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유독 많은 영화에 이름을 올린 배우를 꼽으라면 그중에는 류준열이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로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내기 전부터 류준열은 뜨겁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소셜포비아>와 <글로리데이>에서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 영화들 말고도 <섬, 사라진 사람들> <양치기들> <계춘할망>까지 그가 10분이고 20분이고 부지런히 출연한 영화들이 한 해 동안 연이어 개봉했다. 얼마 전에는 조인성, 정우성과 함께 <더 킹> 촬영을 마쳤고, 지금은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와 함께 연기한다. 평범한, 하지만 배우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아온 20대를 지나 이제야 배우의 세계에 들어온 류준열은 좋은 배우란 어떤 배우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으며 내일도 오늘처럼 뜨거운 청춘으로 살아갈 것이다.
한 해 동안 출연한 많은 영화가 개봉했다. <글로리데이>부터 <섬, 사라진 사람들> <양치기들> <로봇, 소리>까지. 그중에는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시절 출연한 작품들도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다. 날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고 함께 애써주는 사람들도 많으니 더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연기하게 된다. 송강호 선배와 촬영 중인 요즘, 혼자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많이 생각난다. <택시운전사> 촬영을 하는 날에는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며 늘 그날 촬영한 부분을 돌아보는데, 그때마다 지금하고 있는 작품과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예전에는 내 배역을 연기하는 데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현장을 좀 더 넓게 보려고 한다. 송강호 선배는 내가 감히 말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배우지만 현장에서 보면 더 놀랍다. 늘 막내 스태프까지 배려하신다.
오디션에 떨어진 적도 있나? 위험한 발언이다.(웃음) 오디션을 볼 때마다 붙을 수 없다. 스무 살에 연기를 배우기 시작해 데뷔하기 전까지 늘 힘들고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다만 긍정적인 성격이라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오디션에 떨어지거나 돈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연기를 전공했다. 스무 살에 찾은 배우라는 꿈에 확신이 들었나? 그럼. 확신이 있었지. 배우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건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연기를 전공하면서 자격증이든 뭐든 보험 삼아 배우가 아닌 다른 먹고 살 길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 누군가 포크레인 자격증을 따라며 부추긴 적도 있다. 그런 대안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그렇게 딴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들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작년에 <글로리데이>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의미가 크다. <소셜포비아>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 갔는데 실은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제나 시상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연말 시상식도 안 봐서 누가 상을 받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다 <소셜포비아>로 동료 배우들을 따라 부산에 갔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영화제 기간에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 아닌가. ‘아 , 세상에 영화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이렇게 영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구나,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소셜포비아>의 DJ 양게를 연기하면서 영화계에 존재감을 알렸다. 여전히 애정이 많이 가는 캐릭터겠다. 맞다. <소셜포비아>는 내 생애 첫 장편영화라 더욱 그렇다. 장편이니 당연히 다른 때보다 촬영 회차도 많았고, 극 전체를 이해하고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처음이었다. 한 장면만으로 이해되는 인물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해야 하는 인물이라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였고, 여러모로 내게 의미 있는 캐릭터다.
<글로리데이>는 불안한 청춘에 대한 영화다. 류준열의 20대는 어떤 모습이었나? 뜨겁게 보낸 것 같다. 요즘은 영화 촬영만 하는데, 촬영이 없는 날인 ‘휴차’라는 게 있어서 드라마 할 때보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다시 백수이던 시절처럼 시간을 꽉 채워 보내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힘들어서 못 하겠다.(웃음) 그래도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다. 요즘 볼링을 치는데, 혼자서도 볼링장에 자주 간다. 누가 연예인들 많이 가는 볼링장을 추천해줬는데 제대로 배우고 싶어 선수들이 가는 곳에 간다. 다니는 볼링장에 가면 동호회 분들도 많이 오신다. 인사도 하고 알은체도 하며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청춘이란 뭘까? 내가 청춘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웃음) 청춘이라는 단어가 좋다. 그 단어가 영원히 나와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늙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라 류준열이라는 늘 사람이 청춘의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류준열의 청춘은 지났나, 오고 있나, 아니면 지금인가?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청춘이다. 그 전에는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며 재미없게 살았다. 하루하루는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배우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에야 뜨겁게 살았다. 그 전에는 미지근한 삶이었다. 공부를 뜨겁게 한 것도 아니고, 놀기를 제대로 논 것도 아니고, 그냥 애매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딱히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마냥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배우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에야 비로소 재미있고 뜨겁게 보내고 있다. 물론 지금도.
한창 연기가 즐거울 때일 것 같다.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알아가고 느껴야하는데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가진 재주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내 몫을 해내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송강호 선배님을 보고 있으면 과연 나도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싶다. 내 안에서 계속 새로운 것이 나와야 하고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더 킹>과 <택시 운전사>를 하며 대선배와 연기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는 난 참 복 받은 배우다. 더 빨리 만났더라면 지금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선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와’ 하는 감탄사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내 속에 많은 감정을 채우고 싶다. 일일이 직접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감정을 다양하게 느껴보려고 애쓴다.
요즘 촬영 중인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시대 배경으로 한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소재일 수 있는데 주저하지는 않았나? 전혀. 오히려 그 당시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싶어 설레었다. 당시에 왜곡된 이야기가 있었다면 실제 이야기를 보여줄 거다. 내가 경험한 시절도 아니고, 내가 느낀 고통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 시대에 관심이 많다. <택시운전사>에 합류할 때도 특별히 그 시대를 공부하지 않았다. 그 전부터 이미 외신에서 보도된 관련 사진과 기사를 충분히 봤다.
<응답하라 1988>로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새 배우의 등장에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환호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좀 잔잔해졌다. 아쉬울 수도 있겠다. 그런 건 없다. 그때도 얼마큼 뜨거웠는지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른다. 그저 한 작품, 한 작품을 열심히 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도 잘 안 한다. 이 작품을 하고 나면 어떤 단계를 밟아서 뭘 하겠다는 계획 같은 것도 없다. 다만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배우의 세계에 들어와서도 바꾸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가치관이 있다면?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좋은 생각과 가치관은 잃고 싶지 않다. 세상엔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게 있지 않은가. 기본적인 선한 가치관에 대해서는 타협하고 싶지 않다. 요즘 이런 건 있다. 내가 원래 남들 눈치도 많이 보고 화도 잘 못 내는 성격인데 그러다 보니 감정을 폭발시켜야 하는 연기를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게임할 때 일부러 더 성질도 많이 부리고 화도 내고 그런다. 혼자 하는 게임이니까 굳이 참을 필요도 없고 누가 보는 것도 아니니까.
좋은 배우에 대한 답은 찾았나? 답을 찾기 위해 배우는 중이다. 좋은 배우와 작업을 하며 보고 느끼고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