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한층 넓어진 지평 위에서 서른한 번째 축제의 서막을 연다. 세계 영화계를 이끄는 거장들의 신작과 비범한 신예들의 수작부터 영화가 남긴 발자취를 되짚고 동시대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까지, 올해 부산을 채울 다채로운 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열흘간 이어질 영화의 향연 속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저마다의 한 장면을 품어가길.

현재를 가로지르는 얼굴들

WRITER 이윤영(시네마토그래프 대표)

<가능한 사랑>

동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신작을 소개하는 아이콘 섹션이 규모를 넓혀, 올해 35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영화가 모인 섹션이자, 세계 각지를 가로지르는 유려한 영화들이 부산에 결집하는 가슴 뛰는 섹션이다.

우선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은 2018년 <버닝>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일곱 번째 장편이다. 해고 노동자 가족과 그들의 삶을 기록하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가 만나며 서로의 욕망과 관계가 흔들리는 과정을 그린다. 홍상수 감독의 <눈 둘 데가 없네>는 올해 개봉한 <그녀가 돌아온 날> 이후 선보이는 신작으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1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제주를 찾은 상희가 가족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을 따라가며 관계와 예술, 삶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비터 크리스마스>

일본에서는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와 후카다 코지의 <나기 노트>가 부산을 찾는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다>는 프랑스 배우, 제작진과 함께 완성한 국제 공동 제작 작품으로 일본어와 프랑스어, 연극과 비연극의 언어를 교차시키며 감독이 꾸준히 탐구해 온 ‘언어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나기 노트>는 작은 농촌 마을 나기를 배경으로 인물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파고드는 작품으로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또다시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애프터 양>의 서정성으로 국내 관객의 사랑을 받은 코고나다 감독은 신작 <zi>를 통해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아름다운 헌사를 바친다. <행자> 시리즈를 열한 번째로 이어가는 차이밍량 감독의 <더스트>, 흑백 스크린의 역사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라브 디아즈 감독의 <마키키란 포>도 눈길을 끈다.

<백 투 부에노스아이레스>

세계 3대 영화제를 횡단한 거장들의 작품도 이어진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에게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피오르>,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데칼로그>의 일부를 각색한 <패러렐 테일즈: 데칼로그>, 스페인의 얼굴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파고드는 <비터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다. <리턴> <리바이어던>으로 세계 무대에서 독보적이고 강력한 인장을 남겨온 반가운 이름, 안드레이 즈뱌긴체프 감독도 9년 만에 신작 <미노타우로스>로 돌아왔다. 클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여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감독의 독보적 인장을 스크린에서 확인하는 귀한 자리가 될 것이다.

영어권 작품에서는 반가운 감독들의 신작을 여럿 볼 수 있다. 21세기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와일드 호스 나인>은 개인의 윤리와 정치적 격동을 특유의 블랙코미디로 엮어 그의 영화 세계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마더 메리>에서는 몰락한 팝 스타로 분한 앤 해서웨이의 연기와 찰리 XCX의 사운드트랙이 만나고,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신작 <페이퍼 타이거>는 고전적인 미국 영화의 서사와 장르적 전통을 이어온 그가 자전적인 누아르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펼쳐냈을지 기대하게 만든다.

<에밀리아, 사랑을 기억하다>

널리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어온 이름들 사이로 독특하고 예측 불가능한 영화를 선보이는 감독들도 눈에 띈다. 브루노 뒤몽의 <붉은 바위에 아이들이 있다>는 아이들의 세계를 주축으로 기이한 날것의 감각을 선사하고, 라두 주데 감독은 작가 옥타브 미르보 원작의 <라두 주데의 어느 하녀의 일기>를 선보인다. 이 외에도 각자의 미학을 간직한 작품들이 부산의 스크린을 두루두루 장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