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 화보

스웨트셔츠, 스커트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낮에는 흔녀 스타일의 회사원으로 지내다, 밤이 되면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퀸’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화장을 하고 격투장 링에 오르는 특이한 여자. 얼마 전 방송된 웹드라마 <아이언 레이디>의 여주인공 ‘고알리’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삶을 산다. 이토록 별난 캐릭터를 연기한 윤소희도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판이한 두 개의 일상을 오가며 살아가는 배우다. 영재원과 과학고등학교를 거쳐 카이스트에 입학한 야무진 공대생이 생경하기만 한 배우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수많은 감정이 뒤섞이는 시간을 보냈을 그녀를 만났다.

<아이언 레이디>의 제작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 등장한 윤소희의 모습은 의외였다. 가녀리고 수줍은 표정으로 슬며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털어놓던 솔직한 그녀가 흥미로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궁금해지는 낯선 얼굴로 마주 앉은 그녀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대답을 내어놓고 밝게 웃는다. 일상의 모든 것이 뒤바뀌는 커다란 변화의 와중에서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 즐겁기만 하다는 윤소희의 에너지가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윤소희 화보

레드 원피스 디케이엔와이(DKNY), 팔찌 판도라(pandora), 귀고리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연극이 끝나고 난 뒤>와 <아이언 레이디>. 드라마와 리얼리티 예능을 혼합한 구성이 무척 신선했어요. 저도 새로운 기분으로 시청하고 있어요. 방송 나오기 전부터 어떨지 되게 궁금했거든요. 이런 독특한 포맷은 처음이라서요. 본방 사수 하면서 매번 ‘와, 이렇게 나올 수도 있구나’ 해요.

연기하는 내 모습, 현장에서의 내 모습을 동시에 보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신기하죠. 저 상황엔 저러지 말걸, 하면서 아쉬워하기도 하고요. 재미있는 경험이에요. 제가 모르고 있던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제예요? 현장에서도 정말 배우들끼리 ‘썸’ 타는 분위기였어요? 가짜로 연출한 장면은 하나도 없어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드라마 현장 스케치 촬영하듯이 자연스럽게 찍은 거예요. 각자 드라마 역할에 몰입하니까 서로 호감이 생기긴 해요. 밤새워 촬영하고, 계속 붙어 있으니까 정이 들죠. 하지만 썸까지 가려면 좀 더 오랜 시간 두고 봐야 하는데 이 작품은 딱 한 달 동안 찍은 거거든요. 남녀로서 좋아지는 감정은 그보다 오래 겪어봐야 알지 않아요?

남자 배우들이 엄청 챙겨주던데, 두근거리는 순간이 많았을 것 같아요. 네. 자주 심쿵했죠. 촬영 끝나고 집에 가서 괜히 혼자 설레기도 했고요.

언제 제일 설레었어요? 태국으로 촬영하러 떠나던 날이요. 제가 밤을 새우고 비행기를 타서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 민혁 오빠가 조용히 담요랑 쿠션 챙겨서 덮어주더라고요. 엄청 피곤한 상태였는데 순간 심쿵했죠.

 

윤소희 화보

안에 입은 블랙 톱, 레드 니트, 스커트 모두 디올(Dior), 귀고리 쥬디앤폴(Judy and Paul).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원래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어요. 좋은 학교 들어가면 시켜준다고 하셔서 일단 공부부터 열심히 했죠. 연기 빼고는 대학 합격이라는 목표만 있었지 분명하게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냥 막연하게 전공하고 연결되는 진로만 있었고요.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부모님께서 줄곧 반대하셨지만 운 좋게 연기할 기회를 잡았어요.

데뷔한 지 3년이나 지났어요. 부모님이 이제는 응원해주시겠죠? 제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다 챙겨 보세요. 그래도 아직 제가 학교 다니는 삶으로 돌아가는 데 미련이 있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엄마한테 이런 카톡이 왔어요. “너 요즘 공부 안 하니? 일도 일이지만 공부 좀 해야지.”

아쉬울 만도 하죠. 독일어에 능통하고, 과학고에 이어 영재원, 카이스트까지. 엄청난 스펙이잖아요. 엄청나긴요. 저 아주 평범해요. 그냥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열심히 했어요. 주어진 건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하는 성격이에요. 공부할 때는 흐지부지하지 않아요. 한번 집중하면 푹 빠져서 하죠.

정확히 공부하는 분야가 뭐예요? 생명화학공학이요. 화학이랑 생물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바이오, 인공지능 같은 분야에도 관심이 많고요. 영화에서 가끔씩 사람 몸속에 칩 같은 거 이식하는 장면 나오잖아요? 그런 게 다 그 분야예요.

공부하는 분야랑 연기 쪽이랑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을 것 같아요. 공부가 즐거운 건 무언가 새로운 걸 깨달았을 때 드는 감정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음, 희열 같은 거요. 저한텐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전혀 몰랐던 세상을 마주치고 또 그걸 헤쳐나가는 일이 즐거워요.

학교에서는 늘 상위권에서 주목받는 학생이었는데, 배우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첫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연기는 참 어려워요. 열심히 한다고 무조건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근데 저는 꼭 ‘남들보다 잘돼야지, 1등 해야지’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주관적인 목표만 설정해두고 그 안에서 신나게 즐기는 편이죠.

그럼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없어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 아직까지는 재미있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어렵고 힘들다고 매번 후회하고 그만두면 평생 어떤 것에도 도전하지 못할걸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다고 생각해요? 얻은 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난 거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냈는데, 여기 나오니까 그야말로 신세계인 거예요. 학교만 다녔으면 몰랐을 것들 천지예요. 잃었다고 생각되는 건 딱히 없어요. 얼굴이 점점 알려지면서 다니는 데 제약이 조금 생겼다는 정도? 그래도 괜찮아요. 시작하기 전에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부분이니까요.

 

윤소희 화보

원피스, 팬츠, 트렌치코트 모두 아뇨나(Agnona), 슈즈 메트로시티(Metrocity), 귀고리 쥬얼카운티(Jewel County).

2016년이 벌써 반이 넘게 지났어요. 드라마 <기억>도 찍었고, <아이언 레이디>까지. 알차게 지냈네요. 바쁘긴 했지만 올해 활동은 특히 뿌듯하게 느껴져요. 어수선했던 작년에 비해 작품 하나하나에 최대한 집중해서 임했거든요. 특히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제게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촬영 현장에 갈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렇게 매 순간 배운 것을 잘 기억해가면서 더 열심히 해야죠.

여름휴가는 다녀왔어요? 남동생이랑 3박 4일 동안 일본에 다녀왔어요.

단둘이서요? 신기하네요. 다 커서는 남매 둘이서 다니기 어려운데. 어릴 적부터 늘 친하게 지내서 그러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다들 우리 남매를 신기해하더라고요. 근데 저희는 아주 친해요. 단짝처럼 지내죠. 동생이랑 맛집 찾아다니고 수다도 떨고 그래요. 가끔 당일치기로 같이 여행도 가고요.

혼자 있을 땐 뭐해요? 책이랑 뮤지컬 좋아해요. 최근에 뮤지컬 <스위니 토드>를 관람했는데, 푹 빠졌어요. 무대의 압도적인 에너지며 웅장한 음악이 실로 엄청났어요. 책은 고전소설 리스트를 만들어서 다시 쭉 읽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전에는 과학 관련 서적을 주로 읽었어요. 신학이나 세계사, 천체 물리 같은 여러 분야랑 엮여 있어서 스토리가 좀 있는 과학책들이요.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는 드라이브를 해요. 저 운전 아주 잘하거든요. 내비게이션 켜지 않고 목적지 없이 그냥 신호가 바뀌는 대로 따라다니는 저만의 드라이브 놀이가 있어요. 아무 생각 안 하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스트레스 확 풀린다니까요. 좌회전 신호가 뜨면 좌회전하고, 녹색등 켜지면 쭉 직진하고요. 그러면 막힘 없이 운전대가 돌아가는데 왠지 속이 시원해져요.

그렇게 돌아다니다 결국 찾는 곳은 어딘가요? 소속사 사무실이요. 업무 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퇴근하면 불을 다 끄거든요. 그때 혼자 사무실에 있는 걸 좋아해요. 원래 소속 아티스트들한테는 사원증을 주지 않는데 제가 유일하게 우리 회사 사원증을 가지고 다니는 배우예요. 혼자 앉아서 책 읽다가 대본도 보고, 스케줄표 정리도 자주 해요. 사무용품, 필기구 같은 거 좋아해서 이것저것 가져다 끄적거리기도 하고요. 밤마다 사무실에서 돌아다녀서 별명이 ‘윤직원’이에요!(웃음) 아, 이런 행동은 너무 엉뚱해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