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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초에 결혼을 앞둔 김하늘을 만났었다. 영화 <여교사> 포스터 촬영을 막 마친 후였고,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그림은 아직 나오기 전이었다. 크다면 크고,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인생의 변화를 앞두었던 그때보다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지금, 그녀에게서 오히려 더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용기내기보다 주저하는 사랑을 보여준 <공항 가는 길> 의 ‘수아’와 억울하고 상처 많은 인생에 갇혀 있는 <여교사>의 ‘효주’는 현재 일상의 김하늘이 품은 감정의 온도와도 차이가 커 보였다.

“<여교사>를 촬영할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있었어요. 늘 비참하고 비굴하게 살아온 효주와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었죠.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고 언제라도 기댈 곳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용기내어 어둡고 참담한 일상을 살아가는 효주를 지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상의 좋은 에너지가 김하늘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곧 그녀의 또 다른 색깔을 <여교사>에서 보게 된다. 학생들조차 교사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비정규직 교사, 모든 것을 다 가진 학교 이사장의 딸을 향한 질투와 미움,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든 제자와의 치정. 분노와 억눌림, 미움과 억울함의 어둡고 무거운 감정을 담아낸 그녀는 여전히 보여줄 색이 많다.

 

플라워 패턴 레드 재킷, 플라워 패턴 칵테일드레스, 웨이브 디테일의 오픈토슈즈 모두 펜디(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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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변화를 겪은 지난 한 해였다. <공항 가는 길>은 결혼 후 처음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전에 작품 할 때와 달라진 점이 있을 것 같다. 나와 가장 밀접한 환경이 변했으니 뭔가 변했을 것 같기는 하다. 연기가 드라마틱하게 변한 건 아니지만 <공항 가는 길>에서 연기가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연기라는 게 사실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날씨의 영향도 받는데 결혼이라는 큰 변화가 있었으니 아무래도 달라졌겠지. 다행스러운 건 결혼이 내 연기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여교사> 개봉 일정으로 다시 바빠지겠다. <공항가는 길>을 마치고 바로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그 뒤에는 집에 쓰러져 있다시피 했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운동을 꾸준히 했는데 운동은커녕 피부 관리도 못 할 만큼 피곤하더라. 잠이 간절했던 터라 푹 쉬려고 했다. 이번 드라마는 작가님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분이어서 그런지 다른 드라마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감독님과의 합도 좋았다. 분량이 많아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의상이나 음악까지 다 잘 나온 것 같아 뿌듯하다.

 

집업 드레스 펜디(Fendi), 선글라스 펜디 바이 사필로(Fendi by Safilo).

집업 드레스 펜디(Fendi), 선글라스 펜디 바이 사필로(Fendi by Safilo).

<여교사>는 김하늘이 그동안 만들어온 이미지와 결이 전혀 다른 인물을 연기한 작품이다. 도전에 가까운 선택이 아닌가. 늘 도전해왔다. 멜로드라마인 <바이 준>으로 시작해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선택한 것도 도전이었고 <온에어>나 액션물인 <7급 공무원>, 시각장애인을 연기한 <블라인드> 모두 그랬다. <공항 가는 길>도 장르상으로는 멜로지만 여주인공은 자칫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여교사>는 그중에서도 큰 도전이기는 하다. 작품을 할 때마다 ‘변신’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조심스러운데 이번에는 진짜 변신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교사>에서 내가 연기한 효주는 캐릭터가 확실하다. 매우 디테일하고 감정이 깊고 오묘한데 장면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영화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배우로서 욕심나는 캐릭터였다. 그간 제안받은 작품 중에 가장 다른 느낌이었다.

작품을 제안받고 선뜻 출연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효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기분이 몹시 나빴다. 자존심 상하고 비참하고 비굴하고. 살면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덮고 나니 자꾸 여운이 남더라. 작품을 하기로 마음먹고 감독님, 피디님, 제작사 대표님이 모이는 미팅 자리에 갔는데 그때까지도 어쩐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생각이 덜 정리된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라 여러 고민이 밀려왔다. 하지만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여자의 심리가 잘 표현되었고 여자로서 김태용 감독님과 효주의 심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도 굉장히 즐거웠다. 감독님의 나에 대한 믿음도 큰 힘이 되었다.

 

버버리 트렌치코트

레오퍼드 프린트 슬리브 개버딘 트렌치코트, 안에 입은 러플 칼라 코튼 튈 셔츠, 태슬 장식 가죽 아미 부츠, 러플 버클 백 모두 버버리(Burberry).

오버 사이즈 울 코트, 러플 핀스트라이프 코튼 셔츠, 플로럴 실크 파자마 스타일 쇼츠, 스네이크 스킨 컷아웃 플랫폼 부츠 모두 버버리(Bur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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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감독과 작업했다. 그런 면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김태용 감독의 전작인 <거인>을 좋게 봤다. 특히 영화에 나오는 모든 배우의 연기가 좋았는데 그 역시 연출의 힘인 것 같다. 그래서 더 감독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여교사>는 <거인>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거인>이 날것의 느낌이라면 <여교사>는 좀 더 매끈하다고 할까? 감독님에게 나를 캐스팅한 이유를 물었더니 그간 출연한 작품에서 밝고 긍정적인 느낌 뒤에 숨어 있는 짓눌린 느낌을 발견했다고 했다.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나조차 효주에게서 김하늘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은 내가 그간 해온 작품들 속 찰나의 순간에 드러난 느낌을 보고 효주를 찾아낸 것이다. 신기했고 고마웠다.

억울하고 짓눌린 캐릭터를 연기하면 감정의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 촬영에 들어가면 많이 예민해졌다. 감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해야 했고 그 감정 중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집중하다 보니 날카로워졌고 촬영이 끝나면 지쳤다. 그래도 끝까지 잘해낼 수 있었던 건 실제로 내가 처한 현실이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던 때라 더 안정적이기도 했다. 배우마다 작품에 들어가면 반응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난 일상의 나와 작품의 내가 분리되어 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일상에서도 그 캐릭터가 되려고 했다. 감정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작품 분위기에 맞는 음악만 듣고, 옷 입는 스타일도 작품 속 인물에 맞추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카메라 앞에서 빠르게 몰입하고 촬영이 끝나면 잘 빠져나와야 지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여교사>는 그런 면이 더 필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웨이브 디테일의 니트 톱, 웨이브 프린트의 퀼로트 모두 펜디(Fendi).

웨이브 디테일의 니트 톱, 웨이브 프린트의 퀼로트 모두 펜디(Fendi).

교사, 제자, 사랑. 이 키워드만 두고 보면 드라마 <로망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이 전혀 다른 작품이기에 배우로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있을 것 같다. 배우로서 그때의 김하늘과 지금의 김하늘은 달라졌나? 많이 달라졌다. 그때 만약 <여교사>를 만났더라면 전혀 다른 영화가 완성됐겠지. <로망스>의 김하늘은 덜 익은 사과 같았다. 덜 익어서 단맛도 있지만 쓴맛도 있고, 덜 여물었기에 오히려 신선한 느낌. 지금은 그때보다 농익었겠지.

지금껏 배우로 살아오며 깨지 못한 자신의 한계는 뭔가? 소리, 가슴, 머리가 모두 다 열리는 연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공항 가는 길>만 하더라도 감정을 참고 참아야 하는 연기를 했다. 그래서 내레이션이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좀 더 감정을 강하게 폭발시키고 자유로운 연기를 해보고 싶다.

10년 후의 김하늘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까지 잘 걸어갔으면 좋겠다. 배우로서 너무 멋진 윤여정 선생님처럼.

죽을 때까지 연기할 거라는 확신이 드나? 그건 잘 모르겠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런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연기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다만 지금껏 지루한 순간은 없었다. 긴 시간 배우로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연기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흔들릴 일이 없다. 여전히 연기하는 순간이 좋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 인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난다. 글로 설명된 캐릭터를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과정도 즐겁다. 누군가는 김하늘이란 배우에게서 늘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아마도 흥행작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나는 지루한 것에 질리는 타입이다. 늘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다.

 

니트 톱 펜디(Fendi), 선글라스 펜디 바이 사필로(Fendi by Safilo).

니트 톱 펜디(Fendi), 선글라스 펜디 바이 사필로(Fendi by Safilo).

오프숄더 블라우스, 와이드 팬츠,스트로 바게트 백, 보태닉 가든 패턴의 오픈토 슈즈 모두 펜디(Fendi).

오프숄더 블라우스, 와이드 팬츠,스트로 바게트 백, 보태닉 가든 패턴의 오픈토 슈즈 모두 펜디(Fendi).

 

마지막 질문이다. 1월호 인터뷰니까, 2017년의 계획을 듣고 싶다. 2016년은 개인적으로 꽉 찬 한 해였다. 새해에는 좀 더 쉬면서 보내지 않을까?

그거 아나? 결혼 전에 만났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아 보인다. 음, 좋다.(웃음) 정말.

 

보태니컬 가든 프린트 오프숄더 점프수트, 웨이브 디테일의 오픈토 슈즈 모두 펜디(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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