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느의 2027 S/S 남성복 컬렉션이 파리에서 공개되었습니다.

44도의 파리, 마이클 라이더의 셀린느 첫 남성복 패션쇼

파리 맨즈 패션위크의 마지막 날, 마이클 라이더(Michael Rider)의 셀린느 첫 번째 남성복 컬렉션이 테니스 클럽 드 파리(Tennis Club de Paris)에서 공개되었습니다. 쇼의 장소와 시간이 변경될 만큼 기록적이었던 44도의 폭염 속에서도 쇼장 안의 분위기는 달랐는데요. 온통 새하얀 올 화이트로 꾸며진 공간, 좌석마다 놓인 푹신한 쿠션, 더위에 지친 관객들을 위한 세심한 화이트 부채까지. 폭염을 역이용해 고요하고 시원한 무드를 연출한 셀린느의 감각이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빛을 발했습니다. 브라질 타악 그룹 바르바투케스(Barbatuques)의 노래처럼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트랙도 쇼장의 경쾌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죠.

CELINE

셀린느의 ‘가보’처럼 간직하고 싶은 옷들

이번 시즌 마이클 라이더가 꺼내 든 키워드는 ‘가보(Heirlooms)’. 단순히 오래된 물건이 아닌, 오래도록 입고 또 입으며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추억과 애착이 깃든 옷을 만들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인도 고아(Goa) 지역 출신 아티스트 레모 페르난데스(Remo Fernandes)의 아트워크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셀린느 특유의 세련된 무드 위에 자유롭고 낭만적인 보헤미안의 감각을 더하며 새로운 온도를 만들어냈죠. 쇼 노트의 마지막 문구였던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 다리와 뿌리를 가진 무언가(Building toward something bigger. Something with legs and roots)”처럼, 라이더가 그리는 셀린느는 트렌드를 좇기보다 아카이브와 헤리티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지속 가능한 가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CELINE

자유로운 여행자, 셀린느의 옷장

‘터프함과 부드러움(Tough & Tender)’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셀린느의 이번 룩들은 이전보다 더 여유로웠습니다. 핑크와 터콰이즈, 카멜 등 대담한 컬러웨이의 벌룬 팬츠와 골반 위에서 싹둑 잘린 크롭 더블 브레스트 재킷, 케이프처럼 둘러 스타일링한 아우터 등이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실루엣으로 팽팽한 균형을 만들어냈는데요. 포멀한 예복에나 쓰이던 커머번드를 니트 스웨터 위에 걸치고, 셔츠를 터번처럼 머리에 두르거나 고아의 전통 축제에서 영감을 받은 화관을 얹는 방식으로 격식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문 것도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이클 라이더가 폴로 랄프 로렌 시절부터 다져온 아메리칸 클래식의 프레피 감각과 보헤미안의 낭만이 한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장면이었죠. 여기에 ‘가보’라는 키워드를 다시 상기시켜주듯, 팬츠와 재킷 라펠 위에 핀으로 고정된 추억 어린 브로치와 비즈 장신구들은 단순한 디테일을 넘어 소중한 소장품을 들여다보는 듯한 정서적 깊이를 더했죠. 엄숙할 수 있는 테일러링 위에 이런 감각들이 켜켜이 쌓이며 사막을 횡단하는 자유로운 여행자의 이미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발끝도 역시나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었는데요. 딱딱한 가죽 구두 대신 슬리퍼 형태의 플랫 슈즈, 자연스러운 주름이 매력적인 로퍼, 하우스 역사상 최초의 외부 브랜드 협업으로 탄생한 리복 프리스타일을 재해석한 스니커즈까지. 자연스럽게 바랜 듯한 질감이 발끝에서도 이어받으며, 마이클 라이더가 그리는 셀린느의 남성복이 화려한 무대보다 일상의 한복판에서 가장 빛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셀린느가 사랑하는 남자, BTS 뷔

오스카 아이작(Oscar Isaac)부터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 마크 론슨(Mark Ronson) 등 글로벌 탑스타들이 자리를 채운 프런트 로에서 단연 시선을 모은 인물은 셀린느의 글로벌 앰버서더 BTS의 뷔였습니다. 강렬한 레드 셔츠에 와인빛 버건디 재킷을 매치하고, 골드 네크리스와 모닝 쉐이드 선글라스로 마무리한 그의 모습은 이번 컬렉션이 품은 자유롭고 대담한 무드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체현하고 있었죠. 셀린느가 사랑하는 그답게, 시크하면서도 거리낌 없는 젠틀맨의 이미지로 현장의 열기를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옷, 살아 움직이는 옷

오래도록 입고 또 입으며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옷들을 만들겠다는 마이클 라이더의 다짐처럼, 셀린느의 이번 2027 S/S 맨즈 컬렉션은 거창한 선언 없이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무대였습니다. 전임자의 유산을 지우는 대신 영리하게 계승하고, 보헤미안의 낭만을 프랑스식 절제 위에 얹은 방식으로 마이클 라이더는 자신만의 셀린느를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새기기 시작했죠. 그가 앞으로 써 내려갈 셀린느의 다음 챕터가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