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크업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완벽한 메이크업으로 세상에 나서는 이들에게
메이크업은 갑옷이자 예복이에요. 때로는 무기가 되기도 하죠.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이자
누군가를 매혹하고 유혹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메이크업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당신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단순히 아름다운 얼굴을 만드는 걸 넘어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한다는 인상을 받아요. 메이크업은 보통 어디서부터 시작되나요? 항상 ‘이야기’에서 시작해요. 먼저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상상하고, 그 안에서 펼쳐질 판타지를 그려보는 거죠.
앤드루 달링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만 꼽기는 매우 어려워요.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과거의 ‘퀸’들이겠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카부키(Kabuki),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에르테(Erté),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패션 디자이너 마리아노 포르투니(Mariano Fortuny), 메이크업 아티스트 세르주 루텐(Serge Lutens),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같은 사람들이요. 자신만의 판타지를 세상에 보여준 모든 퀸을 사랑해요. 물론 영감의 원천을 그들로 한정할 수는 없어요.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과 문화, 그 안에서 탄생한 미학에 끊임없이 매료되니까요.
그처럼 수많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왔는데, K-뷰티에서는 무엇이 눈에 들어오던가요? K-뷰티를 아주 좋아해요! 특히 또렷하면서도 부드럽고 몽환적인 눈매 표현이 흥미로워요. 블러셔를 바르는 위치부터 색이 은은하게 번진 듯한 입술, 벨벳처럼 매끄럽고 결점 없는 피부까지 말할 수 없이 아름답죠. 한국 메이크업 특유의 테크닉은 매혹적이에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과하지 않은 메이크업으로 인상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이고요. 최소한의 메이크업으로 얼굴에 생기를 더하고 한층 어려 보이게 만들죠. 굉장히 전략적이고 영리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으면서 각자가 가진 매력을 효과적으로 끌어내니까요. 지금은 미국에서도 K-뷰티의 여러 테크닉이 점점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오는 흐름이 보여요.
다양한 미학을 받아들이지만 당신의 작업에는 자신만의 분명한 색이 있어요. 특히 채플 론(Chappell Roan)과 함께 만든 비주얼은 강렬한 아이덴티티가 됐죠. 한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만들어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이 지닌 고유한 정신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그 사람의 본질이 하나의 룩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에서 출발하죠. 채플 론을 떠올리면 제 머릿속에는 언제나 판타지가 펼쳐져요. 채플 론 자체는 물론, 그가 만든 세계에는 신비롭고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거든요. 그래서 대담한 컬러와 반짝임, 과장된 형태를 즐겨 사용해요.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가 음악과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이는 판타지를 메이크업으로 이어가기 위한 선택이죠.
그와 작업하며 많은 게 바뀌었을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제 안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제가 워낙 머릿속에 끊임없이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사람이라 거대하고 대담한 상상도 많이 하거든요. 지금은 그것을 하나씩 밖으로 꺼내놓는 중이에요.
가장 먼저 꺼낸 건 뭔가요? 입고 갈 곳이 없어 옷장에만 넣어뒀던 볼가운이요! 이제는 그냥 꺼내 입으려고요.(웃음)
지극히 당신다운 발언이에요. 메이크업을 갑옷(armor)이자 예복(regalia), 자기표현의 수단이라고 말한 적이 있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나요? 그럼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요. 메이크업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완벽한 메이크업으로 세상에 나서는 이들에게 메이크업은 갑옷이자 예복이에요. 때로는 무기가 되기도 하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이자 누군가를 매혹하고 유혹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메이크업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그 말을 들으니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 삼아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EXPERIMENTAL’ 시리즈가 떠올라요. 이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싶었어요. 기존의 방식으로는 제 본성을 온전히 표현하기 어렵다고 느껴서 점점 더 과감하고 극단적인 메이크업을 시도하게 됐죠. 제게 자기표현은 단순히 자신을 보여주는 행위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고, 또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에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거죠. 때로는 수많은 말보다 단 하나의 작품이 한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하니까요. ‘EXPERIMENTAL’ 역시 그런 작업이에요. 룩 하나로 저라는 사람을 온전히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하나둘 쌓인 작업이 언젠가는 저를 설명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그 세계가 다른 크리에이터들에게도 스스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의 작업을 본 사람들이 딱 하나의 감정만 가져갈 수 있다면요? 쿤달리니 각성(Kundalini awakening, 일종의 영적 각성)?
그 정도까지요?(웃음) 뭐,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좋아요. 그냥 가슴이 뛰었으면 해요. ‘와, 신난다!’ 싶은 흥분과 설렘이면 충분해요.
당신은 스스로의 작업을 ‘대담하고(bombastic), 기이하며(eccentric),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instantly recognizable)’ 스타일이라고 표현했죠. 동시에 아름다움은 성별이나 전통적인 미의 기준 너머에 존재한다고 말했고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물론 제게도 나름의 미적 기준은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가지는 점점 분명해져요. 우리는 저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죠. 결국 진실조차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요. 아름다움은 수많은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이에요. 미국 중부에서만 살던 사람이 처음 유럽에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눈앞에 펼쳐진 건축물과 문화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갑자기 옥스퍼드대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싶고, 귀족 사회에 갓 데뷔한 사람처럼 차려입고 싶어지는 거예요. 이런 아름다움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지는 것. 제게는 그게 아름다움이에요.
결국 아름다움은 더 나은 내가 되고 싶게 만드는 힘이군요. 요즘 당신을 움직이는 건 뭔가요? ‘모든 걸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이라는 생각이요.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면 나는 무엇을 만들까? 트렌드도, SNS도 없다면? 그때의 나는 무엇을 만들까? 요즘은 이런 질문에서 영감을 받아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앤드루 달링의 모습을 하나 알려준다면요? 메이크업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작업을 즐겨요. 종종 메이크업에 그치지 않고 헤어부터 의상까지 하나의 룩 전체를 디자인하죠.
역시 머릿속이 좀처럼 쉬지 않겠어요.(웃음) 그럴 땐 어떻게 재충전해요? 스파에서 하루를 보내는 걸 무척 좋아해요. 제가 다니는 헬스장에 사우나와 스팀 룸, 콜드 플런지가 있어서 자주 이용하고요.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건 아무 목적 없이 도시를 걷는 거예요. 센트럴파크를 걸을 때도 있고요. 그저 조용히 걷는 거죠. 현대사회의 끊임없는 자극을 견디는 게 꽤 힘들어요. 한 번은 그런 것들 때문에 완전히 무너진 적도 있었고요. 그 뒤로 우리가 사는 이 ‘테크놀로지의 악몽’ 속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법을 배웠어요. 그래서 가끔은 세상에서 저 자신을 완전히 지워버리듯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도시를 걸어요.
그래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요? 집에서 만화를 보면서 마냥 뒹굴어요! 그날그날 달라요.(웃음)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젊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 한마디해준다면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를 찾고 그들의 세계를 끝없이 파고들어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만드는 것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해요. 어떤 기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자유롭게 만들어볼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거죠. 결국 자신만의 시그니처는 수없이 시도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하나씩 덜어내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씩 덜어낸 끝에, 당신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나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암흑기로부터 세상을 구할 방법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