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당신은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가십걸(Gossip Girl)>에서 뉴욕의 상류층 10대 소녀를 연기한 후에 언젠가 자선 활동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이나 했을까? 혹은 마르케사가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부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라이언 레이놀스와 캐롤라이나의 찰스턴 외곽에서 비밀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예상했을까? 아니면 뉴욕 베드퍼드에 저택을 사고 그 집을 꾸미며 휴가를 보내는 건 어떤가? 절대 늙지 않는 여자에 대한 영화 <The Age of Adaline>의 헤로인이 되리라는 건? 혹은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 셰릴 우던(Sheryl WuDunn)과 함께 10대의 성매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찾아간 보스턴의 한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뛰쳐나온 사건은? 혹은 라이프스타일 웹사이트를 론칭한 일은? 아마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블리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저는 항상 이와 비슷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죠.”

라이블리는 뉴욕의 바워리 호텔(Bowery Hotel) 스위트룸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컷아웃된 화이트 톱과 랙앤본의 블랙 오버올을 입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블론드 헤어를 어깨 위로 늘어뜨린 채 눈부신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끼고 말이다. <가십걸>에서 뚜렷한 인상을 남기고, 쓸쓸한 바다가 떠오르는 푸른 눈을 가진 그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자의식이 분명했다. 그녀는 술을 마시거나 마약에 손을 댄 적이 없다. 그녀의 맥북에는 하얀 맥 사과를 들고 있는 커다란 백설공주 스티커가 붙어 있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험한 말은 기껏해야 “Gosh” 정도다.

라이블리는 구찌에서 주최한 기부금 모금 행사인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의 1주년을 기념하는 ‘The Sound of Change Live Concert’에 참석했다. 차임 포 체인지는 여성을 위한 정의 실현을 위해 뭉친 비욘세, 셀마 헤이엑 그리고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가 주축이 되어서 만든 행사다. 누구든지 차임 포 체인지 웹사이트(차임은 3백여 개의 모금 활동을 통해 81개국 여성과 소녀들을 돕고 있다)에서 구찌 향수를 구입하면, 구입 금액 중 5달러를 자선기금으로 기부할 수 있다. 이 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킷과 스웨터, 팬츠 모두 랄프 로렌 컬렉션(Ralph Lauren Collection), 구두 지미 추(Jimmy Choo).
코트 세린느(Celine), 구두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반지는 블레이크 라이블리 소장품.

“무척 흥분됐어요. 왜냐하면 구찌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요. 기부금을 내는 것은 쉽지만 자신이 낸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보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기부의 기쁨을 오래 유지하기가 쉽지 않죠.” 또 많은 단체는 라이블리와 멋진 사진을 찍는 데만 관심을 둔다. “저는 사진만 찍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잠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어떤 행동을 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브리 치즈를 굽느라 바쁠 때나 아니면 1940년대 무비 스타처럼 마르셀 웨이브를 하거나 금이 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웨스트 빌리지 아파트 바닥에 얼룩이 생기면 바로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청소를 한다. “우리 어머니는 모든 집안일을 직접 다 했어요. 그게 우리의 생활방식이었죠. 어머니는 농장에서 자랐기 때문에 세 살 때부터 들에 나가 일했어요. 심지어 집을 지을 줄도 알죠.” 라이블리는 계속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파티를 열 때마다 제게 말씀하셨어요. ‘블레이크, 여기에 냄비와 팬이 있다. 탁자 위에 포개놓고 천으로 잘 덮어두렴’. 그리고 제가 아홉 살이 되자 어머니는 ‘망치지는 말고 이걸 요리해보렴. 장식도 좀 하고.’ 한 일흔다섯 번 정도는 지긋지긋하게 싫었어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배웠죠.” 라이블리는 새로운 곳에 여행을 갈 때면 그 지역 요리 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뉴욕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한 적도 있다.

<절망 너머 희망으로(Half the Sky)>의 저자 크리스토프와 우던이 PBS 방송의 다큐멘터리 <어 패스 어피어스(A Path Appears)>에 라이블리와 함께하면서 그녀는 한 걸음 더 도약할 것이다. 라이블리는 10대 성매매를 조사하고 성매매의 굴레에 빠진 미성년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크리스토프와 함께 팀을 이뤄 보스턴으로 갔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성매매를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몸을 파는 것을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했다는 거죠. 하지만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여러 좋지 않은 감정의 사슬에 얽매여 있다는 점이에요.” 보스턴의 미성년자 보호 기관인 ‘내 삶과 내 선택(My Life My Choice)’에서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사춘기 소녀들에게 성매매의 실체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며 그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와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매춘 알선 업자들은 폭력과 속임수를 써서 소녀들을 잡아두려고 한다. “미국에서만 약 80만 명의 아이들이 실종되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아이들을 찾느라 경찰서를 헤매고 다니죠. 하지만 언론에서는 그들이 백인이 아니고 부유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러한 일에 대해 잘 다루지 않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 이야기 좀 그만 하면 안 될까?’”

“라이블리가 자선사업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는 건 저로서는 별로 놀랍지 않아요.” 라이블리의 오랜 친구이자 배우인 아메리카 페레라는 말한다. “라이블리는 동정심이 많아요. 영리한 데다 사업적인 마인드도 갖췄죠.” 크리스토프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자신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웃거리는 사람이 아닌, 진심으로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라이블리가 배우의 길로 들어선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라이블리의 가족 모두 한 번씩은 연예계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일레인(Elaine)은 연기파 배우였고, 아버지 어니(Ernie)도 배우 겸 감독으로 연기 지도를 한 적 있다. 사실 블레이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이 크지 않았다. “가족은 제 삶과 제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있어요.” (얼마 전에 아이를 30명 두고 싶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이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만일 아이들을 한꺼번에 낳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라고 라이블리가 말했다.) 라이블리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오빠 에릭(Eric)은 캘리포니아 버뱅크 고등학교에서의 치어리더 활동을 그만두게 하고는 그녀를 오디션장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라이블리는 미국 횡단 여행을 하면서 찍어놓은 수많은 수공예품의 사진(무려 8만 장이 넘는다)을 아이폰에 저장해두었다. 라이블리는 그것들을 가져와 판매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가십걸>을 찍었어요. 촬영장은 매우 조직적이고 빡빡하게 돌아갔죠.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한 번도 어떤 탐험을 하거나 나만의 길을 개척할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나면 내가 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시도했을지도 모르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이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에요.” ‘이 일’이란 바로 프리저브(http://preserve.us)라는 웹사이트를 시작하는 것이다. 분명 새로운 모험이다. 이 사이트는 브루클린풍의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쇼핑몰이면서 자선 활동을 위한 기부금을 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돼지 등갈비 요리를 할 수 있는 레시피도 얻을 수 있다. 이 사이트의 모든 제품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핸드메이드 제품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수공예품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런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세대에 세대를 걸쳐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이트에는 약간 시골풍의 사진과 비디오, 그리고 글이 있다. 편지를 쓰는 기술이나 장인이 담근 피클 같은 절임부터 재생한 나무로 만든 식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소개한다. 라이블리는 모든 제품 촬영에 참여하고 사이트의 원고를 고쳐 쓰는 일도 한다. “1년 넘게 이 일에 매달렸어요. 사이트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앞으로도 또 1년 반이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동안 남편은 한결같이 그녀 곁에 있었다. “중요한 결정은 꼭 그와 함께 내렸어요. 하루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우리 둘 다 휴대폰을 끈 채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에요. 남편은 제 가장 절친한 친구죠. 가장 친한 친구와 만나면 뭘 하고 보내시죠?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그녀에게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프리저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미국 문화에 매료되어 자선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괴짜 노숙자 할아버지가 추는 팝 댄싱이나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비디오를 보고 나면 그에게 돈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있는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만들어주는 일을 할 거예요. 프리저브를 통해 정서적인 공감대가 생기기 때문이죠.” 라이블리는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프리저브에서 판매하는 물건에 이끌려 제품을 구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 있는 사이트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라이블리는 분명 그를 성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