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한예리
한예리는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홍보대사인 페미니스타로 활동했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있지만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다.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무의식 중에 페미니즘에 반하는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걱정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탓에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밴 언행이나 생각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타 같은 활동에는 전혀 거부감이 없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머리가 짧은 여자 운동선수들이 나왔는데 참 예뻐 보였다. 우리는 흔히 여학생들에게 얌전히 걷고 조신하게 앉으라 말한다. 여자답게. 하지만 여자다운 행동은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여학생이, 나아가 모든 여성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단단해진 편견에 갇히지 않고 자기답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예리의 활동 반경은 넓다. 독립영화와 상업 영화를 가리지 않으며, 여전히 무용을 한다. 무용은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5년 넘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공연을 해마다 하고 있다. “친구 한 명이 중학교 때부터 할머니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다 할머니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공연을 기획해서 해보기로 했다. 그 친구가 해금을 연주하고 선우정아, 나, 이렇게 셋이 함께 한다. 할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위안부 이슈가 널리 알려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정은 단순했다. 좋은 일이니까. 또 좋은 친구가 함께하는 일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여성에게 불공평한 일은 여전히 많다. 이제 사회 전반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시기가 왔고 그 목소리에 더 많은 사람이 귀 기울이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사회가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움직임이 금세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의 변화에 가장 빠른 속도로 반응하는 곳 중 하나가 영화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작을 계기로 더 많은 곳으로 전해졌으면 한다.” 대단한 가치관으로 세상을 대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한예리는 앞으로도 자신의 기질과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묵묵히 지켜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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