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누구나 매달 월경주기에 따라 감정 기복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난소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동안 어떤 향기를 맡았는데 느닷없이 눈물을 쏟거나 불안해진다면? 여성들의 후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발달해 있다. 진화론적으로는 땀 냄새를 통해 가장 훌륭한 DNA를 가진 짝을 찾기 위해서고, 생물학적으로는 호르몬 수치의 변화에 따라 우리 코가 섬세하게 튜닝되기 때문이다. 런던 옴니야 메디클리닉(Omniya Mediclinic)의 호르몬 전문 박사 소헤르 록트(Sohère Roked)는 이렇게 말한다. “복잡하게 작동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때문에 여자들은 배란기나 생리 기간에 후각이 매우 예민해져요. 생식 능력과 에스트로겐 수치가 정점에 달했을 때 우리의 후각은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죠.” 우리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향수의 강력한 기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후각심리학 교수 레이첼 헤르츠(Rachel Herz)에 따르면 실제로 뇌에서 후각을 인지하는 부분과 감정과 기억을 처리하는 부분은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한다. 냄새는 감정을 자극해서 우리의 기분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기분을 순식간에 좋게 만들기도 하고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며 때론 자신감을 북돋아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날뛰는 호르몬 탓에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기분이 드는 날엔 차분한 향으로 밸런스를 찾을 수 있다. 생리가 시작하는 날을 1일로 두고 주기별로 향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DAYS 1~5

생리가 시작됐다. 자궁 내벽이 몸 밖으로 배출되면서 에스트로겐을 비롯한 우리 몸의 모든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낮아진다. 불쾌한 생리통과 피로가 몰려오고 한없이 무기력하다. 이 시기에 가장 유용한 향은 무엇일까? 무겁고 스파이시한 향보다는 상쾌한 시트러스 노트다. “시트러스 분자는 휘발성이 강해 뿌리자마자 우리 코를 자극해요. 레몬 향이 탁 하고 터진 후 오렌지 분자가 피부 위에서 증발하면서 활기를 북돋워주죠.” 조향사 루스 마스텐브록(Ruth Mastenbroek)의 설명이다. 갓 짠 레몬의 향을 달콤하게 풀어낸 프레쉬 슈가 레몬 오 드 퍼퓸이나 활기찬 시트러스 향의 코치 플로럴은 머리를 개운하게 한다. 갓 짜낸 자몽즙을 넣은 칵테일 같은 아틀리에 코롱 포멜로 파라디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시기에는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기 때문에 피부의 피지 생성 기능이 떨어져 피부가 건조해지는데, 향이 없는 보디 오일을 피부에 바른 후 향수를 뿌리면 향이 오래 지속된다.

 

 

DAYS 6~12

우리 몸은 배란 일을 겨냥해 난자를 내보낼 준비를 한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천천히 상승하고 매력 어필 모드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후각은 한껏 예민해져서 미세한 향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코를 피부에 댄 채 킁킁거려야만 맡을 수 있는 아주 옅은 살냄새에 끌린다. 부드러운 우드와 그윽한 머스크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기분 좋은 아기 살냄새 같은 향이랄까? “체취를 최소한으로만 감춰주는 향수에 무의식적으로 이끌리는 또 다른 이유는 짝짓기 신호를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헤르츠 박사의 설명은 상당히 흥미롭다. 땀에 있는 분비물에서 나오는 천연 페로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것. 더바디샵 화이트 머스크나 키엘 오리지널 머스크 블렌드 NO.1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이성을 유혹하는 관능적인 향에는 종종 장미 오일이 사용된다. 조향사 루스 마스 텐브록은 땀과 비슷한 분자구조를 가진 장미 오일은 공공연히 드러나 있는 욕망을 읽을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DAYS 13-18

우리 몸에서는 배란을 할 준비가 끝나고 프로게스테론이 등장할 시기다. 이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면서 자궁 내벽은 임신을 기대하며 두꺼워진다. 호르몬 전문 박사 소헤르 록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시기에는 편안하고 정돈된 기분이 들 거예요.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오히려 강렬한 향에 끌리죠.” 한동안 멀리했던 강렬한 향이 필요하다는 뜻. 우드와 스파이시 홍후추를 섞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씨 패션 오 드 퍼퓸처럼 남성적인 향에 끌린다. 하지만 이 주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는 달콤한 것을 갈망하고 고지방 간식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록트 박사는 말한다. “아기를 가질 준비를 하기 위해 몸이 여성들을 칼로리 폭탄 음식으로 이끄는 것일 수 있어요.” 이때는 어떤 향기 테라피가 필요할까? 상상만 해도 침샘을 자극하는 달달한 향이 절실하다. 프라다 캔디 슈가 팝의 신선한 복숭아와 바닐라, 마크 제이콥스 데이지 드림의 베리 향이면 충분하다.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신맛을 갈구할 수도 있다. 마스 텐브록은 말한다. “우리가 느끼는 맛의 75~95%는 냄새에 의해 결정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꽤 효과적일 수 있죠.”

 

 

 

DAYS 19~28

폭풍이 불어닥치기 직전이다. 배란 후 프로게스테론 수치는 임신 가능성에 대한 기대로 최고점에 다다랐다가 임신이 아닌 것을 감지하고 현저히 떨어진다. 에스트
로겐 수치도 급격히 낮아지는데, 이것은 수면 조절 호르몬인 세로토닌 역시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의 기분은 널뛰듯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월경 전 증후군도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난다. 사실 향수 업계에서 베르가모트는 안전한 향료다. 한국 경남도립거창대학 연구에 따르면, 라벤더, 일랑일랑과 함께 베르가모트 오일을 사용하면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낮아진다고 한다. 강렬한 베르가모트를 경험할 수 있는 톰 포드 뷰티 베네시안 베르가못이 대표적이며, 햇빛을 가득 머금은 듯 부드러운 베르가모트와 차분한 향을 내뿜는 파촐리와 바닐라 향의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 오 드 퍼퓸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을 때 제격이다. 만일 생리 전 분비물로 불쾌하다면 짠 바다의 향을 닮은 상쾌한 아쿠아틱 노트를 사용해보자. 머릿속에 출렁이는 바다가 연상되면서 분명 기분을 산뜻하고 가볍게 바꿔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