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향수 넘버5 크리에이터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 CHANEL N°5 OLIVIER POLGE
올리비에 뽈쥬

올리비에 뽈쥬(OLIVIER POLGE)

샤넬 향수의 크리에이터이자 선임 크리에이터인 쟈끄 뽈쥬의 아들이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여름, 샤넬 향수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향수와 조향 과정에 깊이 매료되었고, 강도 높은 트레이닝 끝에 조향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제네바에 위치한 작은 회사에서 2년간 원료 조합 기술을 배웠고, IFF(International Flavors & Fragrances)에 고용된 후엔 뉴욕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2013년 10월, 조향사로서 운명의 시작점이라 할 샤넬 연구소에 합류한 이래 타고난 감각으로 샤넬 하우스의 잊혀져가는 포뮬러들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샤넬 향수 넘버5 CHANEL N°5
샤넬 N°5
샤넬 향수 넘버5 CHANEL N°5 올리비에 뽈쥬 OLIVIER POLGE
샤넬 향수의 크리에이터 올리비에 뽈쥬.

향기로 가득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상황이 조금 특별했다. 네 살 때, 아버지가 샤넬에서 조향사로 일하기 시작하셨고, 대학 땐 잠깐이지만 향수 연구소에서 일한 적도 있다. N°5와의 인연이 줄곧 나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 게 N°5에 더 애정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의 후임으로 샤넬에서 일하게 된 것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조향사가 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나? 지금에야 운명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그럴 테지만, 어릴 땐 부모님과 다른 길을 걷길 원했다.(웃음) 성인이 된 후에야 비로소 향수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조향 작업의 매력을 알게 됐다.

N°5는 다양한 방법으로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고집스럽게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좋은 질문이다. 우리의 과제는 최대한 원향을 보존하는 것이다. 원향을 지키기 위해선 추출 단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농장에서부터 원향을 보존해야 한다. 그라스 지방에서 재스민 농장과 장미 농장을 운영하는 뮬 가문과 1980년대부터 제휴한 것도 같은 목적이고, 그 파트너십은 지금까지 견고히 유지되고 있다. 원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기법을 꾸준히 연구해왔고, 연구 성과는 새로운 향수를 창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16년에 내가 개발한 N°5 로(L’Eau)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꽃의 향을 간직하면 서 ‘물’을 주제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사례다.

N°5 로(L’Eau)를 개발하며 원칙을 고수한 점과 변화를 준 점을 나눈다면? 지킨 것과 바꾼 것으로 이분화할 순 없다. 항상 기본 원칙은 N°5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는 식이다. 로(L’Eau)도 그렇고, 이전의 오 프리미에르(Eau Premiere)도 마찬가지였다. 작업 시작 단계에서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원재료를 먼저 추린다. N°5의 향임을 단번에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재스민, 메이 로즈, 일랑일랑 등 N°5의 향을 바로 알려주는 향을 중심으로 뼈대를 잡고, 그 틀 안에서 새로운 농도, 비율, 흐름, 시원함에 영향을 주는 배합을 찾는다. 첨단 기술로 일랑일랑과 같은 전통적인 원료의 섬세한 디테일을 복원하기도 한다. N°5 로(L’Eau)도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포착하는 동시에 N°5 고유의 시그니처도 품은 향으로 말이다.

 

샤넬 향수 넘버5 주원료 CHANEL N°5
그라스에서 5월의 3~4주 동안만 수확해 ‘메이 로즈’라고 불리는 로즈 센티폴리아.

N°5의 노트는 추측하기가 어렵다. 노트 자체를 N°5 노트로 칭해도 될 만큼 유일무이하고 추상적이다. 이 낯선 향을 만든 핵심 원료는 무엇인가? 핵심 원료 하나를 꼽으라면 재스민이지만, N°5의 유니크한 향이 재스민에서 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냥 N°5 노트라고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가브리엘 샤넬은 자연의 향을 똑같이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자연의 향을 재현할 마음이 없었고, 에르네스트 보에게도 자연의 향을 모방하는 대신 새로운 조합으로 새로운 향을 창조해달라고 주문했다.

샤넬에서 N°5에 사용하는 재스민이 다른 브랜드, 다른 향수의 재스민과 구별되는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샤넬 향수에는 큰 꽃송이의 재스민 그랜디플로럼에 치유 효과를 지닌 재스민 오피시날을 접목해 사용한다. 샤넬 N°5에 들어가는 재스민의 90%를 그라스에서 재배하고 있으며, 재스민 꽃잎은 기계 대신 손으로 일일이 수확한다. N°5 빠르펭 (Parfum) 30mL 한 병에는 그라스 재스민 1천 송이가 담겨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버전의 N°5를 선보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미 완전체라고 생각하는 향수이기 때문에 새로운 버전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리지널리티를 잃지 는 않을까 우려될 때도 있다. 조향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샤넬은 새로운 버전을 선보일 때 마다 N°5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N°5의 새로운 라인이 원조 N°5를 배신할 일은 절대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N°5의 권위를 위해 새로운 라인이 반갑지 않을 수 있다. 향수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소비자도 향수와 친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 N°5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버전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샤넬 내부에서 새로운 라인을 개발하며 추구하는 지향점이 있나? 조향사의 영감을 따른다거나 동시대의 라이프스 타일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하는 방식 말이다. 질문에 언급된 모든 것을 균형 있게 가지고 가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가브리엘 샤넬의 명언 중 여기에 딱 맞는 말이 하나 있다. “유행은 변해도 스타일은 변하지 않는다.” 이 말처럼 N°5에 샤넬의 스타일이 내재되어 있어 항상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다.

새로운 1백 년을 바라보고 있다. 1백 년 후에도 N°5의명 성과 입지가 유지될 거라고 확신하나? 그 명성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N°5보다 더 유명한 향수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N°5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마릴린 먼로가 한 인터뷰에서 잠옷 대신 N°5를 입고 잔다고 말한 일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지난 1백 년 동안 쌓은 역사를 바탕으로 N°5의 명성은 계속 이어질 게 분명하다.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 샤넬 하우스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바란다. 샤넬 하우스는 N°5를 언제나 새로운 향수로 여기며 끊임없는 애정을 쏟고 있다. 압도적인 광고 캠페인을 통해 N°5의 세계를 현대와 연결하고, 앞으로 마주할 미래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올해는 마리옹 꼬띠아르를 주인공으로 감각적인 캠페인 영상을 찍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N°5는 항상 동시대와 연결되어 있을 것 이다.

내 주변에 N°5를 사용하는 남성도 더러 있다. N°5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었을 뿐 정체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여성의 향’을 추구하는 N°5의 본질에서 벗어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패션계에서도 이제 남녀를 굳이 구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 안에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공존한다.

샤넬 하우스의 조향사로서 소명이 있다면? 새로운 향수를 개발하고, 기존 향수의 헤리티지를 보존하는 것이다.

직접 조향한 N°5 로(L’Eau)를 소개해주기 바란다. N°5 로(L’Eau)는 N°5에서 영감받았다. N°5의 알데하이드 플로럴 노트가 신선함을 더해주는데, 2016년에 N°5의 상쾌함을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N°5 로(L’Eau)가 탄생하 게 되었다. N°5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새로운 N°5에 대한 계획이 있나? 지난 1백 년 동안 이미 다섯 가지 버전으로 재해석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조금 신중해야 할 것 같다. 매번 우리는 새로운 향수가 나오면 소비자들과 깊이 있게 대화하는데, 지나치게 다양한 향수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조향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하다. 조향은 창조적이고 직관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감수성이 요구된다. 개인적으로 클래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음악에서 영감을 얻고, 때론 예술 작품에서 얻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백년 후인 2121년, N°5의 모습은 어떨까? 1백 년 후에도 지금의 모습과 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 다. 그러길 바란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면 안 되고 영원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오늘 인터뷰를 하며 명확해졌다. N°5의 영원한 삶에 일조하고 싶다. 지난 1백 년 동안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앞으로 1백 년 동안 N°5가 보다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는 향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샤넬 향수 넘버5 CHANEL N°5
1937년 가브리엘 샤넬이 모델로 등장한 N°5의 광고 비주얼.
마릴린 먼로 샤넬 향수 넘버5 CHANEL N°5
N°5에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20세기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

N°5의 탄생

1920년대 파리의 고급 의상실 한편에는 향수 코너가 있었다. 상류층 여성들을 위한 멋진 드레스는 스타일과 분위기에 걸맞은 향수와 함께 짝을 이루곤 했다. 가브리엘 샤넬 또한 자신의 향수를 창조하길 바랐으며, 연인 드미트리 대공의 소개로 유명한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를 만나게 되었다. 에르네스트 보는 당시에 만들어진 천연 향의 향수(장미, 은방울꽃, 재스민 등을 조합)가 아니라 합성물인 알데하이드 활용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 알데하이드는 극도로 자극적인 냄새가 나지만 휘발성인 고가의 합성물로, 일반적으로 향수 원료로 쓰지는 않았다. 그는 알데하이드와 다른 향료를 혼합해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고, 가브리엘 샤넬 또한 천연 향이 아닌 독특한 원료를 혼합하는 데 동의했다. 1921년, 에르네스트 보는 1번에서 5번까지, 그리고 20번에서 24번까지 번호를 매긴 두 종류의 향수 견본을 만들었는데, 가브리엘은 이 중 5번째 향수(N°5)를 때마침 1921년 5월 5일의 신작 발표회 때 선보였다.

 

 

샤넬 향수 넘버5 CHANEL N°5
달을 주제로 마리옹 꼬띠아르와 작업한 N°5 광고 비주얼.
샤넬 향수 넘버5 CHANEL N°5
샤넬 N°5

향수병의 신화

샤넬의 패션과 마찬가지로, N°5 보틀은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이 되었다. 최초의 형태는 모서리가 둥근 모양이었는데, 이후 병과 마개의 모서리를 다이아몬드 커팅한 듯 경사진 모양으로 수정했다. 검은색 테두리를 두른 단순한 흰색 상자 또한 N°5의 간결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골드가 악센트를 주는 흑과 백의 대비, 모서리 부분을 샤넬 수트처럼 디자인한 케이스, 직각, 명료함, 절제, 이렇게 N°5는 샤넬의 주요한 디자인 요소를 모두 담고 있다. 샤넬의 아트 디렉터 쟈끄 엘루는 N°5 보틀의 현대성을 유지하면서 약 10년마다 한 번씩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아주 약간씩만 수정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