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풍요로운 시기다. 한 해 동안 2억 명이 극장을 찾았고, 천만이라는 경이적인 숫자에 무뎌진 이들은 얼마나 최단 기간에 천만 영화가 되었는지를 셈한다. 이 요란한 자축의 한편에서 소자본 영화들은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며, 저마다 빛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과 11월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박정범 감독의 <산다>는 세계 일주를 하듯 해외 유수의 시상식을 섭렵했고,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관에서 상영됐다. 그리고 작은 영화들의 큰 성공을 나서서 축하하는 이, 샴페인 하우스 모엣&샹동이 있다. 2012년부터 ‘모엣 라이징 스타 어워드(Moet Rising Star Awards)’라는 이름 아래 한국 영화계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기대주를 선정해온 모엣&샹동. 201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열렸던 첫 회에서는 <바비>의 이상우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로 자리를 옮긴 이듬해에는 <러시안 소설>의 신연식 감독이, 2014년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과 2015년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이 모엣 라이징 스타 어워드 감독상을 수상했다. 호사스러운 레드 카펫 워킹이나 거창한 수상 소감으로 시상식을 치장하기보다 수고한 영화인들을 한옥으로 초대해 따뜻한 저녁 식사를 대접해온 모엣 라이징 스타 어워드. 지난 12월, 역대 수상 감독을 초대한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의 정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갈한 파인 다이닝에 맞춰 모엣&샹동 임페리얼과 그랑 빈티지 2006이 차례로 서브되었고, 이 자리에 2016년 <마리끌레르>가 주목하는 배우 이솜이 함께했다.
이솜 배우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나뉘었지만 배우 연기에 대한 혹평을 찾기 힘들었던 영화 <마담 뺑덕>. 사랑과 절망, 분노의 고개를 수없이 오르내리는 여자‘덕이’를 연기하며 생의 첫 주연을 소화한 그녀는 촬영 당시의 고통스러운 시간마저 즐겁게 회상하고 있었다. “고열로 응급실에 갈 정도로 힘들었어요. 고생한 만큼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자꾸 힘든 작품이 하고 싶어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극장 티켓을 모으고, 티켓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직접 코팅기까지 구입했던 그녀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영화가 너무 좋아요. 영화라는 단어가 품은 아름다운 어감도 좋고요. 레아 세이두를 비롯해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은데, 단역부터 준비해 연기를 시작하고, 배우로서 성공한 이후에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요. 저 역시 그런 배우가 되고 싶고요.”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와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가 인상 깊었다는 그녀는 서른 이후 펼쳐질 배우의 삶을 기대하고 있다. “하드코어적인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좋은 배우의 얼굴에는 삶의 면면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도록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스스로 때를 많이 입혀야 하는 시기 같아요.”
이상우 감독
<트로피컬 마닐라>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 자극적이다 못해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상우 감독의 작품들은 해외 영화제에서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수상 기회가 적었다. 일찍이 모엣&샹동은 작품<바비>에 내재된 감독의 재능과 가능성에 동의하며 ‘라이징 스타 어워드’의 첫 번째 수상자로 이상우 감독을 선택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사를 열었고, 지난 10월 <스피드>를 선보이기까지 일정한 속도로 매년 작품을 선보였다. “저처럼 독립영화만 10편 넘게 만든 감독도 드물어요. 영화제에서는 객석이 꽉 차는데, 본 게임이라 할 수 있는 극장 상영에서는 늘 참패하니 힘 빠질 때도 많죠.” 그럼에도 그는 “영화제 나가서 칭찬받고, 관객에게 박수 받는 게 좋아”서 계속 영화를 만든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이유로 올해는 무려 6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시작은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제20회 시체스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곧이어 개봉할 <스타박’스 다방>은 순한 이야기예요. 한 대학생이 커피가 좋아서 커피숍을 열고, 커피 배달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배달’한다고 하니까 다들 이상한
생각 하는데, 아닙니다. 정말 배달만 하는 휴먼 드라마예요.(웃음)”
신연식 감독
“40대로 진입하기 전, 젊어서 할 수 있는 영화적 실험은 후회 없이 해본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작품이 습작이었다면, 2016년부터는 열매 맺는 작업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러시안 소설>과 <배우는 배우다> <조류인간> 등을 연출한 신연식 감독. 직접 쓴 탄탄하고 풍성한 텍스트는 연출가로서 그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만 3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출작인 <프랑스 영화처럼>이 1월 14일에, 그가 시나리오와 제작을 맡고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동주>는 2월 18일에 개봉한다. <배우는 배우다>를 통해 이준을 배우로 성장시킨 신연식 감독은 이번 <프랑스 영화처럼>에서도 걸 그룹 시스타의 다솜을 비롯해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의 스티브 연 등 잠재력을 지닌 젊은 배우들과 함께한다. “배우 강하늘이 시인 윤동주를 연기한 <동주>는 이준익 감독 스스로 <사도>보다 좋다고 평한 작품이에요. 위인 전기영화라기보다 순수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대표 예술인 10명에 대한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있는데 다음 주자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씨예요.” 멜로영화도 완성할 계획이다. “배우 마동석씨랑 사석에서 가볍게 이야기하다가 성사된 기획이에요. 마동석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대체 불가한 멜로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상업영화지만 굉장히 독특한 장르영화가 될 거예요.”
박정범 감독
<무산일기>의 탈북자 ‘승철’, 정신병을 앓은 누나와 조카를 책임지는 <산다>의 일용직 노동자 ‘정철’이 그랬듯 박정범 감독이 연출하고 연기한 이들은 하나같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리고 이 험난한 여정 속 박정범 감독 역시 연출가로서 고행을 감내한다. 50번의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고, 강원도에 갇혀 촬영에 매달리며 완성한 <산다>가 지난봄 개봉한 이후 그는 매달 한 번씩 해외 영화제에 참가했다. “<산다>를 완성하고 난 뒤 한동안 스스로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겨울이 되니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을 할 에너지가 생겨요. 지금까지 이 사회의 약자를 이야기했다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명필름과 함께 휴먼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어요.” 박정범 감독이 빚는 편안한 휴먼 드라마라니 의아했다. 그리고 이내 궁금해졌다. “등장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나 위기를 어떤 장르로 풀어내는가에 따라 휴먼 드라마의 성격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제가 잘할 수 있는 방식은 사실주의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동시대 대중의 관심사나 사회문제를 불편하지 않게 담아내면서도 생각할 만한 이슈를 전하고 싶죠.” 이 밖에 박정범 감독은 폴란드 오프플러 카메라영화제 대상 부상으로 폴란드 간 합작 영화 제작을 지원받는다. 이창동 감독이 제작을 맡을 예정이다.
이수진 감독
2014년 봄, 세월호 참사가 나라를 잠식한 때 깊은 슬픔 속에서 <한공주>를 만났다. 우리는 분노했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한공주>를 촬영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에너지도 없었고요. 차기작에 대한 관심에 부담을 갖기보다 스스로 본질에 충실하려는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첫 장편으로 제13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제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제28회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등 세계 영화제의 상을 고루 품은 그이지만 평생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도, 먼 훗날의 계획도 자신에게는 여전히 사치라고 말한다. “단편을 거쳐오며 자연스럽게 학습된 마음가짐 같아요. 10년간 사진을 하다가 인생에 영화 한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첫 단편 <아빠>였습니다. 그 이후 작품부터는 이번이 마지막 영화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까지 더듬더듬 온 거죠. 힘들 때는 내가 최고라고 자기최면도 걸었다가, 또 어떤 날에는 이 길이 맞지 않다는 생각도 하죠. 자책과 응원을 반복하며 왔으니 장기적인 계획은 여전히 무리예요.” 이수진 감독은 다음 작품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꿈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누구나 꿈이나 희망을 품고 있지만 이에 집착하다 보면 꿈이 미신이나 우상처럼 돼버리는 상황이 생기거든요. 그런 이야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