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엄지원 하면 그 특유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먼저 떠올렸다.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를 보기 전까지 그랬다. 오랫동안 쌓아온 이미지를 자신의 의지로 전복시켜버린 <미씽> 속 그 녀는 강하고 멋있는 여성이었다. 소중한 존재를 잃고 광기에 가까운 추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동시대 여성의 비극을 목도하는 뜨거운 이야기의 주체자로서 그녀는 단 한순간도 집중력과 지구력을 잃지 않았다. 그간 한국 영화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증과 남성 중심 영화에 대한 짙은 피로감이 그 두 시간 동안만은 완전히 해소됐다고 느꼈던 건 엄지원이라는 좋은 배우의 내공 덕분일 터다. 그런 그녀가 올 여름 SBS 새 월화드라마 <조작>의 열혈 검사 ‘권소라’로 분한다. 여성 검사가 두 명의 남성 기자 한무영(남궁민), 이석민(유준상)과 함께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이 이야기는 <추적자> <펀치> 등 사회성 짙은 웰메이드 드라마를 내놓은 SBS 사회파 드라마의 계보를 이을 하반기 기대작이다. 지금껏 ‘남자 이야기’로만 그려지던 정치, 언론의 세계에 그녀가 합류했다는 소식이 유독 반갑다. 저돌적으로 연기하는 남자 배우들의 에너지에 밀리는 법 없이 능란함과 강인함을 지닌 전문직 종사자 고유의 분위기를 풀어낼 배우 엄지원만의 힘을 기대한다.
헤라 익셉셔널 오 드 퍼퓸
새벽과 저녁의 상반된 아름다움을 표현한 헤라 ‘익셉셔널 오 드 퍼퓸’. 뱀부 워터, 제주 만다린, 재스민 티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스파클링 시트러스 노트로 시작해 매화 향기를 중심으로 재스민 삼박, 오렌지 플라워, 로즈버드, 일랑일랑이 어우러진 플라워 부케의 하모니가 펼쳐지는 미들 노트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샌들우드, 오리스, 화이트 머스크가 어우러진 관능적이고 중독적인 향이 여운을 남긴다. 새벽을 연상시키는 그러데이션된 퍼플 컬러에 다이아몬드 커팅 디테일과 골드빛 테두리, 블랙 마개가 어우러진 보틀 또한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새 드라마 <조작>의 이야기로 안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4년 만의 드라마다. 영화로 데뷔해서인지 영화 촬영할 때 느끼는 기쁨이 더 크고, 내 성향도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도 좋지만 영화 현장이 더 재미있지’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드라마를 또 하고 싶다, 또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좋다.
좋은 스태프들과 함께하고 있나 보다. 감독 데뷔작에, 신인 작가의 대본 이라고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작품이 재미있고 완성도가 높다. 많은 감독들과 일해왔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아주 똑똑한 감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홍보를 위해 하는 말은 아닌가?(웃음) 홍보 기간이라 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냥 ‘열심히 촬영하고 있어요’라고 했겠지. 내 역할, 내 이야기만 하지 다른 사람까지 거론하지는 않았을 거다. 진심이다.(웃음)
영화 <미씽> 이후 차기작으로는 행복한 코미디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드라마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그 바람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이 다음 작품을 코미디로 정했기 때문에 엄연히 실패는 아니다. <미씽>에서 감정을 너무 썼기 때문에 그런 농담이자 진담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처럼 지적인 작품을 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배우에겐 큰 행복이다. 전문직군의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은 항상 있다. 그런 점에서 <조작>은 한 인물을 직업적인 앵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흥미롭게 접근하고 있다.
드라마 <싸인>에서 검사 역을 맡기도 했다. 이밖에 형사, 판사, 의사도 하지 않았나. 유독 전문직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 반은 허당인데···.(웃음) 준비는 철저히 한다. 드라마 <싸인>에서 검사 역을 처음 맡았을 때는 영화를 준비할 때처럼 여성 검사님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서울지검에 가서 부장검사 분들과 점심도 먹고 현장도 봤다. 검사라는 직업을 준비했던 그 기간 덕분에 이번 작품은 조금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권소라는 어떤 인물인가? 원칙주의자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목표를 정하면 돌진하는 성향, 욱하는 성격 탓에 타인과 부딪히는 일도 잦다.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할 때 ‘왜’라는 목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초반에는 소라가 왜 이렇게까지 원칙을 지키며 거칠게 돌진하는 걸까, 검사라는 직업이 무엇이길래 목숨을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데 검사선언문이 도움이 됐다.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검사에게도 검사선언문이 있는데 이 선언문 속 문장들이 울림이 있다. 검사라는 직업은 공동체와 약자를 지키고 대변해야 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더라. 소라가 주위의 압력에 맞서 끝까지 사건을 책임지려는 이유와 명분이 그 문장들 속에 있었다. 이 사명감이 권소라라는 인물의 동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고, 그러자 그녀가 더 좋아졌다.
영화 <소원>이나 <미씽>을 거치며 배우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관심을 두는 것 같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조작>에도 ‘성완종 리스트’를 비롯해 실제 사회적 이슈가 연상되는 일련의 사건이 있다. 배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 사회운동가는 아니기 때문에 매 순간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연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배우로서 그만큼 값진 일은 없는듯하다.
개인적으로 영화 <비밀은 없다>와 <미씽>을 2016년의 영화라고 꼽는 이유는 여성 감독, 여성 배우에 대한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 만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늘 품고 있을 것 같다. (손)예진이를 비롯해 여성 동료들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한국 영화계는 물론 할리 우드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여성 배우가 직접 제작사를 차려 원하는 방향의 작품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지 않나. 우리 역시 시장의 흐름 안에서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고, 후배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 걸까. 비교적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맡아왔다. 전혀 그렇지 않다. 주로 수동적인 역할이 주어졌었다. 작품에 임하면서 수동적인 캐릭터가 주도적인 인물이 될 수 있게끔 바꿔왔다. 감독님과 대화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신을 새로 만들어보는 등 천편일률적으로 그려진 여성 캐릭터에 힘을 싣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간 내가 맡은 역할이 주체적인 인물로 비쳐졌다면 배우로서 기쁜 칭찬이다.
<미씽> 개봉 당시 남성 중심의 영화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젠더 이슈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활동한 지 꽤 됐고 나 같은 배우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어린 배우들은 조심스러울 것이고, 아직은 크게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계속해서 화두를 던지다 보면 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이들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지금 엄지원이라는 배우가 이 말을 하는 것이 그래도 밉지는 않겠다,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의견을 이야기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배우 엄지원 하면 안정적이고 성숙한 배우라는 인상이 있다. 그 바탕에는 탄탄히 쌓아온 일상의 내공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일상을 잘 돌보는 것.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이다 보니 나 자신이 단단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데이지가 크더라.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상한 괴리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현실이 가짜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다. 작품 역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가. 사건과 인물 모두 허구인데 이 가짜를 진짜라고 믿으며 그 이상으로 연기해내는 이 직업 자체에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니 내 삶이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즐겁고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물론 타고난 성격 덕도 있지만, 신앙이 중심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남편 오영욱 건축가와 함께 ‘우연한 배낭여행’이라는 청년 여행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지원하고 있다. 환경이나 경제적 어려움 탓에 여행을 할 수 없는 젊은 친구들에게 여행을 선물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최근 네 번째 팀이 꾸려졌다. 고생은 남편이 다 하고 나는 돈만 낸다.(웃음) 한 달간의 여행은 물론 여권 사진 촬영부터 비행기 티켓 예약, 배낭 구입 등 모든 준비 과정에 남편이 함께한다. 약 5개월간 준비해 대학생들의 방학인 1~2월에 함께 여행을 떠난다. 사실 타인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가질 수 있는 모든 베니핏을 포기한다는 거니까. 그런데도 기꺼이 즐겁게 하고 있는 건 가장 재미있는 것을 나누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여행이었고, 여행을 통한 성장의 크기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걸 선물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10년을 채우는 게 목표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오래 연기하고 싶다. 예순이 넘고도 연기 하는 고령의 배우가 되고 싶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재미있게 봤는데 예진이가 우리도 나중에 이런 작품 다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30~40년간 인생을 함께 지나온,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아는 동료들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날이 오면 단체 인터뷰를 하자. 좋다. 꼭 다시 보자. 지치지 말고, 오래 오래,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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