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올드하게 느껴졌던 오팔의 다채로운 아름다움과 가치를 까르띠에 웨비나를 계기로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메시카, 까르띠에, 티파니, 피아제 등 세계적인 하이 주얼리 브랜드들은 오팔을 활용한 대담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외할머니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오팔 반지를 에메랄드와 조합해 희망과 활력의 의미를 담은 반지로 리세팅했습니다.
저는 보석에 담긴 의미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사실 보석 하나 지닌다고 당장 상황이 달라지겠습니까만, 사람이 몸도 마음도 지치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내가 이 보석을 지녔으니 조금은 나아질 거야.’ 그런 작은 믿음 하나가 힘든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유독 힘들었던 시기에 가까이하게 된 보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10월의 탄생석, 오팔입니다.
하나의 스톤 안에서 블루, 그린, 오렌지, 퍼플이 움직일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오팔은 다른 보석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름답습니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임이 사방으로 터지는 것도 아니고, 루비나 사파이어처럼 하나의 강렬한 컬러감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것도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어느 순간 초록색이 올라왔다가, 손을 조금만 움직이면 파란색과 주황색이 나타나는 식이죠. 그것도 아주 오묘하고 신비롭게요. 이 특유의 현상을 ‘플레이 오브 컬러(Play-of-Color)’라고 부릅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하나의 오팔 안에서 여러 보석의 색을 동시에 발견했고, 그만큼 다양한 보석들이 가진 힘을 한꺼번에 지닌 특별한 스톤이라고 생각해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없던 색이 나타나고 또 다른 색으로 변하는 신비로운 모습에서,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좋은 변화와 희망을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 오팔은 희망을 상징했고, 이후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희망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통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오랫동안 오팔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이 들어 보이는 보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오팔 주얼리는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큼지막하고 길쭉한 오팔 하나가 가운데 자리 잡고, 그 사방을 다이아몬드가 심플하거나 아주 화려하게 둘러싼 반지나 브로치. 게다가 제가 주변에서 봐왔던 주얼리에 사용된 오팔들이 지금 보는 것처럼 퀄리티가 좋지도 않았을 테니, 제 눈에는 그저 흐릿하고 예스럽게 느껴졌어요. 꽃이나 동물 모티프처럼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다이아몬드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도 아닌 이 스톤을 제가 굳이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오팔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본 건 2020년이었습니다.
코로나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 까르띠에에서 하이 주얼리 컬렉션 [Sur]Naturel(쉬르 나뛰렐)을 소개하는 프레스 웨비나를 처음 기획하고 진행하게 됐습니다. 원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소개할 때면 매장 밖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컬렉션의 테마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행사장을 만들고, 주요 고객들을 프라이빗하게 초대합니다. 판매되는 주얼리의 가격이 패션이나 뷰티 제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만큼, 공간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그 컬렉션을 위해 최고로 공들여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고객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일부 프레스를 먼저 초청해 실제 주얼리를 가까이에서 보고 컬렉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요.
그런데 코로나 시기에는 그 당연했던 방식이 불가능해진 것이었습니다.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을 초대하기 어려워졌는데, 새로운 컬렉션을 언론에 소개는 해야겠고, 제한된 초대 인원으로 고객 행사를 진행하려니 세션은 더 늘어나고, 그렇다고 일정을 마냥 늘릴 만큼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가 속해 있던 커뮤니케이션 팀이 프레스가 실제 행사장에 오지 않고도 주요 피스를 최대한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로 전문가와 함께 주요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고, 스톤과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웨비나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온라인 프레젠테이션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저희에게도 업계에서도 처음 시도하는 방식이었고, 무엇보다 화상으로 바로바로 진행되는 콘텐츠의 특성상 담당자인 제가 컬렉션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해에는 평소보다 훨씬 집요하게 컬렉션을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어떤 스톤이 사용됐는지, 어디에서 온 스톤인지, 왜 그 스톤을 이 디자인에 사용했는지까지 들여다봤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눈에 유독 들어온 것이 바로 오팔이었습니다.
까르띠에의 쉬르 나뛰렐 컬렉션에서 만난 오팔은 제가 그동안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어머니용 오팔’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호주와 브라질 등 다양한 산지에서 온 오팔은 물론, 짙은 바탕색 위로 강렬한 색을 드러내는 블랙 오팔과 밝고 은은한 라이트 오팔, 바탕이 되는 암석 사이로 오팔의 색이 스며든 듯 독특한 무늬를 자아내는 매트릭스 오팔까지. 그동안 제가 본 적 없던 아름다운 오팔이 정말 많았고, 산지와 종류에 따라 생김새도 가치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컬러 스톤들과 함께 세팅된 오팔은 전혀 올드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떤 스톤보다 대담하고, 이상하리만큼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었죠. 아마 그때 처음으로 오팔이 이렇게 가치 있고 멋있는 보석인지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다른 메종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서라도 오팔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스톤인데, 알고 나니 보이는 것이 많아진 셈입니다. 최근 발표되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서도 오팔은 심심찮게 등장해 다양한 디자인으로 다루어집니다.


(오른쪽) 앙 에킬리브르 컬렉션 카파야테 네크리스 Cartier.


(오른쪽) 셰이프스 오브 엑스트라레간자 컬렉션 블루 얼루어 네크리스 Piaget.
보츠와나의 강렬한 자연과 그 안에서 발견한 대비를 담아낸 메시카의 Terres de Contrastes(테르 드 콩트라스트) 컬렉션에서는 오카방고의 악어에서 영감을 받은 Féroce(페로스) 네크리스가 눈에 띕니다. 악어의 이빨 구조를 연상시키는 네크리스 한가운데 16.98캐럿의 호주산 블랙 오팔을 세팅해, 오팔의 다채로운 색감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었죠.
서로 다른 형태와 컬러의 조화로운 균형을 보여주는 까르띠에의 En Équilibre(앙 에킬리브르) 컬렉션에서는 두 개의 오팔을 세팅한 Cafayate(카파야테) 네크리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오팔에서 피어나는 레드, 오렌지, 옐로의 빛을 주변의 컬러 사파이어로 연결해 오팔 특유의 오묘한 색 변화를 네크리스 전체로 확장했습니다.
쟌 슐럼버제의 자연에 대한 시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티파니의 2026 Blue Book(블루 북) 컬렉션 Hidden Garden(히든 가든)에서는 Paradise Bird(파라다이스 버드) 브로치가 특히 재미있습니다. 커다란 오팔의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비정형 형태를 살리고 그 위에 화려한 새를 앉혔습니다. 마치 신비로운 동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주얼리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입니다.
대담한 형태와 컬러, 예상 밖의 소재 조합을 보여주는 피아제의 Shapes of Extraleganza(셰이프스 오브 엑스트라레간자) 컬렉션에서는 Blue Allure(블루 얼루어) 네크리스가 인상적입니다. 블루 사파이어와 아쿠아마린, 그린 투어멀린, 파라이바 투어멀린, 다이아몬드가 만들어내는 푸른 물결 끝에 볼드한 블랙 오팔을 하나 매달아 마무리했습니다. 블루와 그린이 오묘하게 뒤섞인 비정형 오팔의 형태와 색을 그대로 살려, 네크리스 전체의 에너지가 마지막 한 점의 오팔로 모이는 듯합니다.
제가 오팔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귀보석들과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수많은 면을 정교하게 만들어 빛의 반사를 극대화하고, 루비나 사파이어 역시 커팅을 통해 컬러와 광채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반면 오팔은 주로 매끈한 카보숑 형태로 연마해 스톤 자체가 가진 색과 무늬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같은 오팔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하나하나가 전혀 다른 풍경 혹은 장면처럼 보이는 거죠. 어떤 것은 깊은 바다 같고, 어떤 것은 우주 같고, 또 어떤 것은 스톤 안에 작은 불꽃이 일렁이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중량감도 오팔이 가진 꽤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주 뛰어난 품질의 블랙 오팔처럼 높은 가치를 지닌 오팔도 있지만, 다이아몬드나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같은 전통적인 귀보석에 비하면 비교적 큰 크기의 스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하이 주얼리에서는 그 크기와 불규칙한 색 자체를 디자인의 중심에 놓고 대범한 표현을 해낼 수도 있고요. 저는 이 점이 좋았습니다. 사람이 수많은 면을 계산해서 만들어낸 극대화된 반짝임보다는, 매끈하게 연마된 표면 아래 대자연의 한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렇게 오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보니 문득 생각나는 곳이 있었습니다. 저만의 참새 방앗간, 엄마의 금고였습니다.
오래전부터 그 안에 오팔 주얼리 세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관심이 없었고요.)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물려주신 네크리스와 브로치, 반지였는데, 워낙 경도가 낮은 데다 적절한 방법으로 관리되지 못한 채 엄마와 험난한(!) 세월을 함께 보내다보니 네크리스와 브로치의 큼직한 스톤들에는 군데군데 균열이 가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살려볼 수 있었던 것은 반지 하나뿐이었죠.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올드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이었습니다.
긴 타원형의 오팔이 높게 세팅되어 있고 주변에는 다양한 커팅의 다이아몬드가 세상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반지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특히 오팔을 어찌나 높이 세팅했던지, 손가락에 끼면 주얼리라기보다 호신용품에 가까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엄마의 평소 스타일을 생각하면 엄마 역시 이 반지를 열심히 착용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외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 다시 제게 온 오팔을 그대로 금고 안에 넣어두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리세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오른쪽) 메인 스톤인 오팔만 그대로 살리고, 에메랄드를 더해 새롭게 리세팅한 반지.
AI generated image by Christina Park.
당시의 저는 회사에서의 여러가지 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업앤다운은 있다지만, 꽤 긴 ‘다운’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느껴졌던 시기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오팔이 ‘희망’을 상징하는 보석이라는 사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한동안 마음의 평화를 위해 ‘평온’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피스 라줄리 반지를 웨딩 밴드보다 더 자주 끼고 다니기도 했었거든요. 그러니 이번에는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게 여기 있었네.’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렇다고 의미만 좋다고 원래 디자인 그대로 끼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희망도 중요하지만 이걸 낀 저의 모습 역시도 중요한 거니까요. 평소에도 잘 착용할 수 있도록 오팔 주변으로 다이아몬드를 쭉 둘러 세팅하는 클래식한 디자인이 우선 떠올랐지만 마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많이 본 디자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제 막 좋아지기 시작한 오팔을 또다시 ‘어머니용’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으로 돌려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저만의 터치를 더해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오팔의 ‘희망’과 더불어 당시 제게 필요했던 두 가지, ‘치유’와 ‘활력’의 의미를 더하고 싶어 작은 에메랄드를 사방에 하나씩 세팅한 것이죠. 새로운 스톤을 구입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잘 착용하지 않아 오랫동안 보석함에 머물러 있던 주얼리에서 작은 스톤들을 빼내 조합했습니다. 외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 온 오팔에, 엄마가 가지고 있던 스톤이 다시 모여 전혀 다른 모습의 반지로 태어난 겁니다.
그렇게 완성된 반지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습니다. ‘어머니용 보석’ 같다며 관심조차 없었던 오팔에 뒤늦게 빠져서는, 결국 제가 갖게 된 첫 오팔은 정말 ‘엄마’의 오래된 오팔이었으니까요. 그때의 저는 그 반지에 ‘희망’과 ‘치유’, ‘활력’이라는 의미까지 야무지게 얹어 열심히 끼고 다녔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니 그렇게라도 어딘가에 마음을 붙여야만 했던 제가 있네요. 스톤에 의미란 의미는 다 찾아 붙여 마음을 의지했으니 이런 샤머니즘의 끝판왕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의 저에게는 정말 진지한 일이었습니다. 외할머니와 엄마를 거쳐 온 스톤을 제 손에 맞게 다시 살려내고, 당시의 제게 필요했던 의미들까지 하나씩 더해 만든, 마음에 쏙 드는 반지였으니까요.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몸도 마음도 다시 건강해진 저는 늘 이 반지에 조금 빚진 기분입니다. 그래서 좋은 곳에 갈 때면 꼭 이 반지를 끼고 갑니다.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친구에게 뒤늦게 보은하는 마음으로 좋은 곳에 데려가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한편으로는 반지를 볼 때마다 당시의 힘들었던 시간이 함께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그 시간을 무사히 지나오게 해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는 다시 그런 시간도, 그런 사람들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외할머니에게서 엄마를 거쳐 제게 온 오팔이라 그런지,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두 분이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습니다. 외할머니께는 평소에 연락도 자주 못 드리면서 이럴 때만 마음으로 찾는 것 같아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래도 이 반지만 있으면 혹시 또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외할머니와 엄마가 어디선가 쪼르르 달려와 같이 이겨내주실 것 같은 마음이 드는게, 불혹이 넘어서도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는 이토록 절대적인 존재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반지에 대고 기도만 할 게 아니라 오랜만에 이 오팔을 물려주신 외할머니께 카톡으로 안부라도 한 번 전해야겠습니다. 올해 아흔다섯이신데도 아주 정정하시고, 카톡도 잘 하시거든요! 외할머니와 좋은 곳에 함께 갈 때도 이 오팔 반지는 아마 제 손가락 위에 함께 있을 겁니다. 이제 저에게 오팔은 단순히 ‘희망’을 상징하는 보석이라기보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 한결 단단해진 제 모습을 스스로 기억하게 하는 보석이 되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