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때때로 생명이 없는, 살아 있지 않은, 부드러운 육체들(soft bodies)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누군가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환상과 현실, 버려짐과 그로 인한 두려움 같은 중요한 개념을 마주하며 이를 조율해나간다. 그리고 훗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이 부드러운 육체들은 어쩌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는 자신의 삶에 존재했던, 그리고 모두의 삶에 존재했을 (비인간) 신체들의 초상을 통해 애착과 상실, 전이와 순환을 담아냈다.

4년 전 겨울, 모든 것을 더 이상 환원 불가능한 상태로 태워버린 불과 이후에 남은 재를 회화와 설치 작업으로 보여주며 이전과 이후, 창조와 파멸, 그 과정의 의미를 사유했던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가 자신과 가족의 삶에 존재하는 비생명체와 맺는 관계를 통해 애착과 상실, 그것이 전이되고 순환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모두의 한 시절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비생명체, 애착 인형에 담긴 온기와 감각을 영상과 사진, 프린트와 회화 등 다양한 방식을 겹겹이 쌓아가며 완성한 작품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어떤 존재들을 소환하게 한다. 작가는 살아 있지 않은 이 존재들을 채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을 보듬어주는, 가장 강한 생명력의 담체로 바라보고 자신의 작업 안으로 들여왔다. 묘한 온기가 가득한 전시장 안에서 작가에게 생명체와 비생명체 신체에 깃든 에너지와 신체를 통한 감각이 어떤 경험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지난 전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명도 시적이라는 인상이 든다. 전시 <Post Ritual Bodies(제의를 품은 신체들)>의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전시 제목을 직접 짓는 편인데, 이때 이를 영화 제목처럼 생각한다. 나에게 전시는 전체 작품 세계 안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국제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Image, Symbol, Prayer(이미지, 상징, 기도)>는 전시작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서 제시한 제목이라면, 이번 전시 <Post Ritual Bodies(제의를 품은 신체들)>는 지난 전시의 후속이라는 생각을 한다. 작품을 살아 있지 않은 육체이자 생명력의 담체로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지은 제목이다.
전시명에서도 가늠할 수 있듯, 이번 전시에서는 신체에 깃든, 혹은 신체를 통한 감각과 기억을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연유로 예술 세계 안에 ‘신체’라는 매개를 들이고 감각하게 되었나?
애니미즘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생명체와 비생명체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영혼은 생명이 있는 것에서 없는 것으로도 이동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숨을 쉬고 있는가?’, ‘서로 다른 육체를 통과한 공기는 과연 무엇이 되는가?’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됐다. 한병철 작가의 저서 <시간의 향기>에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감각이 곧 시간을 인지하게 해주는 지표”라는 설명이 나온다. 말하자면 ‘시간의 향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돌리게 해주는 경험인 셈이다. 이렇듯 나의 작업에서도 꾸준히 감각은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최근에는 영화나 스크린에 얽힌 감각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마치 영화(필름) 그 자체도 하나의 육체를 지닌 것처럼 사유하는 것이다.
전시에 초대된 ‘부드러운 신체들(soft bodies)’, 즉 자신과 가족의 삶에 함께한 애착 인형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순환의 장이 담겨 있다. 인간(생명체)과 비생명체 사이에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을 작품 안으로 가져오면서 고민하고 의도한 부분은 무엇인가?
최근 영적 에너지를 열 신호와 칼로리 소화 과정으로 접근해보는 중이다.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2세기 중세 유럽 베네딕트회의 수녀원장이자 신비주의자)이 말하는 전통에서 태양은 우리 우주에서 신을 가장 가깝게 대변하는 존재이고 그에 따라 열과 빛은 우리가 신과 연결되는 방식이 된다. 말 그대로 태양에너지로 광합성을 한 식물을 먹음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 식물의 양분이 되면서 이 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영적 에너지로서 열이 희망과 두려움,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긴 온갖 감각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우리 주위의 비생명체에 대 한 감각으로 이어졌다. 그 (비생명체) 육체들은 이 에너지를 어떻게 품고 지낼까? 그들은 어떤 세계를 만들어낼까? 그렇게 돌아가신 조부모님의 한 시절과 나의 어린 시절에 우리 곁에 있었고, 지금 어린 조카들 곁에 있는 애착 인형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인형들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갈수록 더욱 생생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결국 이 인형들의 사적 초상이자, 더 정확히는 그 안에 남아 있고 간직된 흔적을 보여주는 전시를 구상했다. 작업은 가족들의 온기가 애착 인형으로 전이되고, 그 열을 열화상 필름 촬영으로 다시 포착해내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이에 페인팅이 더해진 프로젝션 스크린이 그 온기를 받아들이는 마지막 육체로 이용되었다. 이 작업은 열과 빛이 비생명체를 통과해 흐르는 순환 과정을 조형적으로 구현해낸 결과물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인형들의 우주에서 태양과 같은 존재인 셈이다.
작품에 어린 시절을 함께한 곰 인형이 등장한다. 오늘도 함께한 ‘마이클’ 말이다.(웃음)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곰 인형과 본인의 관계는 무엇이었고, 그 관계는 어떤 의미로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나?
곰 인형들은 설명할 수 없거나 해소되지 않는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다. 나는 내 인형들에 깊은 애착을 느꼈고, 꽤 오랫동안 침대 머리맡에 이들을 두고 지냈다. 가장 대표적으로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실상 나의 거울이라 할 곰 인형이 마이클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마이클을 방콕 집에 두고 떠났지만, 지난 몇 년 사이 다시 마이클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조부모님의 모습을 영상에 담으면서, 토끼 인형을 비롯한 또 다른 애착 인형들이 더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나는 이 인형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 그분들을 돌보러 온 천사들의 형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때때로 생명이 없는, 살아 있지 않은, 부드러운 육체들이 주어진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누군가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동시에 환상과 현실, 버려짐과 그로 인한 두려움 같은 중요한 개념을 마주하며 이를 조율해나간다. 그리고 훗날 생의 마지막, 탈창조(decreation) 과정에 이르렀을 때 이 부드러운 육체들은 어쩌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모지나 아바타, 심지어 라부부 같은 아트 토이로 세상이 점점 더 귀여워지는 것을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 인형에 깊이 끌리는 시기에 오래전 함께한 인형으로 돌아가, 그에게 남겨둔 것들을 다시 꺼내어 풀어보고 싶어졌다.

작업 과정에서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가족들이 애착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을 포착한 지점이 특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과정을 통해 발견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혹은 촬영 과정에서 생각지 못한 발견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에 일종의 생명력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람들이 영상을 직접 보지 못하고, 스크린 위에 인화되어 남겨진 사진만을 보게 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 영상들이 사람이 아닌 유령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오직 그 이후의 흔적뿐이라는 개념이 마음이 든다.
4년 전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불과 재의 그림 안으로 관객을 초대했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 뒤쪽에 자리한 전시장에서 불의 잔재를 다룬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농작물을 태우고 남은 재를 모아 조각한 작품 위에 직접 쓴 기도문이 더해졌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이 어떤 질문을 품길 바라나?
뒤쪽 전시장에 선보이는 글귀들은 사실 더 큰 전체의 일부다. 기도문은 새로운 설치 작업을 선보일 때마다 조금씩 다듬어져 다시 쓰인다. 제의가 만약 하나의 영화라면, 이 기도문은 영화 대본과도 같은 셈이다. 다음에 기도문의 일부를 남겨둔다.
From Dust To Dust
Give Us Rebirth
For Beings That Never Materialized
Grant Them Flesh To Filter Every Sound
And May All Their Songs Be Beautiful
Let Those Songs Become Nightmares
흙에서 흙으로
우리에게 재탄생을 허락하소서
끝내 실체화되지 못한 존재들에게
모든 소리를 걸러낼 육신을 내리시고
그들의 모든 노래가 아름답기를
그 노래들이 악몽이 되게 하소서
4년 전 전시 당시 “재라는 것이 타고 남은 잔여물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소망을 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번 작품의 재에도 이 같은 소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나?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재는 남겨진 육체이자, 계속 머무는 무언가를 품어내는 담체다. 여전히 불사조인 셈이다.
이번 전시가 관객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기를 바라나? 또 스스로에겐 어떤 경험이 되기를 바라나?
이번 신작은 모두 새로운 작업 방식을 택했는데, 그 과정이 주는 도전을 매우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관객이 이번 전시에서 가슴에 품고 기억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작가로서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Post Ritual Bodies(제의를 품은 신체들)>
기간 8월 28일~10월 31일
장소 국제갤러리 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