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탄생석 루비는 최근 가장 구하기 어렵고 수요가 높은 컬러 스톤임은 분명합니다. 가장 질 좋은 루비가 채굴되던 미얀마(버마)의 루비 광산들은 이미 오래전 폐광되었고, 그에 버금가는 광산들에서도 지속적으로 채굴량이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특히 최상급으로 평가 받는 좋은 컬러의 비가열 루비는 이미 세계적인 컬렉터들과 하이주얼리 브랜드들이 경쟁적으로 확보하는 스톤이 되면서, 좋은 루비를 만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행운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루비는 열정이나 사랑이라는 뜻도 있지만, 어디서부터 왔는지 몰라도 남편이 잘 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정확한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예로부터 루비가 왕권과 권력, 생명력, 용기를 상징했던 보석이었던 만큼 그 의미가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이 잘 된다’, ‘남편이 잘 된다’는 믿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열이 높은 대치동에서는 아들이 잘 되는 보석이라며 새끼손가락에 루비를 착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소식을 심지어 일간지 기사로 읽은 경험도 있어요.
제가 브랜드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하이주얼리 이벤트가 있을 때면 미리미리 루비 제품이 입고 예정인지를 확인해 실물을 보기도 전에 감정서만 보고 구매하는 고객까지 있었을 정도로, 최근 가장 사기 어렵고 좋은 스톤에 대한 니즈가 있는 보석임은 확실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루비’가 아니라 산지가 어디인지, 더 나은 색을 위한 가열 처리 여부가 어떤지, 컬러는 어떤지, 컷팅은 어떤지, 내포물 상태는 어떤지까지 꼼꼼히 따져가며 말이죠. 저 역시 그런 스톤들을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고객들과 함께 비교해보며 자연스럽게 컬러스톤을 보는 안목도 조금씩 높였습니다. 그러니 몇 년씩 좋은 루비를 보고, 왜 어떤 루비가 더 좋은 평가를 받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살았으니 귀가 얇은 제가 버틸 재간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그런 트렌드에는 빠질 수 없는 귀 얇은 제가 직접 루비를 구매했던 썰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1장. 그것이 루비여야만 했던 이유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남편은 인턴 시절부터 10년 이상 재직했던 회사를 퇴사했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린 나이에 본인 비즈니스에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큰 뜻을 가지고 퇴사한 남편이 하는 일마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그건 바로, 남편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남편 잘 되는 보석으로 알려진 ‘루비’를 구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지만, 여러 네고(!)가 오간 끝에 저희 부부는 그 해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남편은 제게 루비를, 저는 남편의 안녕과 새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해 그 루비를 평생 착용하는 희생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극적 타결을 합니다. 선물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제가 스톤 서치, 가격 네고, 디자인, 제작까지 나 홀로 다 한 뒤 남편은 최종 금액을 입금하는 시스템인 셈이었죠.
루비는 다른 보석에 비해 같은 캐럿(중량)이라도 크기가 작아 유독 ‘효율적이지 못한 보석’입니다. 특히나 저같이 손가락이 짧고 두꺼운 펭귄 손가락에는 최소 3캐럿 정도는 되어야 뭔가 빨간 것을 끼긴 꼈구나 싶거든요. 그런데 컬러 스톤은 다른 무엇보다 컬러가 가장 중요합니다. 중량이 조금 작더라도 컬러가 아름답고 비가열인 스톤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죠. 즉, 중량(크기)과 컬러를 모두 만족하는 루비를 찾으려면 예산은 순식간에 현실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럭셔리 주얼리 메종에서 오랜 시간 최고의 산지에서 일체 그 어떤 처리도 하지 않은, 최고로 아름다운 천연 컬러 스톤들만 줄기차게 보던 안목도 저 자신을 위한 구매에 있어서는 크나큰 장애물이 되는 걸 느꼈어요. ‘이 정도면 충분히 예쁘지.’ 하고 현실과 타협해보려 했지만, 피전 블러드 (‘비둘기의 선명한 피를 닮은 붉은색’을 뜻하며, 루비 시장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컬러)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제 눈에 예쁜 컬러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량을 줄이더라도 색이 예쁘고 좋은 루비를 선택하는 대신, 볼륨감은 유지할 수 있도록 다른 스톤과 함께 투아에무아(toi et moi) 스타일로 세팅하면 가성비, 가심비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투아에무아는 프랑스어로 ‘너와 나’라는 뜻으로, 두 개의 스톤을 함께 세팅한 스타일의 반지입니다. 사실 투아에무아라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단순히 볼륨감 때문 만은 아니었습니다. ‘너와 나’라는 이름처럼 두 개의 스톤에 각자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남편의 성공을 기원하는 루비 반지를 제작하려던 제 상황과도 꽤 잘 어울렸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루비와 함께 세팅할 또 다른 스톤에 대한 고민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제2장. 나폴레옹은 나주 나씨
저의 첫 투아에무아 반지의 절반을 차지할 스톤이 무심코 떠올랐던 그 순간에서 다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루는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다 엄마의 금고를 털어오게 되었어요. 엄마는 주얼리를 좋아하는 제게 금고 속에 묵혀 있던 독특한 빈티지 주얼리들을 여럿 꺼내서 주셨는데, 그중에는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으신 1캐럿쯤 되는 페어컷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목이 두껍고 주름도 있어서 목선이 도드라져 보이는 목걸이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게다가 1캐럿이면 펜던트 스톤치고 작은 편도 아니라 시선을 목선에 더욱 집중시키기 때문에 다른 활용 방안이 없을까 물색하던 중이었습니다. 또 그 목걸이를 보신 여러 전문가 분들께서 스톤의 퀄리티가 목걸이로 쓰기엔 아까울 정도로 좋다는 말씀을 해주신 덕분에 저는 과감하게 목걸이의 스톤을 빼서 감정을 맡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눈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하죠. 이 투아에무아 반지 두 개의 메인 스톤 중 절반을 담당해줄 1캐럿짜리 고퀄리티의 페어컷 다이아몬드를 공짜로 득템하게 된 순간입니다. 그 때부터 이 반지는 ‘새로운 보석 구매’가 아니라, 엄마가 제게 건네준 다이아몬드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아주 그럴듯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원점(남편의 성공을 위한 루비 구매)으로 돌아와, 이 페어컷 다이아몬드와 투아에무아를 이룰 어떤 컬러를 띄는, 몇 캐럿의, 어떤 셰이프의, 어떤 커팅의, 어느 원산지의 루비를, 어떤 메탈에, 어떤 스타일로 세팅해야 할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양한 투아에무아 반지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아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추천받기도 하던 찰나,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진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아에무아 반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청혼한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반지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정말 보는 순간 제 시선을 강탈했습니다.
이 반지가 운명처럼 느껴졌던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제가 가진 다이아몬드가 페어컷이라는 사실이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두 번째는 나폴레옹의 황제 시절이 아닌, 무일푼이던 군인 시절 두 아이를 둔 미망인 조세핀에게 청혼하기 위해 그야말로 ‘영끌’해서 마련한 반지라는 점이었습니다. 황제 시절의 반지였다면 감당할 수 없이 큰 스톤의 반지였겠지만 이 반지는 두 개의 스톤이 각각 1캐럿대로, 제가 가진 다이아몬드와 크기까지 비슷했거든요. 그리고 세 번째, 파워 N인 저에게 이 반지가 너무 운명처럼 다가왔던 가장 큰 이유는 이 반지는 나!폴레옹의 프러포즈 링이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남편 잘 되라고 이 반지를 만들고 있는데 제 남편의 성이 하필 본관이 나주인 나씨거든요.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데 이런 이유로 저는 특히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게 굉장히 몰입이 잘 되는 편입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저는 루비를 살 이유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남편 잘 되라는 속설 때문이었고, 그 다음에는 엄마의 다이아몬드가 생겼죠. 그 다음에는 나폴레옹의 사랑 이야기가 더해졌고, 마지막에는 하필 남편의 성까지 나씨였던겁니다. 이쯤 되니 제 머릿속에서는 이 반지를 만들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습니다. 너무 소름이 돋아서 당장 채택해야 할 디자인이라고 생각해 그때부터 제 다이아몬드와 쌍둥이 페어컷 루비를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종로를 나가면 도대체 집에 들어오질 않는 저에게서 ‘나폴레옹 나주 나씨설’을 전해들은 남편은 어이없어 하며 ‘나폴레옹은 이름이 나폴레옹이고 성은 따로 있다. (보나파르트) 그래서 나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세계사 시간에 대체 뭘 배운 거냐.’, ‘나폴레옹이 나씨면 똘이장군은 똘씨냐.’와 같은 논리를 펼치며 저의 구매를 방해하려 들었지만 내조를 향한 저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순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종로의 컬러 스톤 딜러에게서 제 다이아몬드와 아주 흡사한 쌍둥이 루비를 드디어 찾았다는 연락을 받게 됩니다.
제3장. Toi et Moi, You & me, 나폴레옹과 나
정확히 사이즈가 정해져 있는 팬시컷에 색까지 예쁜 비가열 루비는 예상했던 대로 찾기 힘들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하늘은 제 편이었습니다. 저는 피처럼 새빨간색보다는 살짝 핑크 혹은 자주 빛이 도는 부드러운 레드가 좋았는데 바로 그런 컬러의 모잠비크산 비가열 페어컷 루비를 만나게 된 것이죠. 이미 폐광된 미얀마(버마)산 루비가 가장 고가로 알려진 고품질의 루비이긴 하지만, 모잠비크산 루비 역시 최근 수년 사이 컬러와 투명도가 뛰어난 스톤들이 꾸준히 발견되며 하이주얼리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산지가 되었습니다.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 다이아몬드와 쌍둥이처럼 사이즈나 높이가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더 비슷한 걸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운명처럼 저와 만나게 된 루비는 나폴레옹의 반지를 토대로, 엄마의 다이아몬드와 함께 스톤 간의 간격과 각도, 스톤을 고정하는 난발(prong)의 개수와 스타일, 밴드의 소재와 두께 등을 고민해 세팅에 들어가게 됩니다. 스톤을 높게 세팅하면 스톤이 더 커보인다는 장점이 있지만 매일 착용할 반지였기 때문에 옷이나 가방에 걸리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낮게 세팅했고, 빛 투과를 고려해 난발의 개수를 최소화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루비는 옐로우 골드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 옐로우 골드로 링을 제작했죠. 그렇게 완성된 반지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저만의 투아에무아 반지가 되었습니다. ‘너와 나’라는 이름의 반지였지만, 그 안에는 외할머니에게서 엄마를 거쳐 제게 이어진 사랑과 시간, 그리고 남편을 향한 저의 응원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약간은 샤머니즘의 노예이긴 했지만, 남편 잘 되는 보석으로 알려진 루비를 엄마가 물려주신 다이아몬드와 나란히 세팅해서 지니고 있으니, 자식의 건강과 행복을 비는 엄마의 마음과 남편의 성공을 비는 저의 마음, 그리고 각 스톤의 의미인 정열(루비)과 영원한 사랑(다이아몬드)이 늘 나와 함께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했습니다.
투명한 물방울 (다이아몬드), 붉은 물방울 (루비) 둘의 결합은 사랑으로 시작해 해를 거듭하며 점점 의리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우리 부부간의 피를 나눈 도원의 결의 같기도 하고, 본인은 극 ST인데 극 NF인 제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남편의 피, 땀, 눈물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반지가 우리 부부를 지켜주고, 특히 남편을 나폴레옹처럼 황제로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착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제가 루비를 산 이유는 ‘반지 덕분에 남편이 정말 잘 될 거라고 믿어서’ 라기 보다, 그렇게 믿고 싶은 제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행운의 펜을 쓰기도 하고,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엔 유독 입었던 날의 기억이 좋은 옷을 꺼내 입기도 하잖아요? 저에게는 그게 루비였습니다.
효과가 있었냐고요? 글쎄요. 그걸 증명하긴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이 반지를 낄 때마다 ‘오늘도 잘 될 거야.’ ‘우리의 미래는 밝을 거야.’라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남편 역시 그렇게 긍정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초창기보다 훨씬 안정된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이 루비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루비가 정말 남편 잘되는 보석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려 합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