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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위치한 아를은 화가 반 고흐가 1888년 1년간 머물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 많은 걸작을 남겨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고흐 작품의 배경이 된 카페와 작은 골목골목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풍부해지지만, 7월의 아를에서는 그런 여유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 7월 초에 시작해 9월까지 열리는 아를 국제 사진 페스티벌로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하기 때문. 갤러리는 물론이고 교회, 호텔, 레스토랑, 거리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사진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는 이 축제는 사진가뿐 아니라 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페스티벌이다. 올해는 이 페스티벌에 디올 뷰티가 문화, 예술 지원 프로그램인 ‘디올 아트 오브 컬러(Dior The Art of Color)’ 일환으로 아를의 세계적인 사진 학교인 아를 국립 사진 학교, 루마 재단과 함께 디올 포토 어워드를 개최했다. 재능 있는 신진 포토그래퍼를 발굴하고 전 세계 유명 사진 학교 간의 협력을 독려하기 위한 디올 포토 어워드는 ‘여성성, 뷰티, 컬러’라는 주제로 한국·중국·일본·프랑스·미국·러시아·중동·영국 총 8개국에서 8개 학교가 참여하고, 1백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어 경쟁이 치열했다. 세계적인 사진가이자 감독인 피터 린드버그가 심사위원장을 맡고, 유럽 사진 미술관 디렉터 시몬 베이커, 스위스 예술품 수집가이자 다큐멘터리 필름 메이커 루마 재단의 설립자 겸 대표 마하 호프만, 디올 뷰티 회장 겸 CEO 클로드 마르티네즈가 심사에 참여한 이 어워드에서 한국 참가자들의 뛰어난 심미안과 작품의 높은 완성도, 새로운 시각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그 결과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 작학부 사진 전공 장윤경 학생의 작품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마리끌레르>가 특별히 심사위원장인 피터 린드버그와 아트 디렉터 시몬 베이커를 만나 이번 어워드와 수상 작품에 대해 물었다.

매우 독특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어워드의 의미는 무엇인가? SIMON 디올 뷰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망한 아티스트를 일찌감치 발굴해 그들의 능력을 계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활동이라 생각한다. 이런 경험이 젊은 작가들이 자신감을 갖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전공 학생이나 신진 작가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인데 신인급 참가자들의 작품 수준이 꽤 훌륭해 놀랐다. PETER 기성세대가 아닌 뉴 제너레이션을 찾고 육성하는 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이런 프로젝트로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기쁨이 있었을 듯하다. 한편으론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데 주관성을 배제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PETER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데 객관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심사위원단도 결국은 각자 주관적인 의견과 취향을 가진 개개인의 모임이며, 각자가 느끼는 것과 각자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예를 들어 특정 작품을 두고 3명이 마음에 들어 하고, 2명은 다른 작품을 마음에 둔다면 결국 3명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이 수상하는 형태다. SIMON 기술적인 전문성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평가 기준이다. 참가자들은 학생이지만 기술적인 전문성이 매우 뛰어났다. 여기에 더해 작품이 바탕이 된 아이디어와 그것을 표현한 방법을 심사위원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그러면 작품을 보고 처음 받은 느낌에 충실한다는 뜻인가? SIMON 그렇지는 않다. 어워드의 평가 과정은 서로 의논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어떤 작품이 더 좋은지, 왜 좋은지를 두고 서로 의견을 많이 나누었고, 이는 매우 즐거운 과정이었다. PETER 심사위원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어워드 주제 중 하나인 뷰티라는 주제만 놓고 봐도 그렇다. 뷰티, 아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한 사람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모두에게 통하지는 않는다.

디올에서 여성성, 뷰티, 컬러라는 세 가지 주제를 제시했다. 이를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SIMON 디올에서 <아트 오브 컬러(The Art of Color)>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리고 사진가를 지원하고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디올은 패션이나 뷰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브랜드다. 디올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비주얼 아트 히스토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포부의 일환인 것 같다. 작년에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세르주 루텐의 영상을 선보였다.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젊은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ETER 사실 예술 작품을 선정하는 어워드는 이 세 가지 주제 중 하나에 반드시 해당될 것이다.

출품작 중 여성성, 뷰티, 컬러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토대로 스토리가 가장 돋보인 작품이 있다면? SIMON 2명 있었다. 한국과 중국 작가 한 명씩이었는데 작품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보드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지는 작품이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작품에 담긴 전체적인 생각이 영화처럼 내러티브를 가지고 표현돼 있었다. 젊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영화처럼 정교하게 그려낸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디지털과 비디오 아트워크가 대세인 시대다. 어워드의 범위를 사진에 국한하지 않고 확대할 계획은 없나? SIMON 출품작 중 영상도 있지만 수상한 작품은 없다. PETER 그들이 우리를 밀어냈다고나 할까, 마음에 드는 작품이없었다.

만약 본인이 지금 출품한다면 어떤 작품을 찍을텐가? PETER 학교에 다니던 시절 나는 매우 극단적인 학생이었다. 내가 제출한 과제를 보고 한 선생님은 ‘대체 누가 이런 것을 제출했느냐’며 내다버리라고 한 적도 있다. 만약 내가 이번에 출품했다면 글쎄, 컬러, 여성성이라…? 온몸이나 얼굴 전체에 컬러를 입히거나, 전체를 그린으로 칠하고 블루를 곁들이거나 아무튼 여러분이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법한 작품이었을 것 같다.

선정된 작품들에는 여성성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SIMON 작품마다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2명의 한국 작가가 ‘개체성(individuality)’이라는 주제 안에서 같은 듯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낸 것이 인상 깊었다. 이를 다룬 중국 작가도 있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갈수록 젊은 여성 아티스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모두 똑같은 양복 차림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한 채 목에 대기업 사원증을 걸고 살아가는 획일적인 사회에 반기를 들고 무언가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 같다. 작가들이 진짜로 똑같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남과 차별화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고 있다. 젊은 여성 작가들이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전에는 여성들이 이런 것을 표현할 만큼 강력한 위치에 있지 못했는데 갈수록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디올 티셔츠의 유명한 문구처럼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말을 들으니 피터에게 이 질문을 해야겠다. 여성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면? PETER 전부라도 해도 좋을 만큼 내 작품의 주제는 대부분 여성이 다. 만일 지금 여성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면 문화적인 요소를 제외한 어떠한 장식이나 메이크업도, 여성을 여성스럽게 만들기 위한 어떤 트릭도 보태지 않고 모든 것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여성성의 매우 기본적인 부분을 표현해보고 싶다.

심사 후 느낀 전체적인 감상은 어떤가? SIMON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젊은 작가들의 강세가 특히 인상 깊었다. 수상 작가 중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요즈음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아티스트가 매우 많다. 이를 토대로 짐작해본다면 21세기 최고의 아티스트는 결국 한국과 중국의 여성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다. PETER 우리끼리 공유하는 비밀인데, 한국과 중국 작가들의 출품작, 특히 어워드에 참가한 한국 작가 5명 중 5위를 한 작품이 다른 한 나라의 1위를 한 작품보다 더 뛰어난 경우도 있을 정도로 쟁쟁한 작품이 많았다. 어워드 규칙상 한 국가당 한 명의 수상자를 정해야 했는데, 결국 더 훌륭한 작품을 출품한 한국 아티스트는 탈락하고 그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다른 나라 아티스트는 수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겨 국가당 하나씩 수상작을 뽑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시아 작품들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는데, 사실 수상작 중 아시아인인 우리 시각에서는 어느 정도 익숙한 느낌이 드는 작품도 있었다. SIMON 오랫동안 중국에서 일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과 아시아 아티스트들의 변화와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아시아 작가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지만, 이번 어워드에서 모아서 비교해보니 학교교육을 받은 신진 작가들이 많이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PETER 10~15년 전 중국 사진가들은 시장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다 보니 그들의 작품을 판단하기가 어려웠고, 작품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도 배우들의 표정에서 감정이 드러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10년전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우리가 아시아에 적응해가는 건지, 아시아가 서양에 적응해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