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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어드한 화이트 스트링 셔츠와 실크 블랙 반팔 티셔츠 희귀(Heegui), 블랙 와이드 버뮤다팬츠 노앙(Nohant), 화이트 스트랩 샌들은 닥터마틴(Dr.Martens).

많은 사람이 어언 10년 전 <거침없이 하이킥!>의 모범생 소년 ‘민호’, 반듯하고 순수한 고등학생 이미지를 지닌 김혜성이라는 배우를 완전히 잊지 못한다. 활동이 조금 주춤했던 적도 있지만, 알고 보면 지금껏 생각보다 다양한 색깔의 배역을 종종 맡아왔는데도 말이다. 총에 맞아 동공이 탁 풀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연기한 <포화 속으로>의 학도병도, 대사 없이 몸짓으로만 연기해야 했던 <글러브>의 청각장애를 지닌 야구부 주장도 분명 민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민호를 깨끗이 잊지 못하는 걸까? 물론 <거침없이 하이킥!>은 김혜성이라는 배우를 전 국민에게 알린 근사한 기회였지만, 그에겐 오랜 시간을 들여 풀어야 할 숙제로 남은 것 같다. 이제 김혜성은 더는 국민 시트콤 같은 커다란 한 방을 원하지 않는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생각보다 훨씬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고 스스로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에 대해 의연히 받아들이는 배우 같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게 좋아요. 그게 더 자연스럽잖아요. 사람들이 저를 기억해주는 게 무척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그 민호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죠. 그런데 괴롭지는 않아요. 앞으로 풀어갈 수 있는 문제니까요. 해오던 대로 열심히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지낼 거예요.”

오는 8월에 개봉하는 영화 <퇴마: 무녀굴>은 그가 4년 만에 주연을 맡은 특별한 작품이다. 배우 김성균과 유선, 차예련이 함께 연기하고, 스릴러 영화 <이웃사람>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휘 감독이 이끄는 영화다. <퇴마: 무녀굴>은 동명의 원작 공포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퇴마사와 그의 조수가 혼령에 씐 여주인공을 치료하다 보이지 않는 기묘한 존재를 맞닥뜨리면서 전개되는 스토리다. 김혜성은 김성균이 연기한 퇴마사의 조수이자, 귀신의 존재를 느끼고 귀신 씌기까지 하는 영매 ‘지광’ 역을 맡았다.

“현장 분위기는 아주 좋았어요. 다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부터 가까워지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특히 성균이 형과 많이 친해졌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촬영 내내 즐겁고 신난다기보다 괴로웠고, 매일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으며, 걱정도 엄청 많았어요. 군대 다녀오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난 것이라 더욱 그랬죠. 예전에 비해 생각이 많아졌거든요. 진정한 연기는 뭘까, 나는 어떤 배우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서요.”

 

1508mcmacemd07_02김혜성에겐 의도적으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거나, 아주 상업적인 영화를 만나 운 좋게 빵 터뜨리고 싶은 욕심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놓치는 것 없이 꼼꼼하게 살피며 살아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한 작품이 스스로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촬영하며 보낸 시간들이 어떻게 겹겹이 쌓이는지에 대해 열심히 생각한다. “<퇴마: 무녀굴>은 제게 아주 특별한 작품이에요. 하나의 시작점이랄까요? 이 작품 이전의 김혜성이 철없는 소년, 어린 배우였다면 이 영화 이후의 김혜성은 어른이에요.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찍은 영화죠.”

자세히 보니 김혜성의 눈빛이 예전보다 훨씬 날카로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 이젠 정말 어른 배우가 된 걸까? 이번 작품을 연기하면서는 배역의 감정을 더 깊이 공부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특히 귀신에 빙의하는 장면을 찍을 때 공을 많이 들였다. 제일 애착이 가는 장면이다. 극중 캐릭터의 성격에 가장 큰 반전과 변화가 일어나는 부분이 귀신 씌는 장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빙의된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어떤 감정, 어떤 기분일지 많이 고민했어요. 인터넷에서 빙의 사례를 찾아보기도 하고 실제 활동하는 퇴마사, 무속인도 여럿 만났죠. 최대한 귀신에 씌어보려고 노력했어요. 계속 귀신을 머릿속에 떠올려서 그런지 촬영장에서도 괜히 음산하고 묘한 기류를 느낄 때가 많았죠. 어디선가 귀신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고요.”

김혜성은 청각장애인을 연기한 <글러브>를 찍을 때도 더 멋지고 근사하게 연출하려고 준비하기보다 실제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 20대 후반을 지나는 그는 분명 열심히 성장 중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20대를 돌이켜보면 내가 뭘 했을까, 무엇을 이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더 성공하지 못했을까 아쉬울 때도 있고요. 서른을 앞두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지만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커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이 더 재미있고, 뭔가 또 다른 세계가 열릴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때 더 성숙한 인간, 성장한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 아, 삼재는 작년에 끝났대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만난 무속인이 그랬어요.”

삼재도 끝났다니 이제부터는 그가 바라는 대로 배우로서도, 서른 살을 앞둔 남자로서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김혜성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는 성실한 배우니까. 또 어떤 일이든 결과만큼이나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또래보다 조금 뒤처지더라도 천천히 공부하면서 연기하고 싶어요. 단편영화나 예술성 강한 작품을 하면서 이제 막 시작한 영화인, 배우 지망생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고요. 엄청난 성공을 꿈꾸기엔 아직 공부해야 할 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