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예쁜 사람을 보지만, 참 예쁘다. 아이돌이었으면 단연 센터다. 하하. 아이돌 진짜 대단하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예쁜지 충분히 알고, 어떤 방법으로 보여줘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나. 한데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아이돌은 못 될 것 같다. 성격이···.
성격이? 안 그래도 주변에서 상남자라고 하던데···.같이 작품을 한 남자 동료들이 그렇게 불렀다. 내가 오빠 소리를 못한다. 실제 나이가 많은 오빠라고 하더라도 누구누구 씨 하고 부르는 어감이 더 좋다. 친해지면 극 중 이름을 부르며 털털하게 행동한다. 워낙 애교가 없기도 하고, 감독님이나 선배님들의 팔짱을 끼거나 껴안으면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한 탓에 더 그런 것 같다.
오늘 인터뷰를 마치고 영화 <다른 길이 있다> 언론 시사회가 있다. 기분이 어떤가? 편집본부터 지금까지 이 영화를 여덟 번은 봤는데 볼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같이 출연한 (김)재욱 씨는 지겹지도 않느냐고 묻는데 편집마다 미세하게 변하는 느낌을 보는 게 참 좋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편집본이 거듭될수록 영화가 품은 우울한 정서가 덜어지고 조금 더 희망적으로 변했다. 그 점이 좋아서 조창호 감독님께 어떻게 된 건지 여쭤봤는데 영업 비밀이라고 하시더라. 사실 2014년 말에 촬영한 작품이라 개봉을 못 할 줄 알았다. 최근 다시 영화를 보는데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체험을 했다. 추운 겨울에 촬영했는데 당시의 냉기가 떠오르고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면서 조금 우울해지기도 했다.
우울함이 되살아난 건 작품의 톤 때문인가? 작품이 지닌 정서와 당시 내 안의 우울감이 절반씩 섞인 것 같다. 심리적으로 우울했다기보다 차분함에 가까운 우울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마냥 즐거워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건 지금도 같은 생각인데, 주변 분위기에 한번 휩쓸리면 공중에 떠 있기 쉬운 직업 같다. 그 시기에는 바닥에 단단히 발을 붙인 채 가라앉으려고 의식적으로 나를 다잡았다.
2012년 <감자별 2013QR3>으로 크게 주목받은 뒤 선택한 작품인데 어떻게 저예산 독립영화에 참여할 생각을 했나? <감자별 2013QR3>은 김병욱이라는 워낙 유능한 감독님께 캐스팅됐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배우겠다는 각오로 참여한 작품이다. 귀한 경험이었고, 이후부터는 내 성향과 감정에 맞는 작품들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지하고 무거운 작품들을 해왔던 것 같다.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사도>와 <다른 길이 있다>다. <다른 길이 있다>의 ‘정원’은 죽기 위해 계속 여행을 다니는 아이다. 작품을 하면서 죽음까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겪는 고통의 질량은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을 했다. 고통의 원인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그 크기를 다른 이와 비교하거나 견줄 수 없는 것 같다.
촬영 전후의 개인적인 변화도 컸을 것 같다. 저예산 영화이고 독립영화라고 해서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창호 감독님의 예술성을 더 사랑하게 됐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매번 감탄한 현장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때로는 스턴트 없이 직접 운전하며 극단의 연기를 하는 등 어느 정도의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근데 이조차 말할 수 없이 좋고 설레었다. 촬영하면서 작은 것까지 각자의 힘으로 만드는 우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희열을 느꼈다. 이런 희열을 맛본 이상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도 계속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이 정도로 영화와 영화 현장을 좋아하는지 미처 몰랐다. 며칠 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영화 <업 포 러브>의 스틸 이미지를 올렸다. <업 포 러브>는 키136cm의 남자와 176cm의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사회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흔들리는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았다. 인상적인 장면이 갈등하는 여주인공에게 그녀의 비서가 “겉으로는 그가 작아 보일지 몰라도 정작 난쟁이인 건 당신의 감정이다”라고 일침을 놓는 신이다. 살면서 내 감정은 얼마나 난쟁이었나. 어떤 때는 거인이었고, 또 난쟁이 었나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그 이후에는 <라라랜드>를 봤다.
로맨틱 장르를 좋아하나?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사랑을 하고 싶은 건지···. 이전까지는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던 것 같다. 연애는 늘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마음이 조금 열렸다. 로맨틱한 영화에서 남녀가 사랑하는 눈빛, 특히 키스하기 전 나누는 눈빛을 보면 설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마음을 더 열어야 한다.
배우 서예지에게 지금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에게 나를 좀 더 드러내는 일. 아무리 친한 사람 앞이라 해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흔히 연기할 때 ‘너를 버려보라’고 하는데 어떻게 나를 버리나. 내가 난데. 그게 어렵다면 나는 그대로 있고, 버리지 말고 온전히 드러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완벽히 드러내 온전히 연기에 쏟아보고 싶은 게 올해의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해 믿는 부분은 무엇인가?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다는 점. 감독님들을 비롯해 누구를 만나든 메이크업을 절대 안 한다. 이건 내 자부심이기도 하다. 치장하고 갖춘 모습도 좋지만 작품이나 연기와 관련한 미팅에서는 온전히 나를 보여주고 싶지 무엇으로든 가리고 싶지 않다. 메이크업이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단단한 사람 같다. 친구가 몇 없다. 애늙은이라서. (웃음) 이순재, 김미경 선생님 등 지인의 평균 나이가 50대가 넘는다. 그래서 시사회나 행사 등 동료를 초대할 자리가 있어도 다 선생님들만 초대하게 된다. 이분들과 아주 잘 맞는다.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결혼도 안 했는데 해본 것 같고.(웃음)
타고나길 단단한 사람도 배우라는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이상 수많은 평가와 소문에 흔들리기 마련이다. 자신을 다잡기 위해 주로 무엇을 하나? 파주 같이 탁 트인 곳으로 간다. 그러고는 카페 구석에 앉아 계속 생각한다. 계속. 기분 전환을 위해 클럽에 가는 타입도 아니다. 태어나서 클럽을 단 한 번도 안 가봤다. 어떻게 놀아야 재미있는지, 잘 노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혼자 있으면 참 외로운데, 이상하게 참 좋다. 나를 다잡고 싶을 때는 불 다 꺼놓고 영화를 본다.
주로 어떤 영화를 보나? <오펀: 천사의 비밀>은 스무 번은 본 것 같다. 자움 콜렛 세라 감독의 연출부터 주인공 이사벨 퍼먼의 연기까지 완전히 매료됐다. 유학 갈 때 외장하드에 담아서 가져갔을 정도로 좋아한다. 나를 다잡는 영화가…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라니(웃음) <악마를 보았다>는 일곱 번 봤다. 최민식, 이병헌 선배님의 감정 연기는 단연 최고다.
한데 배우들의 일상은 왜 이렇게 단조롭나. 왜 다들 이렇다 할 게 없나? 나도 잘 모르겠다. 겉으로 보면 이만큼 화려해 보이는 직업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안은 누구보다 멀멀하다. 심심함을 느끼면서도 이 심심함을 유지하려 고 애쓰는 내 모습이 나도 좀 이상하다.(웃음) 가족들이랑 스키장에 가도 리프트 타고 올라가서 커피 마시는 게 스키 타는 것보다 더 좋다. 그래도 동남아시아는 다 돌아보고 싶다. 따뜻한 곳에서 열대 과일을 먹을 거다.
어떤 배우,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지치지 않는 배우. 나이가 들면 체력적으로 지칠 수 있겠지만 생각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잔소리나 훈계하는 이가 아니라 은근하게 자신의 생각과 지혜를 나누는 그런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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