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가을, 부산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세계가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운 건 각자의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해 분투하는 프로그래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오직 ‘좋은 영화’만을 생각하며 선별한 2백47편의 공식 선정작과 69편의 커뮤니티비프 상영작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채운다. 7인의 프로그래머가 깊은 고심 끝에 이 중 눈여겨봐야 할 작품을 추천했다. 이 작품이 관객과 만나 일으킬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Korean Cinema

정지혜 프로그래머

먼저 비전-한국의 경우, 김미영, 박근영, 박홍민, 장우진 같은 한국 독립영화의 든든한 허리 격인 감독들의 신작이 대거 눈에 띄며 중량감을 더했다. 또한 애니메이션의 강세가 돋보인다. 경쟁작에도 1편 포함돼 있지만, 비전-한국에 소개된 2편의 데뷔작도 모두 애니메이션이다. 이를 포함해 매우 다양한 한국 영화가 소개될 예정이다. 대중 상업영화와 OTT 플랫폼의 드라마 시리즈, 소규모 자본과 자체 제작 독립예술영화까지. 빛나는 데뷔작을 완성한 감독과 신예 배우들부터 시네아스트라고 할 만한 감독과 대배우들까지. 액터스 하우스를 비롯한 이벤트 프로그램 모두 막강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관객들이 장르, 형식, 소재, 주제를 가리지 않고 각 영화와 영화 행사가 가진 고유의 개성과 미덕을 발견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후기, 소회, 감상 평도 많이 남겨주길 기대한다. 한국 영화계가 침체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큰 동력은 결국 관객의 참여와 지지다.

염규복 <긴긴밤>

원작인 루리 작가의 동화 <긴긴밤>를 동화 작가이기도 한 염규복 감독이 원작의 힘과 미덕을 빼어난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했다. 높은 수준의 기술적 완성에 더해 정서적 공감과 공명을 끌어내는 긴 호흡의 서사 축조가 놀랍다. 과장이 아니다. 필견의 애니메이션이다!

이창동 <가능한 사랑>

오랫동안 기념하고 기억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단연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다. 인간성의 흔적이 사라지고, 인간의 노동이 저평가되는 시대, 도리어 가장 연약하고 충동적이며 위태로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곧 사랑이 아니겠느냐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영화다.

김성윤 <세대유감>

우당탕탕, 왁자지껄, 난리법석, 아수라장. <세대유감>속 가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대한민국 대표 종가를 이끄는 아버지는 조상님들을 달래려 굿판을 벌이고, 아들은 조상들 탓을 하며 퇴마를 결심하면서 두 부자가 팽팽히 맞서는 코믹한 가족 대소동극이다. 올해 오픈 시네마 섹션의 유일한 한국 영화다.

박근영 <극장에 두고 온 것들>

이 작품은 주류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 시간, 장소를 지금 이곳의 중대한 관심사로 불러낸다. 비평 활동을 하는 도경과 잊힌 과거, 기억, 사람, 이미 사라졌거나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르는 오래된 극장(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 있는 상영 장소들이 여럿 등장해 마치 극장(들) 유랑을 떠나는 듯하다.

박송열 <사랑의 지평선 너머로>

박송열 감독과 원향라 배우가 함께 만든 네 번째 장편. 두 사람은 실제 연인에서 부부로 관계가 변하는 자신들의 변화를 영화의 구체적 조건으로 삼으며 작업해왔다. 그런 이들에게 실제로 임신과 출산에 따른 일생일대의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과연 이들 ‘가족 시네마’가 어디까지 갈지 자못 궁금하다.

Community BIFF & BIFF Everywhere

정미 프로그래머

2026년 커뮤니티비프와 동네방네비프 상영작은 총 100편이다. 이 중 3분의 2가 한국 영화고, 대부분 관객과의 대화(GV)가 마련된다. 외화는 공연, 토크, 댄스어롱 등 이벤트가 각양각색이다. 커뮤니티비프는 관객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는 ‘리퀘스트시네마: 신청하는 영화관’은 올해 92개가 몰렸고, 이 중 18개 프로그램이 선정됐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음악영화,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가 많은 지지를 받은 점. 다른 섹션에서도 여성 감독 영화와 음악영화를 대폭 늘렸다. 커뮤니티비프는 영화를 다시 사랑하고 싶은 관객을 위한 시간 여행이고, 동네방네비프는 영화를 관람할 가장 쉽고 멋진 방법을 제공하는 공간 여행이다. 난생처음 시민들이 만든 단편과 제작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 청춘과 영화제의 공통점은 기간 한정판이라는 것. 이 가을, 부산에서, 영화 곁에서, 그리운 기억과 찬란한 꿈을 나누고 우리가 함께 상상할 때 당신은 아직 청춘이다.

차영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도저히 좋아하기 힘든 비호감 캐릭터가 바닥을 향해 낙하하는데, 그 뒤틀린 내면에서 보편적 불안과 환멸, 동족 혐오를 이해하고, 냉대와 굴욕에 마음이 쪼그라든 사람들의 상황이 나아지기를 바라게 되는 드라마. 감정 워치 ‘벅참’의 초록불을 켜는 ‘추앙’의 기회.

류승완 <짝패>

류승완 제작·감독·각본·주연. 정두홍 무술감독과 네 번째 작업이자 공동 주연작. 현실과 장르가 충돌하는 활극의 비밀을 20주년 기념으로 두 대가가 공개한다. 또 다른 ‘마스터톡’ 영화인 임순례× 박해일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까지 내리 보면, 인생의 짝패와 고향, 젊은 날에 대한 상념으로 소주 한 잔이 간절해질 것이다.

조지 놀피 <컨트롤러>

크리스토퍼 놀런의 팬이라면 <오디세이>, 맷 데이먼과 <오펜하이머> 에밀리 블런트가 모든 것이 조정되는 운명에 맞서 미래를 바꾸는 이 철학적 SF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상영 후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를 쓴 김보영 작가와의 대화도 기다린다.

이안 <와호장룡>

강호로 뛰어든 이안 감독의 삼중국 합작 무협 멜로. 원화평의 무술과 탄둔의 음악은 스펙터클(動)과 명상(靜)의 조화를 구현하고, 부드러움이 진정 강한 것임을 역설한다. 개봉 이듬해 나는 신장 사막까지 다녀왔다. 조선소 부지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영도 피아크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20주년 기념 상영에 이어 양자경의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을 기념해 이 영화를 상영한다.

나카시마 데쓰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올해 동네방네비프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인 일본 영화 2편의 20주년을 기념한다. 이 영화는 동명대에서 단 한 차례 상영한다. CF 감독 출신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화려한 영상미와 뮤지컬 요소를 가미한 블랙코미디로 덧없는 삶의 의미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