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샹테카이 모델 유아인, 잇츠스킨 모델 박지훈, 겔랑 모델 황민현, 에스티 로더 모델 로운, 아이소이 모델 유태오, 베네피트 모델 송강, 리더스코스메틱 모델 윤지성.

 

“남자가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최근 두 달에 한 번꼴로 남자 모델을 내세워 뷰티 화보를 찍고 있는 동료 뷰티 에디터 A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킨케어 제품처럼 남녀 모두 사용하는 제품이야 그렇다손 쳐도, 남자들이 잘 바르지 않는 립스틱이나 파운데이션 그리고 여성 향수 같은 제품을 남자 모델이 광고하면 과연 얼마나 구매로 이어지겠느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한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남자 모델 발탁 소식을 알리는 뷰티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고, 이달 <마리끌레르>만 해도 뷰티 화보 지면의 절반 이상을 남자 뷰티 모델에게 할당했다. 물론 광고 효과가 있으니 기용할 테지만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남성 모델 점유율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대체 그 목적은 무엇이며, 광고 효과가 어느 정도이기에? 답을 찾기 위해 최근 남성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뷰티 브랜드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10여 개 브랜드와 인터뷰한 결과 이들이 남성 모델을 선택한 이유는 크게 젠더리스 트렌드의 반영, 이성 모델을 통한 감성 자극, 팬덤을 이용한 고객층 확대와 바이럴 확장, 브랜드와 모델의 공통 가치 추구 등에 있었다. 국내에서 젠더리스 트렌드를 반영한 대표 뷰티 브랜드는 라카. 브랜드가 표방하는 ‘젠더 뉴트럴 뷰티’와 남성 메이크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최근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2>에서 외과 의사 역을 맡아 얼굴을 알리고 있는 배우 이종원을 모델로 메이크업 화보를 선보였다. 그 덕분인지 컬러 립밤인 ‘소울 비건 립밤’ 중 보랏빛 모브 컬러는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남성 고객의 구매 비율이 20%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으며(색조 제품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수치!), 아이브로 셰이퍼 역시 남성 고객의 구매 비율이 높은 편이다. 메이크업 브랜드 베네피트 역시 배우 송강을 모델로 색조 메이크업을 소구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러브 틴트’ 광고에 남자 아이돌 가수를 등장시켜 성공을 거둔 이후 브랜드 내부적으로 모델 기용에서 성별의 장벽이 무너진 결과다. “저희 틴트와 아이브로 펜슬, 모공 프라이머는 실제 남자 아이돌과 배우들이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남성 모델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베네피트 홍보팀 강지혜 대리의 말에서 알 수 있듯브랜드의 의도는 적중했다. 그를 모델로 한 신제품 틴트가 라이브 쇼핑 오픈과 동시에 완판되며 메이크업 브랜드의 모델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톰 포드 뷰티 현빈

톰 포드 뷰티 아시아 아타셰 현빈

라카 이종원

리카 모델 배우 이종원

 

한편 젊은 층에 어필하기 위해 뉴이스트의 황민현을 모델로 발탁한 프렌치 뷰티 브랜드 겔랑의 PR 매니저 이지혜 과장 역시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신제품 구매 고객에게 포토 카드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일부 제품은 출시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완판됐어요.” SNS와 관련 커뮤니티에 팬들의 구매 인증 샷이 올라오며 바이럴 되는 효과는 덤. 이 덕분에 신제품 판매 기록은 홍콩, 대만, 한국의 아시아 3개국 중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1위다. ‘남돌’의 포토 카드 덕을 본 건 에스티 로더와 잇츠스킨도 마찬가지. 에스티 로더는 올해 초 가수 겸 배우 로운을 단기 모델로 발탁해 포토 카드 증정 이벤트와 로운의 이름을 넣은 할인 코드를 발행했는데, 매출이 전년 대비 25%, 전달 대비 67% 상승하는 높은 세일즈 효과를 거뒀다. 이후 단발성이던 모델 계약을 정식 모델 계약으로 전환했으니, 브랜드의 만족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가수 박지훈을 모델로 선택한 잇츠스킨 역시 오픈 24시간 만에 준비한 포토 카드 물량이 동났다. 무엇보다 포토 카드 오픈 당일 공식 몰 트래픽이 평소 3배를 넘어섰고, 주력 제품인 ‘파워 10 포뮬라 LI 이펙터 감초줄렌’은 국내 판매용 물량이 일주일 만에 매진되어 다른 채널의 물량을 끌어다 판매했을 정도. ‘얼굴 천재’ 차은우를 뮤즈로 선정한 더모 코스메틱 브랜드 파티온도 모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앞서 차은우를 모델로 기용했던 계열사 동아제약 내 안구 세정제 브랜드 아이봉에서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 견인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모델 계약을 추진했는데, 첫 광고 비하인드 영상 공개 후 조회수가 곧장 1만 뷰를 돌파하며 그 효과를 바로 체감했다. 이후 드러그스토어에서 주력 제품인 ‘아쿠아 바이옴 토너패드’ 기획 세트가 오픈 1시간 만에 품절되기도 했으니 기대했던 바이럴과 매출 상승 효과를 모두 본 셈.

반면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고 브랜드 가치관과 부합하는 모델을 찾다 남성을 발탁한 경우도 있다. 크루얼티 프리 & 비건 뷰티 브랜드 샹테카이는 멸종 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고 자연 유래 성분을 중요시하는 브랜드 철학을 공유할 모델을 고심하다 평소 샹테카이 제품을 애용하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배우 유아인을 발탁했다. “브랜드와 어울리는 모델을 찾은 덕에 신규 고객이 대거 유입된 것은 물론 신제품 ‘퓨처 스킨 쿠션’이 출시 한 달 만에 전체 메이크업 제품 판매율 2위에 올랐어요.” 샹테카이 커뮤니케이션팀 라수진 대리의 전언이다. 아이소이 역시 브랜드 슬로건인 착한 성분과 피부 진정성을 소구하는 데 효과적인 모델을 탐색하다 브랜드의 ‘찐팬’인 배우 유태오를 만났다. 실제 오랜 기간 제품을 사용해온 그가 모델로 출연한 바이럴 영상 시리즈는 현재 누적 조회수 1백만 뷰를 넘어서며 놀라운 기록을 세우는 중. 유기 동물 보호 활동을 후원하는 리더스코스메틱은 이달 유기견을 입양해 기르고 있는 가수 윤지성을 모델로 선정했다. 아직 구체적인 효과를 말하기는 이른 단계지만 브랜드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모델과 함께하는 데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광고 효과에서 유의미한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아직 일각에는 이들을 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제품에 충실하기보다 화제성과 모델의 팬덤을 이용하는 상술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한다. 이 현상의 중심에는 화장품이 더 이상 여성 한정 소비재가 아니라는 인식, 그리고 광고에서 남성 모델과 여성 모델에 기대하는 성 역할 개념이 허물어지는 젠더리스 사고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중 어느 쪽에 더 힘이 실릴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추세로 보면 몇 년 후 이 기사를 보며 이런 자조적인 말을 중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남자 뷰티 모델? 그게 뭐 큰일이라고 기사까지 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