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WITH
Olivier Polge
샤넬 하우스의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 인터뷰
샤넬은 오래전부터 이곳 그라스에서 메이 로즈와 자스민을 직접 재배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전통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키는 것은 단순한 전통이 아닙니다. 샤넬 N°5가 처음 탄생했을 때의 오리지널 향을 그대로 이어가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죠. 그라스의 꽃으로 만든 향수는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그 꽃으로 만드는 방식을 유지해야 합니다. 샤넬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점이 바로 이 장인정신이죠. 장인정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창의성을 위한 토대예요. 우리는 그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죠.
그라스에서 자란 원료는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요? N°5 빠르펭에는 그라스에서 재배한 자스민이 들어가지만, 모든 샤넬 향수에 이 자스민을 쓸 수는 없어요. 생산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른 향수에는 인도나 이집트산 자스민을 더하지만, 그라스의 자스민은 확실히 다릅니다. 향을 맡아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져요. 그라스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전통적인 재배 방식이 만들어내는 향은 단순히 ‘좋은 향’이 아니라 ‘다른 향’입니다. 저는 이 차이가 창의적 영감을 준다고 믿어요. 샤넬 그라스 농장은 프랑스 전체 꽃 재배지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꽃은 그만큼 희귀합니다. 수확하기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만큼, 그 꽃들은 더 진귀하고 살아 있는 향기를 뿜어내고요.
샤넬 향수 1백 년의 역사를 지킨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전통과 유산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저는 사실 ‘헤리티지’보다는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해요. 스타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해마다 새로 시작되는 과정입니다. 매년 1월에는 이탈리아의 시트러스, 3월에는 튀니지의 오렌지 블라썸, 5월에는 그라스의 로즈, 그리고 지금은 자스민을 수확하죠. 우리는 전 세계의 파트너들과 함께 계절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며 매년 다시 출발합니다. 그라스 농장에는 이제 자체 공장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추출법을 연구하며, 장인 기술과 혁신의 균형을 찾아갑니다. 전통은 살아 있는 기술이고, 매번 다시 피어나는 창조의 씨앗입니다.
최근 기후 변화가 그라스의 재배 환경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샤넬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물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겨울이 덜 춥고, 여름은 더 뜨거워졌어요. 장미와 자스민은 명확한 계절의 신호를 필요로 하는데, 이 균형이 무너지면 수확량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를 다시 심고, 재배지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살충제를 쓰지 않고, 기계 사용을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영농법도 실천하고 있고요. 기후변화에 맞서기보다 그 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고 적응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입니다. 이런 실험과 노력들이 향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라스에서 재배하는 원료 중 새로운 향료 개발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완전히 새로운 원료를 발견하는 일은 이제 거의 불가능해요. 우리는 이미 향료 식물을 대부분 알고 있고, 이를 향수에 효과적으로 적용해왔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원료’보다 ‘익숙한 원료의 새로운 면’을 찾는 데 집중합니다. 같은 꽃이라도 추출법을 달리하면 완전히 새로운 향이 나옵니다. 그라스 농장 옆에 있는 공장이 이런 연구의 중심이에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원료를 새롭게 읽어내며 창조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샤넬의 향수는 이제 단순한 향수를 넘어 문화적 현상이자 시대의 아이콘입니다. 이렇게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향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상당히 고민되는 질문이네요. 향수는 언어가 아니기에 이에 담긴 메시지를 말로 옮기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단어보다 더 본능적이고, 더 개인적인 메시지거든요. 향은 우리의 개성과 감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보다 직접적이고, 오래 남아요. 저는 사람들이 향수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단순히 좋은 향을 넘어서는 샤넬 향수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이번 여정에서는 원료가 향수로 태어나기까지 혼을 불어넣은 55명의 이야기를 조명합니다. 조향사는 이들을 이끄는 지휘자와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될까요? 그렇다면 좋겠네요. 저는 그라스를 사랑합니다. 이곳은 향수에 담긴 장인의 기술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주는 장소니까요. 향이 완성되기까지는 수확자, 재배자, 공장 기술자, 품질 관리자, 그리고 저 같은 조향사까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야 향이 완성됩니다.
샤넬 향수의 중심을 이루는 원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샤넬 향수의 아이덴티티는 특정 원료에 의해 정의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스민은 특별해요. 그 향은 샤넬의 정신과 맞닿아 있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상징하죠.
마지막으로, 좋은 향수를 만드는 데 좋은 원료가 왜 중요한가요? 좋은 음악에 좋은 악기가 필요하듯, 좋은 향에는 좋은 원료가 필수입니다. 훌륭한 재료는 향에 깊이와 지속성을 부여하죠. 한 시즌의 유행을 넘어 오랜 시간 남는 향수를 만들기 위해선 재배에서 추출, 조향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샤넬이 그라스의 흙을 직접 지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