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재킷과 팬츠 모두 생 로랑 바이 무이(Saint Laurent by MUE),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터틀넥 스웨터 질샌더(Jil Sander), 팬츠 생 로랑 바이 무이(Saint Laurent by MUE), 슈즈 알든(Alden).

약혼녀가 살해당한 남자. 약혼녀의 살인 피의자로 지목된 그 남자의 딸. 피해자의 열성 팬인 다른 남자. 정지우 감독의 신작 <침묵>에서 류준열은 사건의 열쇠를 쥔 열성 팬 ‘동명’을 연기한다. <더 킹>의 ‘두일’을 시작으로 순박해서 그날의 일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던 <택시운전사>의 ‘재식’과 집착과 순정이라는 상반되는 동시에 일맥상통하는 마음을 지닌 인물 ‘동명’ 그리고 3년에 걸친 프로젝트인 <리틀 포레스트>, 여기에 얼마 전 크랭크업한 <돈>과 촬영 중인 <독전>까지.

류준열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숨 가쁜 속도로 쉬지 않고 연기하고 있다.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제각각 다르고,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되는 감독의 차기작과 신인 감독의 첫 작품, 드라마와 장르영화까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선택의 기준을 짐작할 수 없는 다양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고 있다. “언젠가 경력이 아주 많이 쌓였을 때에도 저를 수식하는 일관된 색깔은 없으면 좋겠어요. 이런 작품도 하고 저런 작품도 해서 다음 작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최근에 인터뷰한 것이 1년 전쯤인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 작품인 <침묵>이 개봉한다. <침묵>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았나? 이하늬 선배가 연기한 ‘유나’의 지나친 열성 팬, 동명이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순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행동 자체가 순수하다기보다는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앞뒤 재지 않고 실행한다는 면에서 순수하다.

정지우 감독과 작업하는 건 어땠나? 정지우 감독님은 배우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그 생각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신다. 감독님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감독님이 원래 그린 그림에 잘 융화되도록 해주신다. 촬영하는 내내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는 일이 즐거웠고, 현장에서 그런 소통이 반영되어 만들어지는 번뜩이는 장면들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배우 송강호에 이어 최민식까지 연이어 대선배들과 작업했다. 당연히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다. 선배들의 좋은 점을 조금씩 배우다 보면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최민식 선배는 형 같은 분이다. 현장에서 오롯이 연기만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덕분에 함께 연기하는 장면에서는 선배와 후배가 아닌 동료가 되어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오래전에 SNS에 ‘범 대 범’이라는 제목으로 최민식 배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지 않나. 선배와 나 모두 호랑이띠다. 그 사진을 찍은 날이 선배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그 전에는 시사회 때 잠깐 인사드린 것이 전부였다. 그날 처음 만났는데도 대화를 엄청 많이 나눴다.

출연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은데 <침묵>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최민식 선배도 있었겠다. 물론이다. 나 역시 배우를 꿈꾸기 전부터 선배의 연기를 보고 자랐고, 최민식 선배는 젊은 배우라면 누구나 함께 연기하고 싶어 하는 배우일 것이다.

나 홀로 돋보이는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아마도 자기 혼자 돋보이기 위해 연기하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무대에서 뒤로 갈수록 잘 보인다는 말이 있다. 치기 어린 마음에 앞으로 나오려고만 하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다. 작품에서 나 혼자 튀는 건 좋은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작품 속에 잘 섞여 있고 싶다. 잘 섞여서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연기하겠다는 생각은 지금껏 한 적이 없다. 다만 내게 주어진 몫을 잘해내고 싶다. 역할의 경중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더 킹>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택시운전사>는 올해의 첫 천만 관객 영화다. 지금껏 큰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미래가 두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다 잘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나. 반대로 뭐든지 안되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실패를 맞닥뜨리겠지. 하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생각한다. 괜히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연기를 계속 잘해내고 싶은 생각은 물론 있다. 그런데 연기라는 건 잘해보겠다고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외국어 공부를 하듯 단어를 외울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연기란 계속해서 배우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어릴 때 그런 걸로 많이 혼났다. 부모님이 ‘공부 다 했어?’라고 물었을 때 다 했다고 답하면 ‘다 한 게 어디 있느냐고’ 혼났다. 그 뒤론 ‘다 했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아직까지 같은 감독님과 두 번 작업해 본 적 없고 모든 이야기의 색은 다르며 연기하는 상대 배우도 다르니 매번 새롭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스웨이드 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 슈즈 알든(Alden).
스웨이드 재킷 김서룡 옴므(Kimseoryong Homme),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
니트 스웨터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작품을 선택할 때 일관된 기준이 있나? 시나리오가 재미있으면 끌린다. 그런데 아직 류준열의 스타일이 뭐라고 단정 짓기에는 내 연기 경력이 너무 짧다. 이제 막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으니 작품을 고르는 기준에 대해 거창하게 말할 단계는 아니다.

오늘 유독 대답들이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들린다.(웃음) 내 주변에는 장점을 얘기해주는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가 보다.(웃음) 내가 원래 주변에서 잘한다고 응원해주면 더 잘하는 성향이긴 한데,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의 좋은 평가만을 믿고 연기하면 안되지 않나. 오늘 화보 촬영만 해도 그렇다. 계속 멋지다, 좋다고 말해주는데 스태프나 사진가들의 노력과 능력에 비해 내가 못 따라가지 않았나 싶다. 실은 오랜만에 화보를 촬영하는 거라서 아침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과했나 보다.(웃음)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담금질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단련해야지.

작품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이토록 바쁜 요즘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나? 첫 인터뷰 때는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했었다. 여전히 일기를 쓰는 날도 있고, 요즘은 주로 책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즘 읽는 책은 여러 명의 집을 보여주는 책인데,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은 무엇이며,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공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과 취향 등이 담겨 있다. 책을 보고 있으면 잠이 잘 온다. 그런데 ‘책 좀 볼까’ 하는 마음이 들 때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때다.

바쁜 와중에 잊지 않고 챙기는 것이 있다면? 나만의 시간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 내 시간을 가지려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촬영을 마치면 잠을 자고 쉬기 바쁜데, 그 시간을 쪼개어 내 시간을 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또 남는 시간을 쉬는 데 다 써버리면 그야말로 일만 하게 된다.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하려고 애쓴다. 축구도 하고, 다른 운동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친구들과 게임을 많이 하거든. 다트나 보드게임 같은 거. 피곤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미루기 시작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만날 수가 없다. 그럼 자연스레 멀어지지 않겠나. 그렇게 일상을 확보하지 않으면 금방 지쳐버릴 것 같다.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하고 있으니 분명 행복한 일인데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연기하고 오늘처럼 화보를 촬영하는 게 무척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만 하면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소중한 일도 그것만 하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빠서 그런지 SNS도 아주 가끔 업데이트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고민해서 짤막한 글귀도 쓰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다. 대신 사진을 찍는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순간이나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 얼마 전에 팬들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았는데 그 카메라로 좋은 사진을 찍어 팬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여행.

그래도 쉬지 않고 작품을 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 좋은 일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오랜만에 인터뷰하는 것도 하고 싶은 연기를 하는 것도 날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모두. 촬영장도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거창한 마음가짐 같은 거 없어도 나를 포함해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된 거다.

1년 만에 촬영했더니 화면에서 부쩍 다른 얼굴이 느껴진다. 세월을 맞았다.(웃음) 세월의 바람에 다듬어지는 것 같다. 나는 빨리 나이 들고 싶다. 지금 내가 횡설수설하는 걸까? 그런데 그냥 이렇게 횡설수설 말하는 게 진짜 같다. 똑 떨어지는 대답은 뭔가 틀을 너무 정해놓은 것 같지 않나? 재미도 없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이런 점, 저런 점. 모두 내 안에 있는 것들이니.

코트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슬리브리스 티셔츠 피어오브갓(Fear of God), 팬츠 생 로랑 바이 무이(Saint Laurent by M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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