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벽의 기대
“2017년에 개봉한 상업 영화 10편을 찾아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내겐 일종의 미션이다. 지금까지 마음이 가는 상업 영화가 없어 잘 보지 않았는데 이제 좀 알아둬야 할 것 같아 그런 목표를 정했다. 지금까지 5편을 봤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5편 중에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부러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고른 게 아니었다. 상업 영화 중에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 정말 없었다. 충격적이지 않은가.” <누에 치던 방> <그 후> <초행> 등에 출연하며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해온 배우 김새벽은 상업 영화의 시스템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들, 이를테면 제작자의 요구로 감독이 바뀌거나 하는 일들이 생경하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독립영화 현장에서는 감독과 배우가 아닌 누군가가 내용을 바꾸거나 휘젓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표현의 방식이 비교적 더 자유롭기 때문에 독립영화에 마음이 더 많이 움직였다. 배우로 작품에 대한 취향을 한정짓는 일이 걱정스럽지는 않다. 연기를 시작하고 줄곧 하고 싶은 영화, 영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 그리고 사람을 표현하는 방식을 영화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결의 작품도 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독이 원하는 방향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소재와 표현 방식을 품을 수 있는 환경에서 다양한 작업이 가능해져야 한다고 본다.
“리딩 영상으로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선우’의 대사를 준비했는데 처음엔 <지구를 지켜라!>를 떠올렸다. 과거에는 작품의 장르가 이렇게나 다양했다. 난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연기만 하고 싶다. 다만 여성 캐릭터를 지나치게 대상화하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만 그리면 화가 난다. 가끔 촬영 현장에서도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일을 겪으면 답답함과 막막함을 넘어 때론 무섭기까지 한다. 언젠가 첫 촬영에 갔는데 여자 카메라 감독님이 있었다. 당연한 일인데 놀랐다. 대부분의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은 남자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놀라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앞으로는 더 많은 여성 영화인이 현장에 함께해 여성 영화인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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