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제시카가 화보 촬영을 위해 <마리끌레르>의 카메라 앞에 섰다. 예전처럼 자신의 매니저와 스태프들과 함께 시끌벅적 등장하는 대신 혼자서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촬영이 있던 날은 그녀의 생일 전날이었고, 제시카를 ‘시카’라고 부르는 가까운 팬들이 그녀와 촬영 스태프들을 위한 컵케이크며 음료수, 향초를 한데 담아 선물로 준비해 촬영장을 찾기도 했다. 제시카는 요즘 살도 좀 붙었고, 자신의 패션 브랜드인 ‘블랑&에끌레어’의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근황도 들려주었다. 누구나 다 아는 일련의 소란스러운 일을 겪고 난 뒤 처음 하는 인터뷰라 그런지 대답하는 데 조심스러워하는 듯했지만, 이제 많은 것을 털어내고 새로운 꿈을 꾸며 이뤄가는 눈치다. “이번 시즌에 블랑&에끌레어의 데님 라인이 새롭게 나와요. 데님이라는 게 쉽지 않은 영역이더라고요. 데님 팬츠를 디자인할 때 입는 사람 입장에서 고민했어요. 스키니 데님 팬츠를 디자인하되 아시아인에게 잘 어울리는 전체 기장과 밑위길이를 고려했죠. 블랑&에끌레어 제품은 홍콩과 중국의 레인크로퍼드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팝업 스토어를 제안받은 상태고 아마 조만간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하게 될 것 같아요. 모든 게 신기하죠. 제가 스케치한 그림이 제품으로 완성되고, 그 제품이 매장에 진열되고 누군가 구입하는 모습을 직접 볼 때는 더 그래요. 그런데 가끔 어떤 사람들은 저 혼자 이 브랜드를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려면 제 팀을 구성하는 멤버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한데 모아져야 하는데 말이에요. 대표니 CEO니 하는 수식어는 쑥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해요. 괜히 제 이름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노고가 묻히는 것 같아 미안할 때도 있고요.”
그동안 제시카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두고 세간엔 많은 말이 오갔다. 그녀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오해인지 말을 늘어놓는 대신 조용히 패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고 무대가 아닌 다른 세상을 마주했다. “사실 인터뷰하는 걸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제가 말한 것과 다르게 기사가 나갈 때도 있고, 그 때문에 오해가 생긴 적도 많아요. 그렇다고 그때마다 해명할 수는 없잖아요. 큰 그림을 봤을 때, 말을 하는 것보다는 말을 아끼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때는 세상의 온갖 나쁜 말을 제가 다 듣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그런 이야기가 오갈 때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요즘은 좀 무뎌진 것 같기도 해요. 그러려고 노력도 많이 하고요. 제가 좀 못되게 생겼잖아요. 생긴 것 때문에 더 그런가봐요.(웃음)”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큰 힘이 되어준 건 제시카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의 가족이다. 얼마 전에는 동생과 엄마, 아빠 모두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데뷔하고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소녀시대로 지낼 때와 많은 게 달라졌죠. 우선 자유로워졌어요. 다른 멤버들과 함께할 때도 좋았지만, 혼자 활동하니 아무래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죠. 패션 디자인을 정식으로 공부하기 위해 학교에도 가려고 해요. 아직 정확한 시기는 정하지 못했지만요. 일단 지금은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죠. 무슨 일이든 견디고 나면 편안한 시간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힘들었던 일을 겪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니 점점 행복한 순간이 많아지는 걸 보면요.” 그리고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제가 지금도 소녀시대 멤버였더라면 오늘 같은 촬영은 아마 못 했을 거예요. 아이돌 그룹은 항상 해피해야 해요. 착하고 맑고 밝아야 하죠. 그런데 제가 벌써 스물일곱이잖아요. 언제까지 마냥 해피한 소녀로만 남을 수는 없어요. 어쩌면 오늘 촬영한 제 화보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소녀시대에서 나오더니 이제 벗네’ 하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런데 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잖아요. 여자 제시카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열아홉에 데뷔해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활동하면서 이런저런 제약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제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화보 촬영을 위해 촬영장에 혼자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많은 오해를 풀지 못하는 답답함 같은 건 접어둔 채 그녀는 앞으로 맞게 될 시간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패션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고, 자기 목소리의 매력이 잘 묻어나는 음악도 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말이다. “요즘 부쩍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몇 년 후면 서른이 된다는 생각에 이상하게 초조할 때가 있죠. 도대체 뭐가 초조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저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제는 혼자니까 그동안 다른 멤버들이 채워주었던 제 부족한 면도 스스로 채워야 할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도 잘 걸고, 사람들이 저를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벽 같은 게 느껴지나봐요. 전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 먼저 다가가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혼자 행사나 시상식에 갈 때 많이 힘들더라고요. 제가 먼저 나서 인사라도 해야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올 수 있으니까요. 제 성격의 벽을 조금씩 부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제시카는 ‘얼음공주’다. 살갑게 다가오기보다는 낯을 가리는 편이고, 돌려 말하기보다는 알아듣기 쉽도록 직선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녀에게 벽을 느꼈을 수도 있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한테 많은 오해를 샀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을 뒤로한 채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낸 지금, 제시카는 오로지 자신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집중하며 그동안 미뤄왔던 꿈들을 이루며,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꾸며 설레는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