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의 기존 오버 프로듀싱 시스템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날 것 그대로의 항로를 개척하는 다섯 팀의 새로운 시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 롱샷과 82메이저 및 영파씨는 독창적인 믹스테입과 다채로운 무대를 통해 K팝 주류 신 밖에서도 뛰어난 음악적 실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 웨이프보이즈와 코르티스는 멤버들이 직접 창작을 주도하며 기존 아이돌 공식과 자유로운 아티스트 정체성 사이의 균형을 실험합니다.
K팝을 좋아하다보면 종종 듣는 말이 있죠. ‘K팝 팀은 다 비슷해서 구분이 되지 않는다’, ‘K팝 시스템은 마치 공장 같다’. 어떤 장르든 엇비슷해 보인다면 사실 그건 면면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고 각기 치열한 고민끝에 탄생한 결과물임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산업적으로 굳어진 요소들이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K팝의 특징은 사운드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최대한 매끄럽게 갈고 닦은 결과물을 내보이는 ‘오버 프로듀싱’이었고 이것이 아티스트를 드러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하지만 그 선들 밖에서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요즘은 분명히 보입니다. ‘날 것’에 가까운 자신들의 항로를 개척하는 5개의 팀.
LNGSHOT

모어비전의 첫 번째 보이그룹 롱샷(오율, 률, 우진, 루이)은 멤버들이 공개된 방식부터 달랐습니다. 대표님이자 ‘롱버지(롱샷+아버지)’ 박재범의 기습적인 SNS 사진 게시로 공개 전부터 주목을 받았죠. 추후 공개된 자체 컨텐츠를 통해 ‘멤버를 자랑하고싶었다’는 박재범의 말과 당시 상황에 대한 멤버들의 심경이 드러나지만 글쎄요, 완벽한 출발점이라고할 수는 없었습니다. 11월 멤버들이 직접 작업한 믹스테입 ‘4SHOBOIZ MIXTAPE’을 선공개하고 MMA 2025 무대에서 ‘Saucin”을 선보이며 힙합과 R&B 무드를 전면에 내세운 실력파팀으로 논란을 정면돌파한 롱샷은 2026년 1월 EP ‘Shot Callers’와 타이틀곡 ‘Moonwalkin” 활동을 이어갑니다. 에드 시런의 앨범을 들었던 초등학생 때부터 가수를 꿈꾸게된 오율, DJ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올드스쿨 힙합을 듣고 자란 김률, 빅히트에서 긴 연습생 기간을 보낸 뒤 네이버 메일로 먼저 모어비전에 지원했던 우진, 그리고 타고난 목소리를 가진 막내 루이까지. 오랜 시간 음악작업을 해온 롱샷 멤버들은 3월에는 현재 연습생 시절의 곡 작업을 담은 EP ‘Training Day’를 발매한 것에 이어 5월에는 대표님 박재범과 함께한 스페셜 믹스테입 ‘4SHOBOIZ Vol. 2: 4SHOVILLE’를 발표합니다. 이또한 전곡에 멤버들이 참여했음은 물론이죠. 데뷔 1년도 되지 않아 이렇게 많은 곡들이 공개된 그룹은 전무후무할 겁니다. 첫 유럽 공연 무대였던 프랑스 칸느에서 2월에 개최되는 세계적인 음악 마켓 ‘미뎀(MIDEM 2026)’의 라이브 무대에 초청 받았던 순간을 기록한 ‘4SHO 4SHO’ 뮤직 비디오에서는 첫 유럽 공연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멤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죠.


2D 애니메이션 연출을 도입해 팀의 야망과 고민을 담은 ‘RUN IT UP’은 가사에 아예 ‘Next stage of the Kpop’이라는 표현을 명시하기도 합니다. 롱샷 멤버들의 개성과 자기들만의 리듬은 자체컨텐츠 ‘4SHOWBOSHO’에서도 감지할 수 있어요. 특히 멤버 각자가 1만 칼로리씩, 도합 4만 칼로리 챌린지에 도전한 영상은 식단 관리가 철저한 K팝 아이돌의 다른 자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식이었죠.

독특했던 데뷔 과정, 믹스테입으로 공개된 수많은 곡, 대표님과의 합작 앨범 및 공연과 개성 넘치는 자컨까지! 아직 롱샷만의 다음 앨범 계획은 발표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82MAJOR

데뷔 전부터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작업물을 꾸준히 공개해온 82메이저(조성일, 윤예찬, 남성모, 황성빈, 박석준, 김도균)의 행보도 지속적으로 주목할 만합니다. 정식 데뷔 후에는 아이오아(IOAH), 신세인(XINSEYIN), 밀릭, 쿤디판다 등 힙합 기반의 프로듀서나 래퍼들이 타이틀곡 작업을 해왔지만 멤버들의 곡 참여 비율은 꾸준히 높아져 믹스테입으로 발매했던 ‘영웅호걸’은 정식 앨범에 수록되기도 했고 가장 최근 발매한 미니 5집 ‘FEELM’에 이르러서는 타이틀곡 ‘SIGN’을 포함한 전곡에 멤버들이 작사작곡에 이름을 올렸죠. ‘SIGN’은 빌보드가 선정한 ‘2026년 상반기 최고의 K-팝 송 25’에 9위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82메이저는 무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어디에서든 서죠. 2025 LA KCON에 참여했을 때 사흘 간 개최됐던 행사에서 공연장 뿐만 아니라 서브 스테이지, 버스킹 스테이지 등 어디에서든 82메이저의 무대를 볼 수 있었어요.


‘날 것’의 끝을 보고 싶다면 올해 6월 새롭게 오픈한 채널 ‘에투메’ 를 참고할만합니다. 특히 리더이자 맏형인 조성일씨의 살신성인이 눈물 겨운데요. 월미도 디스코팡팡을 타면서 회사 줌미팅에 참여하는 컨텐츠는 특히 SNS에서 바이럴되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죠. 올해 콘서트 ‘비범: BE 범’으로 서울, 도쿄, 오사카, 파리, 베를린, 암스테르담, 런던, 그리고 바르샤바와 방콕까지 순회한 82메이저가 무대 위와 아래의 경계를 어떤 식으로 뛰어넘을지 궁금해집니다.
YOUNGPOSSE


리센느가 부른 카라(KARA)의 ‘Pretty Girl’이 음악방송 무대에 오를 때 제 귀를 사로잡았던 또다른 카라의 곡이 있습니다. 영파씨(선혜, 연정, 지아나, 도은, 지은)의 ‘미스터 2026’이죠. 2023년 10월 데뷔한 국힙의 딸들, 영파씨가 지난 7월 13일 선보인 첫 번째 믹스테입 ‘young tape’ 수록곡인 ‘미스터 2026’은 공개와 함께 한국의 하이퍼팝/디지코어 씬을 주도하는 크루, 시스템서울의 사운드를 연상시킨다는 평과 함께 K팝 주류 씬 밖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DSP 미디어 소속인 영파씨는 사실 알고 보면 카라의 직속 후배이기도 하죠!

얀 반 다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Arnolfini Portrait, 1434)’ 속 장면이나 외계 생명체 등 영상에서 위트있는 아이디어를 꾸준히 선보였던 영파씨는 첫 믹스테입에서는 일본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았습니다. 홍대 헨즈(HENZ)에서 개최된 공연에 게스트로 서는 게 이상하지 않은 걸그룹은 아마도 영파씨가 유일하겠죠. 무엇보다 04년생과 06, 07, 09년생으로 이뤄진 멤버들은 아직도 너무 어리기에 앞으로 보여줄 또다른 에너지가 기대됩니다. 9월, 도쿄에서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앞둔 멤버들은 10월에는 첫 유럽투어인 ‘Pilot3: 2026 The 1st Flight to Europe with Young Posse’로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 베를린 등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WAYFBOYS

지난 8월 7일 데뷔한 웨이프보이즈(라이언, 앤드류, 앤더슨, 이준명, 사무엘)는 프로듀서 손성호(Czaer)의 기획사 웨이프(WAYF)에서 선보인 첫 보이그룹입니다. 스스로 ‘5세대’가 아닌, ‘Nu-Kpop 1세대’로 칭하며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죠. 보통 K팝 그룹의 데뷔는 멤버들의 티저 이미지 사진이나 영상을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이들은 오히려 멤버 앤더슨이 그린 캐릭터 뒤로 얼굴을 감췄습니다. 웨이프보이즈는 K팝 보이그룹보다는 LA를 기반으로 다양한 아시안 아티스트들을 소개했던 ’88rising’ 소속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이준명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모두 캐나다나 미국 국적 소유자로 멤버들 사이 소통도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고는 하죠.


거리 위에 서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 또한 자연스럽습니다. 이는 이들이 모두 처음부터 ‘친구’였기 때문인데요. ‘Czaer’는 처음에 SM연습생이었던 라이언을 만났고, 이후 라이언이 자신의 친구들을 하나둘 데려왔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죠. SM뿐 아니라 YG, KOZ, 모어비전 등에 있었던 멤버들은 모두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경험 또한 갖고 있어요. 곡 작업과 안무 작업은 물론 뮤직 비디오 촬영까지 멤버들이 직접 참여한 ‘WAYF BOYS DO’ 뮤직비디오 속 곡과 영상 속 자유로운 무드와 자신감은 이들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레이블이자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의 미국 내 음반 유통 파트너십을 맡고 있는 인터스코프 레코즈의 소속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린 점도 이들의 탄탄한 미래를 기대하게 하죠. K팝 내의 시스템을 경험했으나, 이것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웨이프 보이즈의 두 번째 싱글 ‘SWAG’은 8월 28일 공개됩니다.

CORTIS

지난 8월 18일 데뷔 1주년을 맞이한 코르티스(마틴, 제임스, 주훈, 성현, 건호)는 사실 ‘기존 형식을 벗어난 K팝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중심 한복판에 서있는 그룹입니다. 신생 혹은 중소 기획사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하이브, 그 중에서도 방탄소년단의 직계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소년들이 영크리에이티브크루라는 이름으로 직접적으로 건드릴 것이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지금까지 발매된 곡들은 물론 영상 작업에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올린 코르티스 멤버들의 창의력을 향한 초반의 의구심은 이제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입니다.

코르티스에게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다듬어줄 대기업의 자본과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멤버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바,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진짜’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엄청난 인파에게 쫓기는 ‘TNT’ 뮤직 비디오의 아이디어는 데뷔 이후 실제로 인파들에게 둘러싸인 경험을 하게 된 멤버들의 이야기에서 시작됐죠. ‘ACAI’ 뮤직비디오 속 아이디어는 제임스가 인상깊게 본 영화 ‘스내치’의 의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상반기 끝없는 챌린지와 커버 영상의 주인공이 된 ‘REDRED’의 안무 또한 곡을 듣고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느낀 모션이 반영됐습니다. 익히 공개된 음악과 가사작업 뿐 아니라 영상, 패션, 안무 등 여러 면에서 코르티스는 분명 자신들의 세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5세대 이후 잠시 주춤했던 북미 시장에서 코르티스의 반응이 유난히 뜨거운 것 또한 팀의 방향성에 확신을 가져 줍니다.

다만 어느 정도 솔직해도 될지, 전형적인 ‘아이돌 그룹’의 형식을 따르는 방식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외의 것을 팬들에게 요청할 때 어떤 반응이 오게 될지, 그 경계를 코르티스는 스스로도 계속 실험 중입니다. 첫 번째 콘서트가 멤버들의 노력과 관계없이 기대밖의 무대 구성과 다소 일방적이었던 소통 방식으로 팬과 아티스트 서로에게 아쉬운 경험으로 남았던 것에 이어 데뷔 1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신곡 ‘MONEYMONEYMONEY’ 또한 가사의 방향성과 솔직함 사이, 균형감을 잡는 것에 다소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롱샷의 이색적인 행보 또한 멤버들의 실제 캐릭터와 별개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팬덤에 불필요한 불안감을 안기기도 하죠.

새로운 시도는 물론 필요합니다. 그 다양한 결과물들을 지켜보는 게 꽤 흥미진진한 것도 사실이고요. 다만 수익 창출을 위해 기존 K팝 그룹들이 해오던 방식은 답습하면서 아티스트나 창작자로서의 이미지만을 얻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반발감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K팝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완전히 구분되는 단어가 아니기도 하고요. 전면에 서는 것은 플레이어지만 그 뒤 소속사나 제작자의 정밀한 역할은 K팝 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죠. 특히 초기 투자비용이 큰 K팝에서는 팀의 안정적인 지속성도 중요하게 고려해야하는 요소니까요. 이 경계를 이 팀들은 어떤 방식으로 앞으로 오가게 될지, 다음 K팝을 가리키는 명칭이 무엇이 될지, YG나 SM 엔터테인먼트에서 하반기 론칭을 예고한 신인 보이그룹들의 방향성은 과연 어떤 유산을 따를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