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기반 사진가 마리나 시로바트카(Maryna Syrovatka)는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한 60대 이상의 사람들을 만났다. ‘On Butterflies and Dinosaurs’는 삶의 후반부에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순간에도 유머를 동력 삼아 일상을 이어가는 이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따라가며 위기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을 전한다.


이토록 활기차고 재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고, 이들의 모습은 내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면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 말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쟁 이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정착한 우크라이나인 고령층을 위한 모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안다. 이들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2025년 초, 브라티슬라바에 자리한 커뮤니티 센터 ‘우크라이나∙슬로바키아 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우크라이나 시니어 모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쟁 이후 심리적 지원 형태로 시작된 모임인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각자의 슬픔과 상실에 워낙 깊이 빠져 있어서 서로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어려워했다고 하더라. 그러다 자원봉사자들이 춤, 그림, 아침 체조, 합창 연습 같은 활동을 위한 모임을 조직하기 시작하면서 이 모임이 점차 센터 내에서 가장 활발한 사람들의 그룹이 됐다. 처음 이들을 만나러 노르딕 워킹 수업에 찾아갔을 때, 솔직히 말하면 완전히 무너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격도, 태도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방식도 저마다 확연히 달랐다. 아름답고, 활기차고, 카리스마 넘치는 이들의 모습에 개인적으로도 큰 영감을 받았다. 나이 듦에 막연히 두려움을 품고 있던 내게 이들은 대단히 긍정적인 삶의 모델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이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직후에 태어나 소련의 붕괴, 우크라이나의 독립, 1990년대 경제 위기와 은행 시스템 붕괴, 그리고 또 한 번의 전쟁을 겪었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이들 안에 어떠한 공통된 대처 방식이 있는지, 이 세대가 지닌 ‘강인함’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지를 파헤쳐보고 싶은 충동이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인터뷰하고 초상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첫 번째 연작 ‘Don’t Worry, I’m Fine’에서도 우크라이나를 떠나 슬로바키아에 정착한 사람들을 프레임에 담았다. 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낀 지점은 무엇이었나?
‘Don’t Worry, I’m Fine’은 러시아의 전면적 침공이 시작된 직후 충격 속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사람들은 슬로바키아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 역시 엄청난 불확실성과 감당하기 벅찬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첫 연작이 전쟁 ‘이전’과 ‘이후’로 갈라진 삶의 바로 그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으로 시작한 작업이라면, ‘On Butterflies and Dinosaurs’를 시작하던 무렵에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슬로바키아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일상과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상황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지만, 말하자면 트라우마를 해소해가는 또 다른 단계, 우울과 수용 사이 어딘가에 도달한 셈이다. 또한 참여자들 자체가 상당히 생생하고 강렬한 사람들이었다. 밝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거나, 화려한 옷과 메이크업을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추진력과 에너지 자체가 마치 색채를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삶에 대한 의욕은 내게 영감을 주었고, 그 감각을 이미지 안에 담고 싶었다.








촬영에 앞서 참여자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 질문을 던지고 이들에 대해 깊게 알아간 시간이 이후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내 작업에서 대화는 무척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일반화된 정보만 쏟아내는 뉴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참여자 개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질문지를 준비했고, 대화를 나누다 호기심이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질문을 추가해나갔다. 2022년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일)과 피란 경험부터 가장 놀랐던 일, 좋아하는 음식, 나이에 대한 인식 등을 물었다. 심지어 소련을 그리워하는지도 물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이 세대에게 흔히 갖는 고정관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이들이 겪은 트라우마적 경험과 일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대비되는 모습은 놀라웠고, 이러한 역설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이미지로 직접 옮긴 것은 아니지만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화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결과물에 반영되었다. 다만 상당히 무의식적인 일이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작동한 것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나이 든 세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하거나 선입견도 가지고 있었을 듯하다. 실제로 이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기존의 관점에 변화를 겪기도 했나?
물론이다. 나 역시 참여자들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가진 채 프로젝트에 접근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을 알아가면서 내가 당연하게 여긴 생각 중 상당 부분이 이들의 실제 모습과 무관한 나의 선입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로젝트 초기에 나는 60대 이상의 사람들, 특히 그 세대 우크라이나인이라면 꽤 보수적이고 절제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할머니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옷을 차려입고, 공들여 머리 손질과 화장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길 바랐지만 할머니는 늘 거절했다. 거기에는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의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점차 삶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노화에 관한 아주 소련적인 관념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내가 만난 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활짝 열려 있었다. 농담을 주고받고, 카메라 앞에서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했다. 프로젝트의 초기 단계부터 이들에게서 어떤 공통된 특성이나 ‘강인함’의 비밀을 찾으려 했던 내 최초의 시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모두가 내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했고, 나는 하나의 고정관념을 또 다른 고정관념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많은 사람에게 부담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구도 ‘강해져야만 하는’ 상황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참여자들과 함께 촬영하는 과정에서 애초의 계획이나 프로젝트의 방향이 달라진 순간도 있었나?
올가(Olga)라는 참여자가 자신과 친구들이 해변에서 그저 재미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이들의 일상적 활동인 아침 체조를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옮겨 수영장 옆에서 하는 모습을 촬영해보자고 제안했다. 당시에는 이들이 수영복이나 밝은색 타이츠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 역시 내 선입견에 불과했고,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다른 문제였다. 한 여성이 반쯤 농담조로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우리가 여기서 즐겁게 지 내면서 사회적 지원을 날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거다. 이들이 짊어진 사회적 기대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었다. 전쟁을 피해 떠나온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부적절하게 여기는 한편, 이제 안전한 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할 것이라 쉽게 단정하기도 한다. 그 말은 내가 이 프로젝트를 보다 장난스럽고 과장되게, 때로는 부조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했다.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프로젝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On Butterflies and Dinosaurs’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
어느 날 한 여성이 ‘Stylish Butterflies’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스튜디오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시니어 모임에서 자신들을 할머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장난스럽게 ‘나비들(butterflies)’이라 불렀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제목에 반드시 ‘나비’라는 단어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한 부부에게는 자기 세대에 관한 고정관념 중 어떤 것이 가장 짜증스러운지 물었더니, 남편이 모두가 자신들을 ‘공룡(dinosaurs)’으로 바라보는 게 싫다고 하더라. 나비와 공룡,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쟁과 이주라는 현실을 다루면서도 이 프로젝트에는 유머와 즐거움이 공존한다. 참여자들이 보여준 삶의 태도가 당신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었나?
나는 어떤 유머나 아이러니도 작업에 억지로 담지 않았고, 내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면적 침공이 이어진 지난 몇 년 동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너나없이 어느 정도 어두운 유머 감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친구들이 포격당한 후 내게 종종 밈을 보내온다. 유머가 모두에게 중요한 대처 방식이 된 셈이다. 내 프로젝트 참여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토록 활기차고 재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고, 이들의 모습은 내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면 삶은 계속된다는 희망 말이다. 이들을 만나고 나니 삶이 어쩐지 덜 두렵게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이 전쟁처럼 끔찍한 일로 중단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30대나 50대, 60대 혹은 80대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에게서 배웠다. 어쩌면 이 사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런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