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 <누메로 베를린(Numéro Berlin)> 매거진에 실린 사진과 인터뷰가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사진가 만 레이가 떠오르는 컨셉트가 무척 흥미롭더군요. 작업 과정을 간단히 들려줄 수 있나요? 앞서 말했듯 저는 창의력이 발휘되는 환경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매거진 에디토리얼 촬영이 이런 영역 중 하나예요. <누메로 베를린>과 진행한 에디토리얼은 모델 하이디 클룸의 딸 레니 클룸이 모델로 참여했어요. 독일에서 디올의 앰배서더로 활약하는 에너지 넘치는 친구죠. 사진가는 패션 사진계에서 거장으로 존경받는 앨버트 왓슨과 함께했어요. 디지털 사진이 나오기 이전 시대의 작가이기 때문에 날것의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해요. 만 레이의 사진이 떠오르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예요. 우리는 사진을 촬영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으로 모든 작업을 진행했어요. 대리석 조각을 렌즈 앞에 갖다 대 효과를 준다거나 모델의 얼굴에 빛을 더하기 위해 윤기 나는 제품을 바르는 등 40~50년 전에 촬영한 방식을 따랐어요. 포토샵 등으로 보정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모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거죠. 요즘 젊은 작가들은 포토샵 후반 보정 작업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익숙하지만, 앨버트 왓슨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다만 현장 스태프들은 모든 그림을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을지도 몰라요.(웃음) 하지만 저는 이것이 걸림돌이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 다닐 때 암실에서 직접 필름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고심하고 수고를 들이며 수작업으로 만드는 작품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여러모로 뜻깊은 작업이었던 것은 분명해요.
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저도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방금 이야기한 수작업으로 진행한 이미지에 대한 생각에 깊이 공감해요. 와, 놀랍네요! 필름 작업을 해본 사람은 그 이미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알죠. 단순히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물을 탄생시킨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 것 같아요.
뷰티 시장은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해요. 올해를 점령한 뷰티 키워드는 ‘내추럴’이 아닌가 싶은데, 이후의 뷰티 트렌드를 어떻게 예상하나요? 내추럴 뷰티는 트렌드를 넘어 언제나 통하는 클래식이죠. 예전에는 말 그대로 과정을 간소화하는 것이 내추럴 뷰티였다면, 요즘에는 내추럴한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표현하기 위해 더 많은 단계를 포함하는 것 같아요. 베이스부터 치크, 눈썹까지 모든 부분에 손길을 더하죠. 이 말은 모든 메이크업의 베이스를 다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이런 바탕에 블랙 라이너로 강렬한 아이 메이크업을 연출할 수도, 계절에 맞는 컬러를 바를 수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하나의 트렌드를 정의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만약 있다고 해도 너무나 빠르게 바뀌는 것이 사실이고요. 이런 내추럴한 뷰티를 베이스로 원하는 무드를 표현하면, 그게 바로 트렌드가 아닐까 싶어요.
한국에서는 디올 뷰티의 제품 중 ‘디올 어딕트 립 글로우’가 무척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올해 1월에 출시한 ‘립 글로우’ #031 스트로베리 컬러도 지수에게 영감을 받았고,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059 레드 블룸 컬러는 한국에서 제일 먼저 선보였으니 그럴 만하다 싶어요. 디올 어딕트 립 글로우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손쉽게 바를 수 있으면서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에요. 실용적인 셰이드로 구성해 손이 자주 가기도 하고요. 스트로베리 컬러는 말씀하신 것처럼 지수에게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녀를 파리에서 자주 만나는데, 언제나 사랑스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풍겨요. 한국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요건을 두루 갖췄다는 생각이 들어 맑은 레드인 스트로베리 컬러를 개발했죠. 누가 발라도 입술과 피부 톤에 잘 녹아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본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시그니처 디자인인 위아래가 뒤바뀐 패키지도, 처음 이 제품을 개발했을 때 무척 혁신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디올 어딕트 립 글로우가 표방하는 ‘영 스피릿’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지난해에 인터뷰한 시기가 마스크에서 해방된 직후였죠. 지금은 언제 코로나19에 시달렸나 싶을 정도로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요. 뷰티 시장도 더불어 활기를 띠고 있다는 데 동의하나요?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늘 완벽하게 가꿔야 한다는 강박에서 처음으로 벗어났고, 그로 인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대한 올바른 신념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았어요. 사회적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내 몸을 위한 성분과 원료를 따져보는 등 좀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팬데믹을 지나온 지금은 이전과 분명 달라졌고 새로운 트렌드가 생긴 것은 분명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트렌드가 계속 생겨날 거예요. 시장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회전목마를 타는 기분이 들어요. 회전목마를 타고 계속 돌다가 잠깐 쉬는 시간에 지난 삶을 돌아보고, 또다시 돌면서 계속 라운드를 이어가는 거죠.
아티스트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일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저는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일 자체에 희열을 느껴 사진 촬영에 많이 참여해요. 특정 시즌과 트렌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죠. 그렇기에 결국 팀워크가 가장 중요해요. 모두가 하나의 작품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요. 결국 이 일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어요. 서로를 존중하며 아이디어를 쌓는 협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메이크업과 뷰티를 사랑하는 <마리끌레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정형화된 메이크업 루틴에 매몰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메이크업을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나를 더 아름답게 가꾸며,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에요. 아름다움을 바라는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 방식은 저마다 달라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찾으면서 제품을 바르고, 메이크업하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