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를 만난 건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 위크가 한창인 일요일 아침이었다. 촬영 전날 매니저는 드라마 촬영이 5시간 이상 지연돼 그녀가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키코는 후지TV의 <마음이 부서지네요(心がポキッとね)>라는 드라마에서 스토커 기질이 있는 데다 정서가 매우 불안정한 ‘미야코’란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이 역은 키코가 처음으로 맡은 주인공이다.

“이번 역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 주변엔 절대 없었으면 하는 캐릭터예요. 이런 친구가 있으면 무척 귀찮고 짜증스러울 것 같아요. 미야코의 불안정한 성격은 외로움에서 비롯되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고, 자신을 컨트롤하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요. 다소 과장된 캐릭터이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이런 외로움과 갈등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보리 셔츠, 와이드 데님 팬츠 모두 비아플레인(Viaplain).

아이보리 셔츠, 와이드 데님 팬츠 모두 비아플레인(Viaplain).

긴소매 화이트 티셔츠에 몸에 꼭 맞는 데님 쇼츠,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얀 양말을 신은 키코가 구주쿠리(九十九里) 해안가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화장기 없는 말간 피부에선 피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친구 집에 처음 놀러 온 틴에이저처럼 생기가 넘쳤다. 순간 에디터는 그녀가 수도 없이 들었을 법한 진부한 질문을 참지 못하고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런 피부와 머리카락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키코가 모범생처럼 대답했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유지할 수 있어요. 지금 이 컬러가 실제 제 머리 색이에요. 피부는 젊을 때부터 지나치게 관리하는 게 오히려 피부를 잘못 길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이 끝나면 서둘러 메이크업을 지우고, 땀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 종종 반신욕을 하는 정도로 관리하죠. 피부가 건조하거나 햇빛에 그을렸을 때는 스팀 팩이나 화이트닝 마스크를 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피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데님 재킷과 데님 팬츠 모두 미스치프.(Mischief),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님 재킷과 데님 팬츠 모두 미스치프.(Mischief),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메이크업을 위해 테이블 앞에 앉았을 때, 키코는 제일 먼저 휴대폰의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의 올드 뮤직을 좋아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제 인생에서 음악을 떼어놓을 수 없게 만든 건 아버지예요. 어릴 땐 우리 아빠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어요. 퀸이나 비틀스 등의 록 음악을 좋아하셨고, 디스코와 소울 뮤직도 많이 들으셨죠. 반면 어머니는 클래식과 재즈를 즐겨 들었고, 전 힙합을 좋아했어요. 그런 분위기이다 보니 저와 제 여동생은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죠.” 키코는 과거의 한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1980년대의 마이클 잭슨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음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내내 우리는 마이클 잭슨이 가장 빛나던 시절, 그의 콘서트장에 있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다.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과거에 대한 일종의 경외심을 간직하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드레스를 무척 좋아해요. 1990년대에 베르사체의 아틀리에 컬렉션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죠. 당시 진짜 크리스털로 제작한 꽤 무거운 드레스를 두 벌 소장하고 있어요. 그 옛날처럼 여성들이 한껏 차려입고 치명적인 매력을 드러내며 파티를 즐기던 문화가 다시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스트리트 패션은 조금 지루해요.”

 

블루 터틀넥 니트 톱 루이 비통(Louis Vuitton).

블루 터틀넥 니트 톱 루이 비통(Louis Vuitton).

키코의 옷장을 채우고 있는 아이템들도 궁금해졌다. “터틀넥 풀오버와 스키니 진이 많아요. 제가 목이 올라오는 옷을 좋아하거든요. 최근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애덤 셀먼(Adam Selman)이에요. 딱 제 스타일이죠. 아, 일본 브랜드 중에서는 카즈마 데토(Kazuma Detto)가 전개하는 DTTK를 알려드리고 싶어요. DJ로도 활동하는 그는 스포티하면서 미래적인 옷을 만드는데,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랍니다.” 마지막으로 모델이나 연기 이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느냐는 물음에 키코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프로젝트를 들려주었다.

“진짜 심각하게 생각해온 문제가 있어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이돌 스타들을 보면 죽을 만큼 일하면서 상당히 심한 규제 속에 놓여 있잖아요. 이렇게 현실을 모른 채 어른이 되면 경제관념을 키울 수도 없고 자기 관리도 어렵죠. 영화를 제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아이돌 스타가 또래의 평범한 친구를 만나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주인공은 길거리 캐스팅을 하는 게 좋겠네요. 감독은 고민되는데…, 추천해주세요.”

 

터틀넥 니트 풀오버, 데님 팬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터틀넥 니트 풀오버, 데님 팬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니트 톱, 시스루 스커트 모두 푸쉬버튼(pushBUTTON).

니트 톱, 시스루 스커트 모두 푸쉬버튼(pushBUTTON).

백리스 니트 톱 로우클래식(Low Classic), 와이드 팬츠 키옥(kiok),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백리스 니트 톱 로우클래식(Low Classic), 와이드 팬츠 키옥(kiok),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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