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만드는 진경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배우 진경은 ‘젠더 프리’ 영상 촬영을 위해 연극 <햄릿>의 대사를 선택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여자들은 연극 무대에 아예 설 수 없었고 여자 역할마저 남자들이 연기했다. 이후 <햄릿>은 몇 편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 데 유성영화로 처음 만들어진 작품에서 햄릿을 프랑스 여자 배우인 사라 베르나르가 연기했다.
“20년 가까이 연극 무대에 오르며 남자 작가의 시선으로 다소 왜곡되게 표현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가 늘 숙제였다. 연출자와 때론 싸우기도 하고 부딪히고 설득하며 왜곡된 캐릭터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남자 배우들에게는 필요 없는 과정을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다. 20대에는 치기 어린 마음에 래디컬한 페미니스트였다. 하지만 불만을 토로하기만 할 수 없지 않나. 작품에서 표현되는 역할의 한계가 답답하던 어떤 때에는 나혜석 화가에 관심이 많아 이를 주제로 희곡을 써보기도 했다.” 영화와 연극을 막론하고 많은 작품에서 여자 캐릭터는 질투하고 음모를 꾸미는 식으로 극적 기능만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가 10년 동안 거의 매년 같은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올랐던 연극 작품은 오랫동안 작가를 조금씩 설득한 끝에 초연 때와는 크게 달라진 캐릭터로 변화시키기도 했다. 처음에는 여성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던 작가도 10년 후 변화한 캐릭터에 만족하며 동감했다.
연극을 시작으로 영화와 드라마로 연기의 영역이 넓혀지며 조연 배우로 맡을 수 있는 역할의 한계에 여자라 겪을 수밖에 없는 역할의 한계가 더해져 고민이 커졌다. 연극을 하며 늘 가져온 고민과 나름대로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해온 노력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연기할 때도 분량과 상관없이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인상적이고 납득될 수 있게끔 전달되도록 노력했다.
“작년에 저예산 영화인 <썬키스트 패밀리> 촬영을 마쳤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섹슈얼한 세계를 그리는 재미있는 영화다. 작품 자체로는 자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과연 관객이 올까 걱정된다. 돈만 좇을 것이 아니라 관객이 보다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영화인들도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장르가 다양해져야 배우가 할 수 있는 캐릭터도 더불어 다양해지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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