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일상을 재편하고 데이터가 삶의 대부분을 번역하는 시대, 우리는 기술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올해 키아프 서울의 특별전, <HUMAL>과 <VIRTUAL VITAL>에 함께한 세 명의 작가가 몸의 감각을 탐구하며 건져 올린 ‘기술과의 공존’을 위한 생각들.

강건
자신의 얼굴을 빚는 데서 출발해 인간과 동물이 뒤섞인 형상을 만들어왔다. 이성과 사회성이 억누르는 ‘동물적 본능’을 거친 재료와 깨지기 쉬운 외피로 표현한다.

곽지수
타인의 시선에 의해 신체의 정체성이 고정되는 경험에서 출발해 조각 작업을 한다. 매끈한 이미지를 훼손해 활용하며 서로 다른 이미지와 사물이 뒤섞인 몸을 만든다.

최수앙
변형되거나 해체된 인체를 묘사한 조각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감정적 서사를 파고들어왔다. 조각을 고정된 사물이 아니라 주변과 끊임없이 조응하며 형성되어가는 과정으로 본다.
‘인간과 기술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키아프 서울 2026의 특별전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공지능(AI)이 일상을 재편하고 데이터가 삶의 대부분을 번역하는 시대, 인간의 감각이 지닌 가치를 되짚으며 기술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번 특별전은 두 개의 전시로 구성된다. 먼저 인간(Human)과 동물(Animal)을 결합해 이름 지은 <HUMAL>은 ‘몸’을 다뤄온 작가 7인과 함께 신체적 감각의 본질을 탐구하며 문명화된 자아가 품은 본능을 들여다본다. 한편 <VIRTUAL VITAL>은 작가 4인의 작품을 증강현실(AR)로 구현해 디지털 공간에 새로운 감각과 생명력을 펼쳐낸다. 올해의 특별전에 함께한 세 명의 작가를 화상으로 만나 인간과 기술을 둘러싼 질문을 폭넓게 나눴다. <HUMAL>의 작가 강건과 곽지수, <VIRTUAL VITAL>의 작가 최수앙이 각자의 작업 세계에서, 나아가 예술 안에서 건져 올린 ‘기술과의 공존’을 위한 생각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올해 키아프 특별전에 관한 대화를 온라인으로 나누게 되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최수앙 줌으로 미팅을 할 때마다 이런 환경이 자연스럽고 익숙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낯설긴
합니다.
곽지수 오늘 줌 대담이 있어 작업실에 오는 데도 모처럼 화장을 하고 나왔어요. 그런데 하의는 작업복을 입고
있습니다.(웃음)
강건 두 분 다 작업실인 듯한데, 저는 더위를 핑계로 집에 있어요.(웃음)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올해의 특별전 <HUMAL>과 <VIRTUAL VITAL>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 그리고 ‘몸의 감각’입니다. 평소 이 주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나요?
강건 형상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주변과 관계 맺으면서 변화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어요. 인간의 몸이 느끼는 감각과 인공지능을 통해 쌓이는 정보는 확실히 형태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다루는 이번 특별전이 제 작업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기회로 여겨졌습니다.
곽지수 요즘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HUMAL>에 함께하면서 제 작업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어요. 몸의 감각과 생명력,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은 제가 작업에 계속 끌고 오는 개념이기도 해요.
최수앙 물질을 직접 다루는 작업을 해온 만큼 <VIRTUAL VITAL>에서 실체가 없는 조각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저의 실제 작업이 디지털 형태로 구현돼 현실 공간과 겹쳐지면 어떤 감각이 만들어질지 기대됩니다.
세 분 모두 ‘몸’을 대상으로 작업해왔죠. 완결되지 않거나, 고정돼 있지 않거나, 변형 혹은 해체된 몸을 표현해왔다는 교집합이
있는 것 같아요. 몸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무엇인지, 몸을 다룬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강건 자화상과 두상에서 시작해 몸 전체로 작업 범위를 확장해왔어요. 인간과 동물의 형상이 결합되거나, 하나의 몸이지만 분열된 형태를 보이는 식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본적으로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몸이 자아를 담아두는 그릇이라기보다 통증이나 쾌감을 비롯한 감각과 기억 등이 축적되는 장소로 보고 있어요.
곽지수 어렸을 때 유학을 떠나 다양한 국적, 인종, 종교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데, 저는 언제나 ‘동양인 여성’으로만 읽히는 거예요. ‘타인은 내 몸을 보고 나를 인식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일찍 얻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과 정체성을 다루는 작업에 관심이 갔어요. 사회적 정체성이나 한계를 초월한 몸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요. 최근에는 여러 기억과 상태, 사물 등이 얽혀 하나의 인체를 이루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품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요소들이 많은데, 관람객마다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환경과 관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면면을 입체에 구겨 넣는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최수앙 사람의 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인체의 재현을 통해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의 서사를 담아왔다면, 지금은 조각을 하나의 몸으로 간주하고 그 몸이 생성하는 과정과 조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몸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이나 환경적 요인과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 끊임없이 갱신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강건 작가님과 곽지수 작가님은 <HUMAL>에, 최수앙 작가님은 <VIRTUAL VITAL>에 참여하죠. 이번 특별전에서는 몸의 어떤 특성에 더욱 주목했나요?
강건 평소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단단함과 취약함 같은 상반된 성질을 하나의 형상 안에 두는 작업을 많이 해요. <HUMAL>에서는 무너지면서도 지속되는 성질에 주목한 조각 시리즈 ‘Dispparatus’ 중 일부를 전시합니다. 몸이 안정된 구조라기보다 손상되고 회복되면서 변화하는 상태라고 생각해서 ‘붕괴’와 ‘유지’의 공존을 보여주고 싶어요.
곽지수 ‘몸은 감정이 머물며 쌓이는 장소’라는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어요. 몸이 감정을 품고 견뎌내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HUMAL>을 준비했고, 계속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이는 몸들을 전시하려고 해요. 전시작 중 ‘기도하는 여인’은 가볍고 연약한 재료들이 뒤엉켜서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몸이에요. 그 안에 앵무새, 보석, 꽃 등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면서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최수앙 <VIRTUAL VITAL>에 ‘괴물원’ 연작 중 한 점을 AR로 구현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제가 실제의 ‘괴물원’ 연작을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은 조각은 다양한 조건과 관계 속에서 그 존재 방식이 변화하는 사물이라는 점입니다. 이 작업을 AR로 구현하는 작업 과정 중에 특히 3D 스캔하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캐너를 들고 수 시간 동안 조각의 몸을 훑으며 움직이는 촬영자의 몸짓은 기계와 관계하며 생겨난 새로운 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관람자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직접 몸을 움직이며 이 작업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직접 마주하지만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몸이 일으킬 새로운 정동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HUMAL>은 ‘거친 몸과 물성’을, <VIRTUAL VITAL>은 ‘몸이 사라진 디지털 생명’을 다룰 예정입니다. 정반대로 여겨지는 두 전시를 나란히 둔 점이 흥미로워요.
최수앙 얼핏 <HUMAL>과 <VIRTUAL VITAL>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자연이라는 대상과 디지털 기반의 기술 문명이 대립하는 구조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물질에 기반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고, 두 전시의 형식만 실제와 가상이라는 차이를 준 점을 보면, 이번 특별전은 기술 문명 속에서 형성된 새로운 관계와 공존에 관한 질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강건 저도 초반에는 <HUMAL>과 <VIRTUAL VITAL>과 이 반대된다고 봤어요.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서도 계속 얼굴과 몸을 만들고, 그 안에 움직임이나 감정을 부여하잖아요. ‘그렇다면 몸이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거나 재창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의 몸은 물질과 데이터 사이에서 어떤 형태로 변해갈지, 그 변화 속에서 이전과 같은 감각이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해요. 몸이 기존의 가둬진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하고요. 이번 특별전이 몸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곽지수 특별전이 두 개의 전시로 구성된다는 걸 알고 나니 ‘만약 내가 <VIRTUAL VITAL>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라고 자문하게 됐어요. 제 작업은 조각인 데다 간신히 기립한 형태의 몸이기 때문에, 항상 중력을 염두에 두고 있거든요. 중력이 없는 가상의 환경에서 작업한다면, 무엇에 반응하고 저항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굉장히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숙제일 것 같아요.
최수앙 ‘디지털은 몸이 없는 비물질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사실상 디지털 경험은 다양한 디바이스를 비롯한 여러 매개가 필수적이고, 전기와 통신, 물 같은 거대한 인프라 구조가 필요하잖아요. 이렇듯 디지털 정보가 생성되고, 처리되고, 전달되는 과정은 엄청난 물질의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고 봅니다. 다만 우리는 눈앞의 시청각 정보로 그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물질적 기반을 자주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강건 실생활에서 AI를 많이 쓰고 있어요. 세 종류의 AI를 이용 중이고, 홈페이지 제작 등에 활용하기도 했으니 지금의 제게 AI는 유능한 비서 같아요. 그럼에도 AI가 작업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여겨왔어요. 질문을 듣고 보니 영향받은 부분이 있겠다 싶네요. 작가에게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업 외적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측면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공지능이 기존 작업을 대체한다기보다 작업을 둘러싼 경험의 범위를 넓혀주는 거죠.
곽지수 제게도 AI가 아주 유능한 비서예요. AI는 이미 일상과 작업 환경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고, 작가의 상상을 구현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더욱 폭넓게 활용될 거라고 봐요. 다만 제 작업에서는 최대한 AI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기술이 익숙해지고 점점 발전할수록, 오히려 기술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물질의 감각과 몸의 경험, 실제로 마주하는 미술이 지닌 가치가 더 커지지 않을까 싶어요.
최수앙 저는 AI를 아주 가끔 대화를 나누는 정도로 사용합니다. 사실 어떻게 쓰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요.(웃음) 작업에 관련한 것은 뭔가 사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일상에서 누군가와 나누기 어색하거나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AI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늘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 그 대화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친밀한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AI를 작업 과정에 직접적인 수단으로 활용하지는 않지만, AI가 인식과 감각에 가져올 변화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긴 해요. AI가 정말 빠른 속도로 저와 제 주변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을 때 ‘인간다움’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강건 본능적으로 손으로 직접 만든 작업에 눈길이 가는 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에는 대부분 붓 터치나 지문 같은 작가의 흔적이 있더라고요. 그게 망설임 또는 실수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인간이 온전한 원을 그리려한다고 치면,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은 그 과정에 있을 거잖아요. 그 마음 자체가 작품을 인간적으로 느끼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곽지수 인공지능은 논리적인 학습을 거듭하는 반면, 인간에게는 살아가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충동이나 직관이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은 투박하고 결점이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 솔직한 감각이 인간다움을 자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수앙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확장되는 감각이나 인식이 있다면 소외되는 것도 있겠죠. 그리고 그 소외에 대한 반작용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을 겪어나가면서 우리가 지각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와 그 변화의 지형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물리적 조건들이 달라지고 삶의 방식도 변화하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나가지 않을까요? 다만 그 관계가 ‘나’ 혹은 ‘인간’만이 아닌 ‘주변’과 ‘세계’로 열린 형태가 되길 바랍니다.
기술 문명의 발전과 인간성의 본질이 충돌하기 쉬운 오늘날, 두 가치가 예술 안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무엇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고 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강건 기술 문명의 발전과 인간성의 본질이 같은 힘을 가진다고 보지는 않아요. 전자의 힘이 훨씬 커다랗기 때문에, 공존을 위해서는 후자가 무너지지 않아야겠죠. 결국 인간성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술과 인간성이 충돌하면서 놓치게 되는 감각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건 예술의 영역이기도 하잖아요. 예술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불확실성까지 지키려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곽지수 마침 최근에 AI로 영상을 생성하는 실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무엇을 만들지 정확히 정해두지 않았더니 AI가 고삐 풀린 말처럼 뜬금없는 요소들을 넣기 시작하더라고요. 인간이 기술에 쉽게 끌려갈 수도, 기술을 잘 끌고 나갈 수도 있는 지금 시대에 중요한 건 ‘의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 방향성을 잘 세워둔다면, 기술이 훨씬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수앙 기술 문명과 인간성을 대립항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느냐, 그리고 무엇을 소외시키느냐가 늘 문제겠지요. 기술 문명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매체의 출현은 예술의 형태에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죠. 그리고 우리의 인식과 감각의 층위를 한층 넓혀왔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인간성의 본질을 관계로 본다면, 적어도 예술에서 인간성을 소외시키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술은 늘 소외된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존재의 가치를 복원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왔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