지 않게 할 것인가였어요. 그래서 반농담조로 ‘선불교 그로테스크 SF’라 이름 붙여 봤습니다.

그런 의도에서 만화 프레임을 이용한 것이죠?

맞아요. 실제로 불교 그림들이 만화적이기도 해요. 에피소드가 있고 요약해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만화적이에요.

각색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갈 것인지가 고민의 한 축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고민이죠. 그림 중 일부를 광주의 다른 전시장에 거는데, 설치하는 분이 “이거 나 어릴 때 전래 동화집에서 많이 보던 건데” 하더라고요, 하하. 그분이 아주 잘 본 거죠. 다만 저는 좀 더 충격적인 전래 동화집이 되길 바랐는데, 겁이 많아서 확 나가지는 못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도 되겠다 싶어요.

박찬경, ‘안구선사’, Oil on canvas, 139.5×203cm,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안천호
박찬경, ‘프로젝션 3’, Acrylic and Pigments on paper, 87×118cm, 2026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안천호

오랜 시간 전통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만 작가님의 작업에서 말하는 전통은 ‘문화유산’이나 ‘보물’이라 규정된 것과는 다른 영역에 머무는 것들이라 들었습니다.

제도적 장치에 의해, 혹은 국가적으로 문화유산이나 보물로 지정한 전통이 있죠. 그렇게 과거에 발견된 무언가를 예술로, 문화로, 전통으로 보는 건 저는 오히려 현대성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현대가 전통을 관리하는 거죠.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관리되지 않은 것, 현대가 쉽게 규정하지 못하는 전통의 영역이에요. 이를테면 무속이 그에 해당하죠. 아주 오래 지속되었지만,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 깨어났을 때 드러나는 힘이 있을 거라고 봐요. 그래서 이를 소재로 사진, 비디오, 나아가 회화까지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고요.

그간의 작업을 보며 작가님의 정체성과 세계관은 표현의 방식보다 주제에서 발견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로서 갖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저는 독창성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아요. 그보다는 무엇이 문화적으로 중요한가, 그 중요성을 드러내는 데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늘 우선인 것 같아요.

작가로서 지닌 특성이나 자아를 드러내는 것보다 더 넓은 범주의 사유네요.

물론 하다 보면 자아도 드러나고 특성도 나타나겠지만,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크게 안 해요. 요즘 어떤 작가를 소개할 때 흔히 쓰는 표현 중 하나가 ‘그만의’잖아요. 우리 사회가 공동체보다 개인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자주 쓰이는 표현 같은데, 그것이 결국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흐름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환경에 대한, 그러니까 ‘그만의 독특한 개발’이라는 것이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기조를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미술 평론에서 출발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젊었을 때 민중미술을 한 것도 연유 중 하나일 거예요. 민중미술 하는 사람들은 정체성에 대한 관념이 적었어요. 카피라이트(저작권) 개념도 별로 없었고, 비슷하게 해도 괜찮다는 식이었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겠죠.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믿지 않고, 작가가 정말 그래? 궁극적으로는 나를 표현하려는 거 아니야? 하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려는 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회화 작품을 통해 지금 시대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지금의 문화 안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우리 문화가 서구에 대한 선망이 너무 강해요. 요즘은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선망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불합리하고 봉건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지나침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문화라는 것이 지역성을 잃어버리면 외부의 가치에 종속되어 균질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이는 민족주의 차원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에서 발전시켜온 풍부한 세계가 있는데, 그걸 다 버리면 어디서 문화의 출처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전통 이야기와 그림을 찾아 꺼내 보이는 것이겠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중 가장 지금과 연결되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신다면요?

저는 열반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그중 이번 전시에서는 ‘쌍림열반도’를 변형해 미니어처로 제작한 작품 ‘늦게 온 보살 – 디오라마’를 선보였는데요. 이 안에 담긴 이야기가 꽤 흥미로우면서도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기본 내용은 전형적인 애도의 공동체로 그려져요. 부처가 돌아가셨고,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서 슬퍼한다. 그러다 어떤 사건으로 이야기의 틈이 생겨요. 부처가 가장 좋아한 제자 가섭 존자가 뒤늦게 현장에 도착하자 관 속에 누워 있던 부처가 발을 내밀어 그를 맞이하면서, 말하자면 이야기가 전변하는 거죠. 첫째, 발을 내밀었으니 완전히 돌아가신 건 아니고, 다음으로 발을 내밀어 불법이 전수됨으로써 다음에 대한 희망이 생기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이 엄청난 사건이 매우 고요하게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주 심오하고 엄청난 것은 매우 일상적인 것과 붙어 있다는 뜻이
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지금의 사회와 맞닿을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네요. 대단히 큰일은 사실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나기도 하며, 작은 시도가 큰 사건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요.

그게 핵심입니다. 철학가 알랭 바디우(Alain Badiou)가 사건이라는 것은 결국 우연에서 온다는 말을 했잖아요. 그의 말을 위의 이야기에 대입해보면 가섭 존자가 늦게 온 우연한 일이 전체를 바꾸는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살펴볼 때 6·25전쟁,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큰 사건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격변은 사실 아주 작은 우연한 일이 쌓이고 쌓이면서 천천히 만들어진 결과인 셈이에요. 그러니까 역사를 격변 중심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조용한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면 할 일이 생겨요. 다시 말해 작은 일이란 건 없다는 거죠. 이런 식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는 데 열반도 같은 그림이 굉장한 혜안을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시 시작한 회화 작업을 계속 이어갈 예정인가요?

시작했으니 힘이 닿는 데까진 계속해야죠. 여전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요.

이를 회화로의 회귀라 봐도 될까요?

글쎄요. 회귀라기보다는 새로 시작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저의 첫 번째 미술은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선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 있죠.

<안구선사(眼球禪師)>

기간: 3월 19일~5월 10일

장소: 국제갤러리 K1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