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 패턴 블라우스 앤디앤뎁(Andy & Debb).
김태훈 하이넥 니트 스웨터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문근영 에스닉한 니트 펜디(Fendi).
김태훈 체크 코트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

김태훈 네이비 하이넥 니트 스웨터, 시어링 포인트 레더 재킷 모두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하운드체크 와이드 팬츠 애드(Add), 블랙 스웨이드 슈즈 닥터마틴(Dr. Martens).
문근영 블라우스와 코트, 진 팬츠 모두 앤디앤뎁(Andy & Debb), 슈즈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멀티 스트라이프 디테일의 칼라 톱, 버튼 장식 스커트, 슈즈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문근영

자신이 나무에서 태어났다고 믿으며 푸른 피를 연구하는 과학도를 연기했다. ‘재연’이라는 인물의 첫 느낌은 어땠나?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부터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좋았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에 공감한 때문인지 배우로서 표현해보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욕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마음이 섞여 단번에 매혹됐다. 마음을 완전히 빼앗긴 상태에서 시작했다.

재연은 어떤 사람인가? 순수한 사람이다. 하지만 재연이 보여주는 순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수는 아닐 수도 있다. 이 작품을 하면서 순수가 굉장히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재연의 대사 중에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라는 말이 있는데 순수하기 때문에 오염 될 수 있고 오염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더러운 상태에 얼룩 하나 더해 진다고 그걸 오염이라고 하지는 않으니까. 극도로 깨끗한 상태에서만이 오염이 가능하고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무언가 조금만 닿아도 그 전부를 흡수해 버리는 힘을 가진다.

<유리정원>은 그간 <명왕성>이나 <마돈나> 등을 연출하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온 신수원 감독의 새 작품이다. 지금껏 보여준 신 감독의 작품은 다소 어둡고 때로 거칠다. 신수원 감독님의 작품이 어둡고 세고 약간은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딘가 찐득찐득하고 음침한 분위기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작품들을 보는 내내 따뜻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 점이 참 신기했는 데 감독님을 만나보니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작품 이전에 감독님 자체가 기본적으로 따뜻함을 지닌 분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이 궁금하다. 엔딩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는 아직 말할 수 없다.(웃음) 그 이유를 유추하며 영화를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배우 문근영 본인의 주관과 의지로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르게 말하면 대중성과 거리가 먼 작품도 선택해왔다. 내 의지대로 작품을 선택하는 건 맞다. 다만 그 의지가 대중성을 기준으로 발휘된 건 아니다. 지금까지 대중적인 캐릭터도 꽤 했지만 단지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연기한 건 아니니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단지 감정적으로 즐겁고 신난다는 의미의 재미가 아니라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역할에 끌린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쓴다고 해도 아깝지 않게 느끼는 작품을 선택해왔다.

그 때문일까, ‘국민 여동생’ 이후의 행보가 부담스러웠을 텐데 외려 더 자유로워 보인다. 사실 더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었다. 큰 성공으로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가 주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어떤 한계가 존재한다. 내가 처한 상황이나 위치 때문에 스스로 원한 만큼 자유롭지는 못했다. 크게 매력을 느끼는 캐릭터를 만나도 ‘사람들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포기한 적도 있고, 주인공이 아니라 서브 캐릭터에 꽂혀서 하고 싶었지만 방송국이나 제작사에서 ‘왜 그러시냐’며 거절한 적도 있었다.

자유롭겠다는 의지는 때로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일을 만들기도 한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모자라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정말 잘했다면 기대를 배반했더라도 관객은 ‘아, 이런 것도 이렇게 할 줄은 몰랐네’ 하고 생각했을 텐데 ‘거 봐, 안 어울리잖아’ 하는 반응이 나온다면 그건 다 내가 모자랐기 때문 아니었을까.

머스터드 컬러 니트 풀오버와 팬츠 모두 유돈 초이(Eudon Choi).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려는 욕심이 강해 보인다. 인생 캐릭터를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있나? 인생 캐릭터를 너무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게 문제다. 인생 캐릭터라는 말은 ‘내 인생에서 딱 하나만 있어도 되는 캐릭터’를 의미하지 않나. 모든 캐릭터를 그런 마음으로 대하는 게 내 문제다.

매 작품과 역할을 그런 태도로 임하는 건 배우 본인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까?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인물이 좋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문근영만이 할 수 있는 나만의 캐릭터로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고된 상황을 극복하게 한다. 이제는 고생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만들려고도 하고.

안전한 선택을 피해가는 건 배우 문근영만의 매력이다. 근데 이제는 그게 매력이 되면 안 될 것 같다.(웃음) 그동안 연기하며 안전한 상태에 있을 때 불안해했다. 차갑거나 뜨거워야 하는데 미지근한 상태에 있으면 불안한 생각이 드니까 그게 싫어서 위험을 선호한 적도 있다. ‘편하게 하자, 나를 조금 덜 괴롭히는 선택을 하자’고 늘 마음먹는데도 그게 잘 안 된다. 어려운 캐릭터나 작품에만 끌리니까. 꽂히는 작품을 안 할 수는 있다. 포기하면 되니까. 하지만 문제는 꽂히지 않는 걸 억지로 했을 때 오는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는 거다. 실제로 그랬던 적도 있었고. 작품이 잘되건 못되건 내게 남는 게 없으니 몰려오는 허무감이 나를 괴롭히더라. 분명히 열심히 촬영하고 있으면서도 그 전에 내가 더 열정적으로 빠져들었던 작품과 비교하면서 ‘지금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지?’ 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니까.

<유리정원> 다음 작품은 조금 쉽게 갔으면 좋겠다.(웃음) 다음 작품은 정해졌나? 근영 씨의 건강을 걱정하는 팬이 많다. 건강을 조금 더 회복하고 다음 작품을 선택할 것 같다. 건강은 아주아주 많이 좋아졌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린 코듀로이 수트 노앙(Nohant), 버건디 캐시미어 터틀넥 맨온더분(Man on the Boon).

김태훈

영화 <유리정원>의 ‘지훈’은 소설가이자 관찰자다. 지훈은 일련의 사건으로 주류 문학계에서 도태된 남자다. 한동안 소설을 쓰지 못하고 지내던 중 안면경직이라는 진단을 받은 그는 얼굴이 굳어가는 현상이 마치 나무와 닮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우연히 재연이 써놓은 ‘나는 나무에서 태어났다’라는 글귀를 발견하고 흥미로워하며 재연을 찾아가 그녀를 관찰한다.

그렇게 관찰하며 쓴 글이 지훈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재기하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지훈이 처음 재연을 찾아간 의도가 글을 쓰고 스타 작가가 돼야겠다는 욕심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훈 역시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고, 자신과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지닌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찾아갔던 것이라고 본다.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소설가라는 직업을 표현하는 면에서도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 직업보다는 지훈이라는 인물이 지닌 전사와 처한 환경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물 내면에 더 집중하려고 했다. 흔히 누군가 1년간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면 마르거나 피폐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이 부분을 더 고민했다. 마침 신수원 감독님이 이 상황에서 오히려 살을 찌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다. 방치된 처지를 표현하는데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살찌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웃음)

지훈이라는 인물에게 특히 공감한 부분이 있나? 나 역시 무명 배우로 지낸 기간이 길었고, 이 일을 거듭할수록 고민과 욕심이 많아진다. 잘 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진다는 점에서 공감했다. 소설가와 배우 모두 대중의 반응과 평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소설가 역시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직업이고, 주류가 되지 못할 때 생기는 고민이 있지 않나. 그때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 <아저씨>로 주목 받은 후 <도리화가>의 비열한 오 진사, <설행: 눈길을 걷다>의 알코올 중독자 등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장르와 배역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에 출연해왔다. 단 하나의 캐릭터로 대중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경험하지 못한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맡아왔다. 연기를 오래 하고 싶기 때문에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지금까지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다만 상업 영화 안에서 어떤 성향의 캐릭터를 이야기할 때 딱 떠오를 만큼의 인상 강한 배우라면 지금보다 더 폭넓게 작품을 선택할 수는 있었겠지.

이번 영화에 임하며 그 속으로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무리해서 돋보이고 빛나려는 것을 경계하며 연기하는 편인가? <유리정원>뿐만 아니라 어느 작품이건 그 안에 잘 녹아 들어가길 바란다. 그렇게 잘 녹아들면 결국 배우는 빛이 날 수밖에 없다. ‘나는 절대로 빛을 안 내겠어!’ 이런 마음은 아니다.(웃음) 작품에 희생하고 헌신하겠다는 의미와도 다르다. 그저 작품에서 나만 커 보여야겠다고 나서지 않는 거다. 그런 의도가 작품에 불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진짜 같고 날것 같은 연기는 결국 배우가 작품에 완전히 빠져 들어갔을 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연극에서 시작해 독립영화를 거쳐 상업 영화로 드라마에까지 나아갔다. 이쯤 되니 배우라는 직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나? 아니, 내가 그렇게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즘은 새삼 촬영 현장과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얼마 전 <러브슬링>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큰 역할은 아닌데 유해진 선배와 함께 작업하는 과정이 참 즐거웠다. 뭐랄까, 유해진 선배는 상대를 배우이자 동료로서 잘해준다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크게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함께 촬영하며 저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현장이 주는 에너지라는 걸 크게 느낀 적이 없었다. 당장 해내야하는 연기와 역할에 비중을 두고 현장에서 집중했던 터라 현장이 주는 에너지를 느낄 여력이나 여유가 없던 것 같다. 새삼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란 결국 소통을 위한 표현이자 이야기가 아닌가.

훗날 <유리정원>이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가? <유리정원>이 개봉할 때가 돼서 그런지 나무나 숲이 좋다. 집이 청계산 바로 밑에 있는데, 숲속에 있으면 참 좋다. 자연이 주는 위로의 힘을 새삼 느낀다. <유리정원> 역시 숲이라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특별했던 작품이다. 그 속에서 외로운 지훈에게 온전히 마음을 실었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문근영 멀티 체크 코트와 스커트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슈즈 토즈(Tod’s).
김태훈 타탄 체크 수트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블랙 니트 터틀넥 아르마니 익스체인지(A/X), 슬립온 에스티 듀퐁(S.T. Dup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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