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화보
니트 터틀넥과 팬츠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여전히 많은 사람이 <왕의 남자>의 이준기를 기억한다. 왕의 사랑을 받는 남자를 연기했으니 이 젊고 새로운 배우의 등장은 요란하다면 요란했고, ‘공길’의 잔상은 꽤 짙었다. 그로부터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시칠리아 햇빛아래> 무대 인사를 위해 중국에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는 그는 올해 개봉한 중국 멜로영화 중 첫날 스코어만 따지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충무로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 이준기는 많은 작품을 소화하며 쉬지 않고 달려왔고, 중국에서도 배우로서 꽤 단단한 입지를 다졌다. 그런 그가 자신의 시작점인 사극으로 다시 돌아온다. 중국 소설 <보보경심>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판타지 사극 드라마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서 이준기는 훗날 고려의 광종이자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인 4황자를 연기한다. 또 판타지고 사극이냐는 질문에 그는 빠른 호흡으로 명확하게 답했다.

“그동안 많은 판타지 사극에 출연했어요. 그간의 제 연기나 행보가 대중에게 실망을 줬다면 분명 다시 선택받지 못했겠지만 여전히 저를 찾아주고 저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건 그래도 지금껏 작품을 잘해왔다는 방증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드디어 왕이 돼요.(웃음) 어쩌면 젊은 날의 사극으로는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질문 앞에 주저하기보다는 빠른 속도로 잘 정리된 생각을 막힘 없이 풀어내는 그는 좀 더 많은 작품으로 이제까지와 다른 이준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말했다. 그간 이준기의 많은 작품을 봐왔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가 배우로서 살아갈 날들의 시작을 봤을 뿐이다.

 

이준기 화보
카디건 조나단 앤더슨 바이 무이(J.W. Anderson by MUE), 슬리브리스 톱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다시 판타지 사극이다. 사극이지만 여러 면에서 이전 작품들과 다른 점도 많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전에는 주로 원 톱으로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한 인간의 성장기를 많이 연기해왔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밸런스를 맞춰간다. 드라마의 배경이 고려시대인데, 이 시대를 그린 사극은 나도 처음이다. 처음으로 왕이 되기도 한다. 궁중 암투라는 점도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다. 궁중의 미묘한 갈등과 정치적인 소용돌이를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작품의 장르가 다양하지 않은 점이 아쉬울 수도 있겠다. 다양한 감정, 많은 액션 등 볼거리가 풍부한 작품을 위주로 해왔다. 반면에 잔잔한 휴머니즘이 있는 드라마나 로맨스물은 별로 못 해봤다. 가끔 그런 작품을 많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담기에는 내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고, 내가 가진 장점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 재미를 느꼈다. 이제야 비로소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그러면서 나 자신이 좀 더 단단하고 유연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맡을 작품에서는 보여줄 게 더 많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조급하진 않다. 나이도 들었고 그만큼 성숙하면서 담을 수 있는 감정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지금부터 다른 색깔의 작품에 출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또래에 비해 어려 보이는 내 얼굴이 배우로서 걱정스러웠던 적도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그동안 해온 작품이 쌓이고 내공이 더해져 좀 더 남자답고 농익어가는 것 같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못한 나의 다양한 모습이 많다. 그간 현대극이건 사극이건, 몸을 쓰는 캐릭터가 많았다. 내 장점을 잘 아는데, 나는 몸 쓰는 걸 잘한다. 무용이든 액션이든 잘하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를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써먹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30대 중반이니 말이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들을 써먹을 수 있는 작품에 쏟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준기 화보
코트와 톱, 팬츠 모두 닐 바렛(Neil Barrett).
이준기 화보
우영미(WooYoungMi), 팬츠 옴펨(HOMFEM), 스니커즈 컨버스(Converse).

SNS를 꽤 열심히 하더라. 팬들과 소통하기 위한 일인가? SNS로 팬들과 소통하다 보면 내가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나 지향해야 할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 팬들은 나에게 소중한 친구 같다. 또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작품 이외에 예능 프로그램이나 행사장 같은 곳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배우로서 좀 더 진지하게 내 영역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아직 배우로서 나아가야 할 길, 해내야 할 일이 많고, 사실 예능감도 별로인 것 같다.(웃음)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작품을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도 있으니 이제는 조금씩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볼까 한다. 워낙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면도 있으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데뷔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름다운 소년을 연기하며 충무로의 가장 뜨거운 신인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껏 해온 작품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작품을 꼽는다면 무엇인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왕의 남자>는 평생 기억될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작품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축복받은 삶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작품 덕분에 다양한 작품을 제안받고 행복한 고민을 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 작품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왕의 남자>는 어쩌면 내가 넘어야 할 산이자 목표점이다.

 

이준기 화보
재킷과 트랙 톱 모두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이준기 마리끌레르
니트 스웨터 우영미(WooYoungMi), 팬츠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영화 <화려한 휴가> 때처럼 좀 더 우리의 세계와 가까운 이준기가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 작품에 대한 목마름은 없나? 당연히 목마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직 보여주지 못한 내 모습이 아주 많다는 거다. 배우 이준기의 인생은 앞으로도 창창하다. 앞으로 더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할 것이고 그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런 목마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배우 생활을 앞으로 하루이틀 더할 것도 아니니, 차분하게 많은 작품을 하며 다양한 삶을 그려볼 것이다. 관객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가치 있는 작품도 많이 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소란스러운 스캔들 하나 없이 배우로 살아왔다. 시끌벅적한 연예계에서 고요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배우라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사생활을 관리해야 한다. 물론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감을 내려놓기도 힘들다. 오랜 시간 나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관리해왔고 이제는 그런 습관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어 불편하진 않다. 다만 좀 더 사람답게 살아보면 어떨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많이 하는 편이다. 배우란 사람을 그려나가는 사람인데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 결국 가짜만을 그려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 시간에는 슬럼프의 순간도 있었겠지. 서른이 되기 전에 나름 모진 인생사를 경험했다. 오랫동안 의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그 때문에 송사에 휘말려 재산을 잃기도 했다. 법정 싸움으로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금에 비하면 어렸으니 그 시간을 이겨내기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은 멘탈이 꽤 강해졌고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유연해지고 나 자신이 단단해진 것 같다. 신은 인간에게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을 준다고 하지 않나. 인생이란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 속에서 그 파도를 타고 넘는 법을 배워나가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실망하고 좌절하면 낙오할 뿐이다. 이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행복한 편이다.

이준기 마리끌레르
우영미(WooYoungMi), 팬츠 옴펨(HOMFEM).

오늘 촬영이 끝나고 가족 모임에 간다고 들었다. 가족을 너무 잊고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일만 하며 살다 보니 부모님과 형제를 전혀 챙기지 못하고 있더라. 부모님 건강도 예전만 못한 게 보이고. 내 가족이 없다면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이 없다면 부모님이 멀리 떠났을 때 얼마나 슬플까? 가족은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관계여야 하는데 어느 날 문득 돌이켜 보니 그러지 못하고 살고 있더라. 그래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 이제는 매년 온 가족이 해외로 여행을 다닌다. 부모와 자식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레 서로를 잘 아는 건 아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없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부모님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우며 고마운 아들로 기억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