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함께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다수의 작업을 거치며 가까워졌음을 체감하는 순간이 많을 것 같아요. 케미스트리가 점점 더 좋아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제가 이전에 표현하던 것과 브랜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서로 원하는 바나 어떤 지점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잘 아니까 과정이 훨씬 편하고 수월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브랜드에 대한 저의 생각과 감각이 확고해지기도 했고요.
오늘의 촬영은 ‘강인함, 강렬함’을 주제로 진행했어요. 이 주제가 어떤 식으로 표현될지 무척 궁금했는데, 단단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명확하게 이해되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강인함은 단순히 세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데서 나오는 힘이에요. 그래서 오늘 촬영에서도 스스로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저만의 에너지를 보여주려 했어요.
그 말에서 강인함에 대해 꽤 오래 고민해왔음이 느껴지네요. 그간 자신감이 필요한 순간마다 많이 고민한 단어들이에요. 카메라 앞이나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 설 때마다 그냥 강한 것과는 다른 강인한 저를 보여주려 노력했거든요.
엄청난 규모의 무대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 편이라 들었는데,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는 시간은 필요했던 거겠죠? 그렇죠. 긴장감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꾸준히 저만의 방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어요.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지금은 무대 위에서 더욱 깨어 있는 상태로 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요.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시작한 블랙핑크 월드 투어 [BORN PINK]가 어느덧 네 번째 계절을 맞았어요. 설레고 즐거운 만큼 고되고 쉽지 않은 여정을 이어가는 중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실 틈틈이 잘 쉬어서 체력적으로는 그다지 버겁지 않아요. 그저 투어를 하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채워간다고 생각하니 새삼 놀라울 뿐이에요. 얼마 전에 멤버들과 “투어 하다 보니 세월이 갔어” 이런 말을 했어요.(웃음)
긴 시간 동안 투어를 하면서 새롭게 얻은 무언가가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맞아요. 정말 정말 많은 공연을 했으니까요.(웃음) 확실히 전보다 노련해진 느낌이 들어요. 어떤 무대든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요. 이제는 웬만한 돌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내 갈 길을 간다는 태도로 임해요. 예를 들어 갑자기 신발끈이 풀리면 ‘어떤 타이밍에 내가 뒤로 가니까 그때 묶어야겠다’ 하는 식이죠.
능숙함 이상의 경지에 이른 느낌인데요. 멤버들이 다 그래요. 갑자기 닥치는 어떤 순간에 아무도 놀라지 않고 각자 할 일을 해요. 누구 하나 멈추지도 않고요. 그럴 때면 ‘우리가 정말 많이 했나 보다. 이제 노련해졌다’ 싶어요.
파리에 이어 미국에서도 앙코르 콘서트를 치렀어요. 첫 번째 무대와는 또 다른 형태의 설렘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가 다시 갈 수 있게 열광적으로 반겨준 관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커요. 그래서 더 좋은 무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고요. 앙코르 콘서트에서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의 세트리스트로 바꿔 진행하는데, 그 때문인지 새로운 투어를 하는 것 같은 기대와 설렘이 있어요.
세트리스트를 짤 때 첫 곡을 놓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시작하는 음악이 공연의 전체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맞아요. 저마다 의견이 있으니까 이걸 하나로 맞추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특히 첫 곡에 대한 고민이 컸는데, 공통된 마음은 블랙핑크의 색을 더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곡이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전 투어의 앙코르 콘서트 첫 곡은 ‘뚜두뚜두(DDU-DU DDU-DU)’였는데, 당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해준 곡이었어요. 그리고 이후에 앨범을 준비하며 ‘이 곡도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우리를 잘 표현하는 곡인가?’ 하는 고민을 거듭하며 큰 도전이라 생각했던 곡이 ‘How You Like That’이었어요. 확신하기보다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한 시도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며 저희에게 두 번째 기쁨을 안겨준 곡이라 여러모로 의미가 있겠다 싶어 이번 투어의 첫 곡으로 골랐어요. 사운드나 안무도 신 나고 위트 있는 곡이라 모두가 즐겁게 시작하기에 좋겠다 싶었는데, 예상보다 현장 반응이 훨씬 좋아서 기뻤어요.
앙코르 콘서트의 첫 곡인 ‘Pink Venom’은 어떤 의도로 고른 건가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를 보며 아주 강렬한 시작이라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블랙핑크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저희 응원봉이 핑크색이니 무대에서부터 객석까지 온통 핑크로 물드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그 취지에 가장 잘 맞는 곡이 ‘Pink Venom’이라 첫 곡으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뚜두뚜두(DDU-DU DDU-DU)’부터 ‘How You Like That’, ‘Pink Venom’ 등을 죽 살펴보면 블랙핑크의 음악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블랙핑크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특정한 대표곡이 있다기보다 리스너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이 다르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뚜렷한 대표곡이 있으면 저희가 ‘우린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며 그 곡에 갇힐 것 같거든요. 아마 멤버들에게 물어봐도 각자 생각하는 대표곡이 다를 거예요. 그게 저희에게 더 열린 길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지수 씨에게 최애 곡은 어떤 건가요? 저 은근히 저희 앨범 자주 듣는 편인데요.(웃음)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곡은 ‘마지막처럼’이고, 만드는 과정이 엄청 즐거워서 좋아하는 건 ‘불장난’이에요. 녹음실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 재미있게 작업한 시간들이 떠올라서 들을 때마다 저에게 좋은 기운을 주거든요. 딱 하나만 고르라면 지금은 ‘불장난’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때에 듣는 편인가요? 갑자기 TMI 대방출하는 것 같은데(웃음) 운전할 때 많이 들어요. 집에서는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편인데, 유독 차에서는 저희 음악을 듣게 돼요.
공감합니다.(웃음) 특히 장거리 운전으로 에너지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음악이에요. 맞아요. 어쩐지 차에서 들으면 더 신나더라고요.
다시 투어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웃음) [BORN PINK] 투어가 이어지는 내내 무대마다 최초,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어요. 이런 성취에 크게 들뜨지 않는 편이라고 말해왔지만, 나름대로 의미는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연히 너무나 기쁜 일이죠. 그런데 ‘드디어 해냈다!’ 이런 식은 아니고, ‘이런 데까지 오게 되다니. 하다 보니 일이 점점 커지네?’ 이런 느낌에 가까워요. 사실 팬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그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 제게는 더 큰 의미가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세계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 내 일처럼 즐거워하잖아요. 그처럼 저희 소식에 팬들이 ‘우리 블랙핑크는 말이야’라면서 기뻐하니까, 그게 좋은 거죠.
누구든 시작할 때는 이 음악이 어떤 영향을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렇기에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면요? 아마 내가 이 음악으로 무슨 영향을 끼치겠다며 시작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 역시 그랬고요. 음악을 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내 음악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듣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내 음악이 힘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여기까지 기대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방식으로 블랙핑크의 음악이 존재하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이에 대해 좀 더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팬들이 써준 편지 읽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음악이 자신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그 사실을 접할 때마다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지난해 9월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하며 남긴 말이 떠오르네요. “제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저를 계속 단단하게 만들어갈 거예요.” 지금도 같은 마음이에요. 그렇다고 어떤 계산을 하면서 이렇게 하면 더 좋아할까? 하는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을 거예요.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솔직하게 해나가는 게 잘 사는 길이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