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지 인터뷰 김정현 서현 드라마 시간

화이트 실크 블라우스와 옐로 와이드 팬츠 모두 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 스퀘어 이어링 제이미 앤 벨(Jamie & Bell)

서예지 인터뷰 김정현 서현 드라마 시간

오렌지 퍼프소매 니트 풀오버 디올(Dior), 이어링 제이미 앤 벨(Jamie & Bell)

서예지 인터뷰 김정현 서현 드라마 시간

그린 프릴 원피스 에스이콜와이지(S=YZ)

 

매달 예쁜 사람을 보지만, 참 예쁘다. 아이돌이었으면 단연 센터다. 하하. 아이돌 진짜 대단하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예쁜지 충분히 알고, 어떤 방법으로 보여줘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나. 한데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아이돌은 못 될 것 같다. 성격이···.

성격이? 안 그래도 주변에서 상남자라고 하던데···.같이 작품을 한 남자 동료들이 그렇게 불렀다. 내가 오빠 소리를 못한다. 실제 나이가 많은 오빠라고 하더라도 누구누구 씨 하고 부르는 어감이 더 좋다. 친해지면 극 중 이름을 부르며 털털하게 행동한다. 워낙 애교가 없기도 하고, 감독님이나 선배님들의 팔짱을 끼거나 껴안으면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한 탓에 더 그런 것 같다.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영화 <다른 길이 있다> 언론 시사회가 있다. 기분이 어떤가? 편집본부터 지금까지 이 영화를 여덟 번은 봤는데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같이 출연한 (김)재욱 씨는 지겹지도 않느냐고 묻는데 편집마다 미세하게 변하는 느낌을 보는 게 참 좋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편집본이 거듭될수록 영화가 품은 우울한 정서가 덜어지고 조금 더 희망적으로 변했다. 그 점이 좋아서 조창호 감독님께 어떻게 된 건지 여쭤봤는데 영업 비밀이라고 하시더라. 사실 2014년 말에 촬영한 작품이라 개봉을 못 할 줄 알았다. 최근 다시 영화를 보는데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체험을 했다. 추운 겨울에 촬영했는데 당시의 냉기가 떠오르고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다.

우울함이 되살아난 건 작품의 톤 때문인가? 작품이 지닌 정서와 당시 내 안의 우울감이 절반씩 섞인 것 같다. 심리적으로 우울했다기보다 차분함에 가까운 우울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마냥 즐거워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건 지금도 같은 생각인데, 주변 분위기에 한번 휩쓸리면 공중에 떠 있기 쉬운 직업 같다. 그 시기에는 바닥에 단단히 발을 붙인 채 가라앉으려고 의식적으로 나를 다잡았다.

2012년 <감자별 2013QR3>으로 크게 주목받은 뒤 선택한 작품인데 어떻게 저예산 독립영화에 참여할 생각을 했나? <감자별 2013QR3>은 김병욱이라는 워낙 유능한 감독님께 캐스팅됐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배우겠다는 각오로 참여한 작품이다. 귀한 경험이었고, 이후부터는 내 성향과 감정에 맞는 작품들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지하고 무거운 작품들을 해왔던 것 같다.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사도>와 <다른 길이 있다>다. <다른 길이 있다>의 ‘정원’은 죽기 위해 계속 여행을 다니는 아이다. 작품을 하면서 죽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겪는 고통의 질량은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을 했다. 고통의 원인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크기를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견줄 수 없는 것 같다.

촬영 전후의 개인적인 변화도 컸을 것 같다. 저예산 영화이고 독립영화라고 해서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창호 감독님의 예술성을 더 사랑하게 됐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매번 감탄한 현장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스턴트 없이 직접 운전하며 극단의 연기를 하는 등 어느 정도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근데 이조차 말할 수 없이 좋고 설레었다. 촬영하면서 작은 것까지 각자의 힘으로 만드는 우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희열을 느꼈다. 이런 희열을 맛본 이상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도 계속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이 정도로 영화와 영화 현장을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다. 며칠 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영화 <업 포 러브>의 스틸 이미지를 올렸다. <업 포 러브>는 키136cm의 남자와 176cm의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흔들리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았다. 인상적인 장면이 갈등하는 여주인공에게 그녀의 비서가 “겉으로는 그가 작아 보일지 몰라도 정작 난쟁이인 건 당신의 감정이다”라고 일침을 놓는 신이다. 살면서 내 감정은 얼마나 난쟁이었나. 어떤 때는 거인이었고, 또 난쟁이 었나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그 이후에는 <라라랜드>를 봤다.

 

서예지 인터뷰 김정현 서현 드라마 시간

화이트 플리츠 터틀넥, 골드 지퍼 장식 스커트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크리스털 이어링 더퀸라운지(THE QUEEN Lounge)

서예지 김정현 서현 드라마 시간

베이지 니트 프릴 원피스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 골드 이어링 미드나잇모먼트(Midnight Moment)

 

로맨틱 장르를 좋아하나?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사랑을 하고 싶은 건지···. 이전까지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던 것 같다. 연애는 늘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마음이 조금 열렸다. 로맨틱한 영화에서 남녀가 사랑하는 눈빛, 특히 키스하기 전 나누는 눈빛을 보면 설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마음을 더 열어야 한다.

배우 서예지에게 지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에게 나를 좀 더 드러내는 일. 아무리 친한 사람 앞이라 해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흔히 연기할 때 ‘너를 버려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나를 버리나. 내가 난데. 그게 어렵다면 나는 그대로 있고, 버리지 말고 온전히 드러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완벽히 드러내 온전히 연기에 쏟아보고 싶은 게 올해의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해 믿는 부분은 무엇인가?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다는 점. 감독님들을 비롯해 누구를 만나든 메이크업을 절대 안 한다. 이건 내 자부심이기도 하다. 치장하고 갖춘 모습도 좋지만 작품이나 연기와 관련한 미팅에서는 온전히 나를 보여주고 싶지 무엇으로든 가리고 싶지 않다. 메이크업이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단단한 사람 같다. 친구가 몇 없다. 애늙은이라서. (웃음) 이순재, 김미경 선생님 등 지인의 평균 나이가 50대가 넘는다. 그래서 시사회나 행사 등 동료를 초대할 자리가 있어도 다 선생님들만 초대하게 된다. 이분들과 아주 잘 맞는다.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결혼도 안 했는데 해본 것 같고.(웃음)

타고나길 단단한 사람도 배우라는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상 수많은 평가와 소문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 주로 무엇을 하나? 파주 같이 탁 트인 곳으로 간다. 그러고는 카페 구석에 앉아 계속 생각한다. 계속. 기분 전환을 위해 클럽에 가는 타입도 아니다. 태어나서 클럽을 단 한 번도 안 가봤다. 어떻게 놀아야 재미있는지, 잘 노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혼자 있으면 참 외로운데, 이상하게 참 좋다. 나를 다잡고 싶을 때는 불 다 꺼놓고 영화를 본다.

주로 어떤 영화를 보나? <오펀: 천사의 비밀>은 스무 번은 본 것 같다. 자움 콜렛 세라 감독의 연출부터 주인공 이사벨 퍼먼의 연기까지 완전히 매료됐다. 유학 갈 때 외장하드에 담아서 가져갔을 정도로 좋아한다. 나를 다잡는 영화가…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라니(웃음) <악마를 보았다>는 일곱 번 봤다. 최민식, 이병헌 선배님의 감정 연기는 단연 최고다.

한데 배우들의 일상은 왜 이렇게 단조롭나. 왜 다들 이렇다 할 게 없나? 나도 잘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이만큼 화려해 보이는 직업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안은 누구보다 멀멀하다. 심심함을 느끼면서도 이 심심함을 유지하려 고 애쓰는 내 모습이 나도 좀 이상하다.(웃음) 가족들이랑 스키장에 가도 리프트 타고 올라가서 커피 마시는 게 스키 타는 것보다 더 좋다. 그래도 동남아시아는 다 돌아보고 싶다. 따뜻한 곳에서 열대 과일을 먹을 거다.

어떤 배우,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지치지 않는 배우. 나이가 들면 체력적으로 지칠 수 있겠지만 생각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잔소리나 훈계하는 이가 아니라 은근하게 자신의 생각과 지혜를 나누는 그런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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