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터틀넥 톱 (Benetton), 팬츠 조셉(Joseph).

니트 터틀넥 톱 베네통(Benetton), 팬츠 조셉(Joseph).

블랙 점프수트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Calvin Klein Platinum), 안에 입은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점프수트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Calvin Klein Platinum), 안에 입은 블랙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프넥 니트 스웨터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 (Calvin Klein Platinum), 쇼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프넥 니트 스웨터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 (Calvin Klein Platinum), 쇼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소담은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지난해 <검은 사제들>에서 악령이 깃든 여고생을 연기하며 충무로의 가장 뜨거운 라이징 스타로서 한 해를 보낸 그녀는 요즘 연극 <렛미인>의 ‘일라이’를 연기하고 있고, 연습과 공연이 없는 날에는 사전 제작 드라마인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를 촬영하는 중이다. 그녀는 늘 그렇게 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검은 사제들>의 ‘영신’으로 그 존재를 알아채기 전부터 그녀는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고, 스무 편에 가까운 단편영화와 몇 편의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표정 없는 소녀와 <베테랑>에서 수모를 겪던 신인 여배우, <사도>에서 회초리로 맞던 후궁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고된 스케줄이 힘들었는지 아기 때 이후론 처음으로 열이 39.5°C까지 오르는 독감에 걸렸다는 그녀가 말했다. “아직 지치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저더러 ‘독한 년’이라며, 좀 쉬어 가라고 하지만 여전히 연기하는 순간이 너무 재미있어요.”

 

연극과 드라마 촬영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지칠 법도 하겠다. 아직 지치진 않았다.(웃음) 그런데 지난주 독감에 걸려서 아기 때 이후 처음으로 열이 39.5°C까지 올랐다.
왜 연극 <렛미인>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건가? 안전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연기를 처음 배운 곳도, 연기를 시작한 곳도 연극 무대다. <검은 사제들>을 끝내고 영신이에 대한 많은 관심과 좋은 반응 덕에 다음엔 뭘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렛미인> 오리지널 연출 팀이 한국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디션을 보기로 했다. <렛미인>은 동작이 많은 공연이라서 오디션 때 1시간 40분 동안 ‘움직임 워크숍’을 했는데 그때 ‘아, 내가 이런 느낌 때문에 연극을 해왔고 연기를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다행히 운 좋게 오디션에 합격했다.

 

블랙 니트 베스트 세컨플로어(2nd Floor).

블랙 니트 베스트 세컨플로어(2nd Floor).

어떤 매력 때문에 다시 무대를 찾게 된 걸까?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연기를 하면서 바로 관객의 반응을 느낄 수 있고 그 반응에 따라 내가 다시 연기로 반응하고 하면서 순발력을 기를 수 있다. 배우가 가져야 할 목소리나 신체를 위한 훈련도 영화나 드라마를 준비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좋은 공부가 된다. 또 하나의 작품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도 길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번 커튼 콜을 할 때마다 울컥하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렛미인>도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 도전하게 된 것 같다.
처음 연기를 시작하고 연극 무대에 올랐을 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똑같나?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른 게 스물한 살 때였는데 그때는 정말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임감이란 게 생겼다. 나만 즐겁다고 되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연기로 충분히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안긴 첫인상이 강렬했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악령에 씌인 여고생이었고, <렛미인>에서는 드라큘라가 되었다. 둘 다 우리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 아닌 셈이다. 성격이 조용하고 우울한 편이었다면 오히려 그런 연기를 못 했을 거다.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님도 무거운 역할을 연기해도 금세 그 역할에서 빠져나올 만큼 긍정의 기운을 가진 배우를 찾고 있었다. 영신이란 인물은 분명 무서운 캐릭터이긴 하지만, 오케이 컷 소리가 나면 웃으면서 ‘감독님, 저 괜찮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배우 말이다. 오히려 평상시에 잘 접할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보니 연기하는 내내 재미있었다.
오해했다. 조금 무겁고 우울한 면을 가진 사람일 줄 알았다. 그런 거 되게 싫어한다.(웃음) 혼자 있는 것보다는 사람들 만나는 걸 더 좋아한다. 우울한 날에 집에 혼자 있으면 괜히 더 외로워지는 것 같아 공연도 많이 보러다니고, 친구도 일부러 많이 만난다.
연기는 왜 시작하게 되었나?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 배우가 되고 싶어진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본 후였다. 무대 위 배우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나도 저들처럼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시작했다. 연기에 대한 매력보다는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에 빠진 거다. 좋아하는 일을 저토록 즐기며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연기를 하기로 결심했을 때 부모님은 응원해주었나? 전혀. 어머니는 우리 집안에 그런 피는 흐르지 않는다고 말리셨고, 아버지의 반대는 더 심했다. 아버지는 배우를 ‘노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결혼 기념일에 영화 티켓을 선물해도 극장에 가지 않고, TV는 뉴스 채널과 디스커버리 채널, 딱 두 개만 보는 분이었다. 그런 반대를 무릅쓰고 수시에 영화 관련 학과에 다섯 군데 넣었는데 모두 떨어졌다. 아버지가 호적에서 날 파버릴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고집부린 건데 생각만큼 잘 안 풀리니까 힘들었다. 그맘때쯤 본 영화가 <블랙>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만큼 펑펑 울었다. ‘이렇게 가진 게 많은데 뭐가 힘들다고 불평하고 우는 거야. 빨리 가서 연습이나 해’ 하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지금은 아버지도 내 일을 좋아해주신다. 내가 출연한 <라디오스타>를 한 열 번은 보신 것 같다. 새벽 6시면 일어나 출근하시는 분인데 새벽 2시에 재방송 한다며 나와서 같이 보자고 하실 정도다.(웃음)
이제 막 배우로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지금의 내 얼굴과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역할은 정해져 있고 나이가 들어 30대, 40대가 되어 할 수 있는 역할과 작품이 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인 것 같다.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어서 빨리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껏 참 부지런히 20대를 살아가고 있다. 학교도 쉬지 않고 4년을 쭉 다녔다. 그간 연극도 4편 했고 16편의 단편영화도 찍었다. 남들이 보기에 미련하리만큼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유는 하나, 재미있어서다. 다들 왜 쉬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쉬면서 하는 거라도 답했다. 힘들고 지치면 분명 쉬어갔겠지만 그저 재미있어서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혼자 여행 한번 해보지 못했다는 거다. 시간도 없었지만 사실 혼자 어디엔가 가는게 두려웠다. 올해는 꼭 혼자 아주 짧게라도 여행을 가고 싶다. 6년을 달려 왔으니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아주 살짝 리셋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혼자 여기저기 부딪히며 지내보고 싶다.
연기 말고 다른 데 열정을 쏟아부은 적이 있나? 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가장 열정을 쏟아부은 거라면 노래방?(웃음) 아, 재작년에 수상스키를 처음 접하면서 아주 신났었다. 처음에는 무언가에 매달려 끌려간다는 게 엄청 싫었는데 막상 해보니 마치 하늘을 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작년에 너무 바빠서 한 번도 못 탔다. 올해는 꼭 타야지.
영화와 달리 드라마 속 박소담은 좀 가벼워진 느낌이다. 드라마 <처음이라서>는 <검은 사제들> 촬영을 마치고 오디션을 봐서 하게 된 작품이다. 밝은 본연의 내 모습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이라서> 촬영하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이번엔 진짜 인간을 연기하는 구나’ 이런 느낌. 좀 더 박소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껏 수도 없이 많은 오디션을 봤겠다. <렛미인>도 그렇고 <검은 사제들> <베테랑> <사도> 모두 오디션을 거쳐 하게 된 거다.
합격의 기술을 책으로 써도 되겠다. 안 된다. 떨어진 오디션이 더 많다.(웃음) 내 나이에 응시할 수 있는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전부 다 본 것 같다. 한 달 동안 열아홉 번 오디션을 보고 모두 떨어진 적도 있다. 오디션이라는 게 끝나고 나면 무척 허무하다. 이렇게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하며 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3분, 5분 동안 오로지 연기로만 나를 표현해야 한다. 오디션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오면 그동안 준비해온 과정이 머리를 스치면서 눈물이 엄청 난다.
올봄 가장 기대되는 건 뭔가? 아마 3월 내내 드라마를 촬영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4월 말쯤에는 끝날 테니까, 그때는 진짜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올 거다. 여행 가서 특별한 걸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어딘가에 가고 싶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가 될까? 매년 왔으면 좋겠다. 한 번 오고 끝나면 슬프지 않나. 그렇게 매년 내 인생의 봄날이 찾아올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해야지 않을까?

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