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과 새것 사이, 아름다움은 어떻게 이어지고 또 확장되는가. 양태오 디자이너가 총괄 디렉팅을 맡은 예올×샤넬 프로젝트 전시 <진소(眞素)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이 8월 21일부터 10월 16일까지 북촌 예올 북촌가에서 펼쳐진다. 본질을 가리는 장식을 걷어내고 재료가 가진 순수한 바탕을 바라보고자 한 기획의 전시에 앞서, 올해의 장인 조복래 소목장과 올해의 젊은 공예인 백경원 도자공예가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전통과 본질, 나아가 미래에 대해 물었다.

조복래 소목장의 ‘이층찬탁’에 백경원 도자공예가의 작품들을 올렸다.
벽에 걸어 편지 따위를 꽂아두는 고비를 재해석한 두 작가의 합작품 ‘고비 화병’.
함 5개가 포개지는 구조의 ‘오단함’에 백자토로 만든 테이블웨어를 담았다.
조복래 소목장의 탁자와 백경원 도자공예가의 화병.

올해의 장인

조복래 소목장

어릴 적부터 목재로 창호를 만드는 숙부와 당숙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며 자랐고, 정돈상 선생과 오행구 선생 문하에서 수련하며 못을 쓰지 않고 짜맞추어 농이나 장, 궤를 만드는 전통공예 기법인 소목 기술을 전수받았다.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경남 진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그곳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

‘사방탁자’

예올과 샤넬이 선정한 ‘올해의 장인’으로 선정됐다.

선정만으로도 기쁘지만 도자기를 작업하는 젊은 공예인 백경원 작가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좋다. 나무로 만든 가구와 흙으로 빚은 도자기는 무척 잘 어울린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렇게 반닫이 위나 사방탁자 위에 한 점 고아하게 놓여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 시절 창호를 만들던 숙부와 당숙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라 정돈상 선생, 오행구 선생 밑에서 전통 목가구를 배웠다. 40여 년간 한국 전통 나무를 매만져온 소목장이자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29호로서 어떤 자긍심을 지니고 있나?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천년 된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천년을 더 물려줄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의 전통 재료와 기술로 만든 작품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들 조현영 작가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가업 계승이 흔치 않은 시대인데 놀랍다.

요즘 가구는 대부분 수입 목재나 합판으로 대량생산을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소수의 장인이 젊은 세대에 기술을 전수하지 않으면 대가 끊긴다. 수익이 거의 없는 일이라 부모가 자식에게 기술이며 작업장이며 수십 년간 건조 중인 목재들을 넘겨주고 가르쳐야지 연고 없는 남에게 전승하기는 쉽지 않다.

수령이 수십, 수백 년에 달하는 한국산 나무만 구해 10여 년 동안 건조한 후 사용한다. 이번엔 어떤 나무를 사용했나?

느티나무 용목을 주로 사용했고, 오동나무와 먹감나무를 곁들였다. 용목은 솟구치는 용처럼 무늬가 울렁울렁 배긴 나무로, 한국의 것이 독보적으로 아름답다. 용목은 수령이 6백 년은 넘어야 정교한 무늬가 나오고, 토양과 기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대전 이남에서 주로 나는데, 워낙 드물어 구하기 힘든 귀한 것이다. 오동나무는 가볍고 부드러워 서랍을 만들기 적합하고, 새카만 먹감나무는 색의 조화를 추구할 때 쓴다.

그런 목재는 어떻게 구하는지 궁금하다.

수백 년 된 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어 자연적으로 고사하거나 댐 공사 등으로 벌목할 때만 구할 수 있다. 발품을 팔아야 하고, 나무 복도 따라야 한다. 나는 복이 많은 편이라, 내 공방에 보존 중인 목재 중에 30여 년 전 전북 진안 용담댐 공사 때 구해 건조한 것도 있다. 일본 목공예 국보분들이 와서 보고는 ‘금목’이라며 감탄하더라.(웃음)

못을 쓰지 않고 전통 짜맞춤 기법과 어교를 이용해 작업한다. 수고와 정성이 필요할 듯한데, 이 기법의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목재는 습도와 온도의 영향을 받아 여름엔 팽창하고 겨울엔 수축하는데, 거기에 못을 박아두면 계절이 반복되며 점차 느슨해진다. 그러나 짜맞춤 기법과 어교로 만든 목가구는 오랜 세월 형태를 유지한다. 수백 년간 이어진 조상의 지혜가 담긴 기술을 고집하는 이유다. 민어 부레를 사다 민어풀을 직접 쑤어 쓰는데, 인체에 무해하고 굉장히 오래간다. 나전칠기와 활을 제작할 때도 필요한, 한국에 없어선 안 될 고급 재료다. 어교로 만든 목가구는 옻칠로 마감하는데 아무리 좋은 마감재가 나온다 해도 옻만 한 건 없을 거다. 오래가고, 강도와 색상도 뛰어나고, 목재가 습기를 머금거나 벌레 먹지 않도록 하는 기능도 뛰어나다. 처음엔 다소 어두워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 투명해져 나무 본연의 색과 무늬가 그대로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곳이 보이는 곳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뿌리삼아 작업해왔다. 못을 쓰지 않는 전통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이 어떤 의미로 새겨졌나?

오행구 선생도, 정돈상 선생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정성을 다하라는 의미다. 앞과 뒤, 위와 바닥이 같게 어느 구석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아름다운 목가구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전시 제목인 <진소(眞素)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과 만들어내는 손을 뜻한다. 본질을 보고 어루만지는 경험은 어땠나?

우리 전통 가구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장석 또한 가구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어왔다. 장석을 더 많이 붙인다. 이번엔 장석을 최소화하고 그 자체로 수려한 용목 무늬를 드러내려 했다. 양태오 디렉터, 백경원 작가와 협업하며 전통 기술을 쓰되 현대적 디자인을 더한 결과다. 본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 만족스럽다. 당신에게 나무는 어떤 의미인가? 내 한평생 참 많이 보고, 참 많이 만지고, 앞으로도 서로 이어져 살아갈 단짝.

올해의 젊은 공예인

백경원 도자공예가

흙을 손으로 집고, 말고, 펴면서 쌓아 올리는 원초적인 손 성형 기법으로 도자 작업을 하는 백경원 도자공예가는 자로 잰 듯 정확하고 계획된 작업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작업을 지향한다. 도자 작업의 ‘기(器)’를 안과 밖, 공간과 공간, 비움과 채움 사이 긴장과 균형으로 해석하는 작가의 조형 언어는 단출하면서도 무한한 세계를 구축해가는 중이다.


‘Tableware’
‘Sea Bouquet – the new wave’

예올과 샤넬이 선정한 ‘올해의 젊은 공예인’으로 선정된 소감이 어떤가?

무척 기쁘다.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손 성형 기법을 고수하며 도자 작업을 한다. 물레 성형이나 석고 틀을 이용하는 캐스팅 기법 대신 오로지 손만으로 작업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업할 때 더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작업해나갈 수 있다.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작하긴 하지만 철저하게 계획하고 작업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만들면서 바꾸기도 하고, 잘라내기도 하며,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는 즉흥성을 선호한다. 작가로서 흙이라는 재료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마치 자연에 놓인 화강암이나 짙푸른 계곡물처럼 보인다.

의도한 바다. 안료를 섞은 흙을 초벌한 뒤 부수어 체에 쳐 일정한 크기의 알갱이들을 얻은 후 점토판 에 흩뿌리고 스퀴즈로 밀면 불균질하고 우연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코발트색을 바탕으로 만든 검은 안료를 써서 얻은 알갱이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데, 유약과 어우러지며 산수화 같은 느낌이 나서 마음에 든다. 산수와 크고 작은 섬이 무리를 이룬 군도(群島)를 담은 수묵담채화 같은 작업을 하려 했다. 기 형태의 작품, 삼각뿔을 이어 붙인 작품 등.

그 자연스러움이 비움과 여백을 담아내는 도자기의 ‘기(器)’와도 잘 어우러진다.

내게 ‘기’는 안과 밖, 공간을 구획하는 공간, 비움과 채움이다. 항상 그 상관관계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 제목인 <진소(眞素)공예: 진경의 눈, 조형의 손>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과 만들어 내는 손을 뜻한다. 이번 작업에서 집중한 본질은 무엇인가?

백자토, 즉 재료의 물성. 지금까지는 형태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혔다면, 이번엔 질감을 먼저 고민하고 그와 어울리는 형태인 산수의 모습을 찾아 입혔다. 점토가 지닌 백색을 더 매력적으로 연출할 기법을 고민해서 개발한 결과다. 본연의 색과 질감이 빛날 수 있도록 했다.

백자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백자토는 굉장히 예민하고 다루기 어려운 흙이다. 공장에서 나온 점토를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종이 섬유나 사질(沙質, 모래 성분으로 된 토질)을 잘 배합해야 좀 더 용이하게 쓸 수 있다. 어쩌면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흙을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백자 작업을 좋아하는 건 백자가 지닌 단아한 품위와 단정한 자세 때문이다.

한평생 나무를 다뤄온 조복래 소목장과 협업한 과정은 어땠나?

사실 나는 현대미술 교육 과정에서 작업을 배워왔기 때문에 전통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이번 작업을 함께 하며 한평생 전통 목가구를 만들어온 선생님의 자부심이 참 멋지고 자랑스러웠고, 닮고 싶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 한국의 미에 대해 더 알게 되는 계기였다. 조선 시대 분청사기도 무척 좋아하는데, 그 대담함과 자유분방함을 계승한 작업도 해보고 싶다.

작가로서 흙은 어떤 의미인가?

참 말 안 듣는 친구.(웃음) 흙이라는 몸을 빌려서 평생 작업을 해오면서 느낀 건 흙의 성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문제로도 모든 게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거다. 같이 오래도록 함께했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러나 동시에 가장 잘 가지고 놀 수 있는 양가적 감정이 드는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