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빼곡한 아트페어에서 한 작가에게 온전히 공간을 내어준다는 것.
키아프 서울 2026의 솔로 부스 중 주목해야 할 여덟 곳을 골라, 그들이 선택한 작가를 갤러리의 목소리로 소개한다.

RHO GALLERY
노화랑

이강욱, ‘The Gesture – W25085’, 캔버스에 혼합 매체, 61×91cm, 2025

이강욱
LEE KANG WOOK

“이강욱의 작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세포를 관찰하고 작은 세계와 거대한 우주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작은 존재 안에 담긴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표현한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색을 올리고, 다시 반투명한 흰색을 덧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며 화면을 완성하는데, 이전의 색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남겨두기 때문에 화면 속에는 작업을 이어온 시간과 작가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축적되며 깊이와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이강욱의 작업은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미시적 세계와 기하학적인 형태에 집중하다 색의 레이어를 더욱 깊이 쌓으며 공간감을 확장했고, 최근에는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화면을 만들어가고 있다. 키아프 서울 2026에서는 작가의 작업이 변화해온 과정을 한 흐름으로 보여준다. 작품 앞에서 먼저 전체 화면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을 느껴보고, 이어 가까이 다가가 겹겹이 쌓인 색의 흔적과 미세한 층을 천천히 살펴보기를 바란다.” 노화랑 실장 손영주

GALLERY DOLL
갤러리도올

권훈칠, ‘오색만다라’, 카드보드지에 한지, 42×42cm, 2003

권훈칠
KWON HOON CHILL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갤러리도올은 그의 후기 대표작인 ‘심문’을 비롯해, 2003년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중적으로 작업한 ‘만다라’ 연작을 선보인다. 두 차례의 국전 수상과 서울대학교 졸업, 이탈리아 유학을 거친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어느 한쪽에도 머물지 않는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그린다는 사실 자체가 나의 즐거움”이라고 말했지만, 대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비정형적 형태와 색채, 물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회화의 조형적 가능성과 그것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 작품 ‘오색만다라’는 색이 있는 한지를 삼각형으로 잘라 보드지 위에 붙이는 과정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한지의 미묘한 농도와 색조의 차이는 각각의 삼각형에 서로 다른 표정을 부여하고, 화면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리듬과 질서로 이어진다. 단순한 삼각형의 반복과 조합은 부분과 전체, 규칙과 변주의 관계를 만들며 새로운 공간을 형성한다. 이때 한지의 물성은 색과 형태를 통해 조용히 작용하고, 반복 속에서 생겨나는 작은 차이는 화면에 생동감을 더한다. 작품은 이처럼 색과 형태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균형과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갤러리도올 큐레이터 신희원

MOIN GALLERY
모인화랑

심철웅, ‘해금강’, 캔버스에 유채, 72.7×90.9cm, 2026

심철웅
SIM CHEOL WOONG

“심철웅 작가는 오랫동안 영상과 회화를 오가며 이미지 속에 축적되는 시간과 기억을 탐구해왔다. 올해 키아프 서울 솔로 부스에서는 ‘역사적 알레고리 풍경들’을 중심으로 그 관심이 개인의 기억을 넘어 역사와 장소에 대한 시선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1935년 경성 충무로에서 출판된 <금강산첩>에 사진으로 기록된 풍경과 오늘날의 도시 풍경은 언뜻 전혀 다른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심철웅의 작업 안에서는 모두 수많은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하나의 ‘데이터’로 연결된다. 과거의 사진이 현재의 회화로 다시 나타나고,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이 작가의 붓질로 치환되는 과정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다. 작가에게 금강산은 아직 직접 가보지 못한 미지의 장소인 동시에, 분단 이전의 기억과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중첩된 상징적인 풍경이다. 그는 1930년대 사진이라는 과거의 기록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고 상상함으로써,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중첩된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과 아픔, 그리고 희망을 회화로 담아낸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는 하나의 풍경 안에 얼마나 많은 개인의 기억과 시대의 역사가 쌓여 있는지를 바라보는 심철웅 작가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모인화랑 대표 김진화

PIBI GALLERY
피비갤러리

차혜림, ‘Be Right Back: On the Death of an Author’, 캔버스에 아크릴릭과 유채, 80×80cm, 2026

차혜림
CHA HYE LIM

“직접 쓴 글을 바탕으로 회화, 조각, 설치 등 매체를 폭넓게 다뤄온 차혜림 작가는 작품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어떤 공간에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따라 서로 연결되며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피비갤러리는 신작 ‘Be Right Back: On the Death of an Author’ 20여 점을 중심으로 차혜림 작가를 소개한다. 디지털 환경에서 텍스트와 이미지가 알고리즘을 거치며 정제되고 변형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작품으로, 작가는 저자의 고유한 리듬과 어조, 문체, 감각적 차이가 희미해지거나 삭제되는 현상을 회화적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을 통한 정보처리가 일상화된 오늘날, 창작자의 개별성과 저자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기술적, 문화적 환경을 반영한다. 해당 연작은 큐브 형태의 알루미늄 피봇 구조물과 회화를 결합한 설치로 구성되며, 구조물과 연결된 회화는 각도에 따라 서로 겹치거나 가려지며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관람객이 직접 이동하며 작품 사이의 관계와 변화하는 장면을 경험하면서 작가의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피비갤러리 대표 김혜경

FILL GALLERY
필갤러리

곽남신, ‘어떻게 된 거야’, 캔버스에 아크릴릭, 돌가루, 91×73cm, 2021

곽남신
KWAK NAM SIN

“1970년대 말 희미한 나무 그림자 작업에서 출발해 파리 유학 시절의 ‘이콘(Icon)’ 탐색기, 그리고 인물 그림자와 오브제를 결합한 ‘통섭기’를 거쳐, 현재 ‘허상의 허상’이라는 독자적 조형 세계를 구축한 곽남신 작가. 그림자와 실루엣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발전시켜온 그는 단순화된 인물의 몸짓과 기호를 통해 실재와 허상,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특유의 위트와 유희, 아이러니를 바탕으로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환기하는 것이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특징이다. 필갤러리에서는 그의 대표작과 신작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작가는 검은 면(실루엣)과 구리선, 도려낸 하드보드지 형상을 다층적으로 중첩해 강렬한 ‘눈속임(Trompe-l’œil)’ 효과를 연출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삶의 덧없음과 현대인의 위태로운 실존을 작가 특유의 위트와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깊이 있는 탐구라 할 수 있다.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유기적으로 허무는 공간 연출을 통해 관람객에게 다각도의 시각적 자극을 선사하고자 한다. 관람객은 작품 사이를 거닐며 환영과 실재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현대적 유머를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곽남신 작가의 정점에 달한, 현재진행형으로 확장되고 있는 입체 및 회화 세계를 가장 밀도 있게 경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필갤러리 대표 최윤정

HORI ART SPACE
호리아트스페이스

김남표, ‘Memento Mori #11 ’, 캔버스에 파스텔, 116 .8×91cm, 2026

김남표
KIM NAM PYO

“김남표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소재를 넘나들며 작업해왔고, 최근에는 정물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와 오랜 시간 함께하며 이 변화가 갖는 의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호리아트스페이스는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작가만을 위한 무대를 온전히 펼쳐 보이고자 한다. 오랫동안 제주 바다와 히말라야 등지의 실경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그려온 김남표 작가에게 ‘꽃’은 낯선 전환이었다. 작가는 꽃을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잘린 순간부터 시들어가는 ‘찰나의 존재’로 바라본다. 화려함의 절정이 곧 소멸의 시작이라는 인식은 신작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오랜 시간 이어온 화두로, 이 개념은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는 작가가 파스텔과 유화, 두 재료로 같은 주제를 어떻게 다르게 다루는지도 함께 조명한다. 손끝으로 문질러 완성한 파스텔의 결과 두텁게 쌓아 올린 유화의 마티에르를 나란히 살펴보길 권한다.” 호리아트스페이스 디렉터 고은주

KAZE ART PLANNING
카제 아트 플래닝

스가와라 이치고, ‘DUST MY BROOM’ 연작, 패널에 입체 UV 잉크 프린트, 150×187.5×3cm, 2023

스가와라 이치고
ICHIGO SUGAWARA

“스가와라 이치고는 사진을 통해 빛을 탐구하며, 빛의 본질과 그것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온 일본 작가다. 그는 각각의 대상과 진지하게 마주하고 그 성질과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며, ‘오브제로서의 사진’이라는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다듬어왔다. 작가에게 사진은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다. 다양한 대상을 관찰하고 그 과정을 통해 마주한 것을 알아가는 방식이며, 스가와라는 이를 통해 대상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 안에 존재하는 ‘진실’을 발견하고자 한다. ‘DUST MY BROOM’은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시선에서 출발한 작업이다. 작가는 약 20년 동안 재활용 현장을 관찰하며 철과 같은 버려진 재료에 시선을 두고, 재료들의 형태와 질감, 빛, 그리고 존재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왔다. 그곳에서 포착한 아름다움은 그가 사진을 통해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빛의 온기와도 맞닿아 있다. 동시에 작가에게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의 물질로 존재한다. 프린트가 지닌 물질성은 그 대상이 현실 세계에 존재한다는 증거이며, 그 안에서 진실 또한 모습을 드러낸다. 키아프 서울을 찾은 관람객이 카제 아트 플레닝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스가와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마주하기를 바란다.” 카제 아트 플래닝 큐레이터 미야모토 테츠아키(Tetsuaki Miyamoto)

MYTH GALLERY
미쓰 갤러리

류드밀라 바로니나, ‘DRYING OUT’, 텍스타일, 프린팅, 바틱, 아크릴릭, 자수, 170×200cm, 2026

류드밀라 바로니나
LYUDMILA BARONINA

“작가 한 명만을 조명하는 자리는 언제나 하나의 도전이다. 여러 작가의 작업을 병치해 대화를 만들어내는 대신, 한 작가의 메시지만을 분명히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한 작가에 대한 갤러리가 가진 신뢰의 표현이자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하다. 류드밀라 바로니나의 작업은 키아프 서울 2026이 탐구하는 주제 ‘공존(coexistence)’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디지털과 육체적 세계, 일상의 미신과 신화, 익숙해 보이는 장식과 그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무언가처럼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고 만나는 지점을 한 화면 안에 결합하기 때문이다. 바로니나는 문화 전반에 흐르는 상징과 미신, 아이러니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그의 작품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 없는 그림책인 ‘빔멜부흐(Wimmelbuch)’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 인물과 장면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서로 얽힌 이야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관람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인다. 작가가 구축한 복잡하고 촘촘한 서사는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또한 모든 작품을 전적으로 수작업으로 완성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보석처럼 정교한 직물 작품들은 수주에서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 직접 채색하고 자수를 놓아 완성된다.” 미쓰 갤러리 코파운더 율리아 뱟키나(Julia Vyatkina), 올가 프로파틸로(Olga Profati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