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건축학개론>
일단은 소주 한 병을 사.
그리고 걔네 집 앞으로 가는 거야.
가서 소주 병나발로 딱 불고 전화를 해.
받잖아? 그럼 ‘집 앞이다. 잠깐만 나와.’
그러고 끊어 딱. 그냥 끊어.
(중략)
한마디만 해. ‘널 갖고 싶었다.’
“가벼운 대사를 하고 싶었어요. 재밌잖아요.(웃음)”
“사회적으로 미투 운동을 비롯해 그동안 쌓였던 것이 한 번에 터졌다. 그런데 이 정도의 움직임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을 거라 짐작한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여러 상황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젠더 이슈는 정말 어려운 문제다. 지금 워낙 논쟁이 격양되어 있기도하고. 하지만 꼭 필요한 수순 아니겠나. 민주주의도 그랬고, 그 이전의 계급 간 갈등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젠더 문제에 대한 입장 차가 서로 큰 만큼 더 많이 논의해야 한다. 겁먹지 말고, 싸우려 들지 말고.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얘기하는 친구들과도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과 관련한 의견을 듣고 싶다.” 페미니스트란 단어에 유독 민감한 현 상황은 과거에도 다른 주제로 반복되어왔고 페미니즘은 그 과도기를 지나는 중이다. 젠더 이슈는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남성의 이야기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김여진의 생각이다. “남자라고 해서 늘 기득권만 누리고 살지는 않았다. 위험한 육체노동은 주로 남자가 하지 않았나. 남성과 체력 조건이 똑같더라도 선뜻 그런 노동을 하기 힘들 것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가 왜 약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 역시 부조리다. 여성 문제를 얘기할 때 남성은 왜 분노하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근래 김여진에게 서서히 일어난 변화가 있는데 한 주제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조심스러워졌다는 거다. 과거에 옳다고 여긴 일이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른 생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의견을 말하기보다 다른 입장도 들으며 오랜 시간 지켜보려 한다.
페미니즘과 함께 미투 운동이 부각되는 요즘, 영화나 드라마 소재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드라마 <마녀의 법정>은 성폭력을 다뤘다. 이를 다소 피상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드라마 내용 중 남자가 약물을 이용해 여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는데, 그렇다면 여자가 술에 취해 방에 같이 들어간 거였다면 성폭력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건가? 침대에 누웠더라도 갑자기 정신이 들어 관계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음에도 강제로 했다면 그것 역시 성폭력이다. 그래도 드라마나 영화가 고민을 담아 그런 문제를 다뤘다는 점은 좋은 변화다.” 다만 앞으로 그런 주제는 보다 심도 있게 다뤘으면 한다는 점이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으며,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도 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후배 여성 배우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 “후배 배우들이 일단 작품을 많이 하면 좋겠다. 실망부터 하지 말고 버티라고 전하고 싶다. 작품을 고를 때 너무 가리지 말고. 많이 해야 연기가 늘지 않겠나. 이미지 소모, 겹치는 캐릭터, 작품성 등 이것저것 재지 않고 하면 10편에 한두 편은 박수 받을 수 있다. 그러려면 체력과 강단을 키워야겠지.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재미있고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고르다 보니 작품을 많이 할 수 없었고 내 입지 자체가 좁아지더라. 어떨 때는 잘하고 어떨 때는 못하고, 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그래야 했다. 만만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돌이켜보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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