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일제히 서울로 향하는 아트 페어 시즌. 7,000개의 대나무가 직조해 낸 신비로운 숲부터, 세계적인 거장 서도호의 30년 궤적,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박서보미술관의 개관전까지. 놓치기 아쉬운 특별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집과 이동, 그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서도호의 30년 예술 궤적

한국 동시대 미술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여 년간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그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기념비적인 자리인데요. 작가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집을 매개로 개인과 공동체, 이주와 기억, 안과 밖의 경계라는 보편적이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입체적으로 풀어냅니다. 특히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초기 작품과 대형 드로잉이 최초로 공개되어 평면과 공간을 끈질기게 탐구해 온 작가의 근원적인 조형적 뿌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천으로 지어진 반투명한 집과 복도, 계단 사이를 걷다 보면 관람객 역시 각자의 기억과 마주하며 뭉클한 서사를 써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거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교차하는 웅장한 여정에 동참해 보세요.

프리즈 하우스 서울


Tanabe Chikuunsai IV, STAND (in situ at Ninomaru Palace, Nijo Castle, Kyoto), 2021, Courtesy of Yumekoubou Gallery (Photo by Pedro M. Shimura)

© The Estate of Sarah Charlesworth.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Photo: Steven Probert Studio

대나무로 엮어낸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과 거장들이 해석한 풍경의 미학

아트 페어 시즌을 맞아 특별한 전시가 프리즈 하우스 서울에서 막을 올립니다. 유메코보 갤러리와 폴라 쿠퍼 갤러리가 함께 꾸민 이번 공간은 자연과 풍경을 바라보는 다층적인 시선으로 가득한데요. 가장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다나베 치쿤사이 4세의 대규모 설치 신작 《비가시의 숲》입니다. 무려 7,000여 개의 대나무 조각을 엮어 만든 거대한 구조물은 지하의 균사체 네트워크이자 현대의 디지털 정보망을 은유하죠. 관람객이 직접 그 사이를 거닐며 거대한 연결망의 일부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하는데요. 폴라 쿠퍼 갤러리의 그룹전 《숲·대지·초원》 역시 솔 르윗, 세실리 브라운, 마크 디 수베로 등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해 풍경을 다채로운 매체로 재해석합니다. 두 전시 모두 예약 없이 무료입장 가능하니 아트 페어의 열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여유로운 영감을 충전해 보세요.

솔루나

박종진, Strata of Illusion WOBGBRY, 52x46xh70cm, 도자 슬립, 종이, 안료, 2026
편예린, The Form of Disappearance #5, 55x50xd32cm, 석기, 백자, 안료, 암석, 원석, 유약, 2026

고정된 실체를 넘어 관계의 장으로

뻔한 캔버스 회화에서 벗어나 재료 자체가 품은 고유한 시간과 기억을 오롯이 감각하고 싶다면 갤러리 솔루나를 추천합니다. 홍콩의 솔루나 파인아트와 서울의 솔루나 파인크래프트가 공동 기획한 전시 《물성의 언어》는 동아시아 특유의 미학과 물질성에 깊이 주목합니다. 회화, 조각, 도자, 목공, 금속, 심지어 말총을 활용한 섬유 공예까지.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참여해 물질을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닌 예술적 사유가 시작되는 장소로 새롭게 조명하죠. 작품 속 물질들은 고정되어 멈춘 실체가 아니라 작가의 감각과 행위를 거쳐 끊임없이 생성되고 관계를 맺는 살아있는 과정으로 다가옵니다. 다채로운 질감이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조형미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동시대 공예와 미술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접점을 눈앞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박서보미술관

박서보미술관
박서보미술관

마침내 문을 연 단색화 거장의 공간

한국 현대미술의 거목 故 박서보 화백의 숨결이 깃든 박서보미술관이 드디어 첫 문을 엽니다. 역사적인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박서보 화백과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활동 작가 흐엉 도딘의 작품을 교차시키며 비움으로서 비로소 완성되는 충만함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한지 위에 끊임없이 선을 긋고 밀어내며 감정을 비워낸 박서보, 그리고 광물 안료를 수십 겹 층층이 쌓아 올려 스스로 발현되는 빛을 만들어낸 흐엉 도딘. 매체는 다르지만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어 고도의 밀도에 도달하려는 두 거장의 숭고한 수행적 태도는 놀랍도록 맞닿아 있습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흑백 한지묘법에서 색채 한지묘법으로 확장되는 박서보의 위대한 세계를 감상해 보세요. 여백 속에 숨겨진 단단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