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 스케줄이 KBS 연기대상 시상식이었어요. 신인상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믿기지 않고 얼떨떨했어요.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비로소 정말 상을 받았구나, 싶었죠. 그 무대가 그렇게까지 떨릴 줄 몰랐어요. 무대 위에서 객석을 내려다보는데 <닥터 프리즈너>에서 함께한 선배님들이 눈에 바로 보이는 거예요. 너무 떨렸지만 선배님들이 흐뭇하게 웃어주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진정됐어요.
2020년에 대한 다짐도 했을 것 같아요.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서툴고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올해는 저와 함께하는 스태프들을 더 많이 챙기고 돌아보고 싶어요. 아이돌로 무대에 올랐을 때와 배우로 촬영장에 섰을 때 많은 것이 달랐어요. 달라서 부담도 많이 됐고, 드라마 촬영장에서 역할을 충실히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에 저한테만 집중했죠. 올해는 주변을 좀 더 보려고 해요.
이제는 자신에게서 좀 덜어내고 싶은 것도 있나요? 아직 덜어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할 수 있다면 욕심을 덜어내고 싶어요. 큰 욕심이 저 자신을 힘들게 할 때가 있거든요. 자꾸 되돌아보게 되고. 그런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올해는 해보고 싶은 일도 있어요. 반려견을 키우면서 유기견을 위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올해를 동명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이태원 클라쓰>로 시작해요. 소설이 아니라 웹툰을 원작으로 하면 기존 캐릭터가 훨씬 구체적이어서 배우로서 준비하기 오히려 까다로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싱크로율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제가 연기하는 ‘수아’는 원작에서는 붉은 톤의 머리를 가졌어요. 박서준 선배가 극 중 인물인 ‘새로이’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등장한 모습을 보고 저도 원작처럼 스타일을 바꿔야 하나 싶었어요. 원작을 본 친구가 왜 안 바꾸느냐고 물어볼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수아는 원작과 비교했을 때 변화가 좀 있어요. 현재의 수아를 있게한 서사가 있죠. 다른 캐릭터들은 천재, 영웅 같은 느낌이 드는 데 반해 수아는 현실적인 인물이에요. 그런 점을 보여주고 싶어요.
배우로서 때론 맡은 캐릭터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맞아요. 수아는 타인보다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자신의 꿈을 가장 우선시하죠. 늘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나만 생각해야 할 때도 필요하니까요.
이제 촬영장에 많이 익숙해졌나요? 매일 즐거워요. 전에는 긴장도 많이하고 조금 무서울 때도 있었어요. 언젠가 박서준 선배가 촬영장이 놀이터가 되어야 편하다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더 많이 대화하고 웃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 촬영장이 훨씬 편안해졌죠. 그리고 이번 작품이 <나의 아저씨> 팀이에요. 그래서 더 편해요. 제가 얼마나 많이 긴장하는지 잘 아니까 더 잘 챙겨주시거든요. 요즘은 매일 행복하게 촬영하고 있어요.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있으니 <나의 아저씨> 때 생각도 많이 날 것 같아요. <나의 아저씨>란 작품이 특히 그래요. 드라마 DVD 코멘터리를 위해 선배들을 만나 명장면을 다시 보는데 눈물이 났어요. (송)새벽 선배가 커피차를 보내줘서 촬영감독님과 인증샷을 남겼어요. 가끔 새벽 선배랑 통화하는데 지금도 여전히 감독님이라고 불러요. 아, 얼마 전에는 (김)예원 선배가 <수상한 파트너> 촬영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줬어요. 사진 속 저와 선배가 파릇파릇해 보이더라고요.(웃음) 작품을 마치고 나면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생겨서 좋아요.
오늘 문득 떠오르는 <나의 아저씨>의 장면이 있다면요? “감독님이 망해서 좋아요.” 처음에는 이 대사가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이제야 그 속뜻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번 현장에 또래 배우가 많겠어요. 그래서 현장이 시끌벅적하고 재미있어요. 마치 그룹 수업을 하는 것처럼 편하게 생각을 주고받아요. 같이 밥 먹으면서도 계속 물어보게 되고요. 어려서는 잘 못 물어봤는데 조금씩 용기 내서 제 생각을 얘기하기도 하고, 감독님이나 다른 배우들 의견도 귀 기울여 들어요. 물론 연기는 할수록 어려워요. 작품을 거듭할수록 고민도 많아지고. 계속 연기할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고민이니 행복한 거죠. 지금 배우로서 시작 단계이고 그저 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지만 늘 좋은 사람으로 살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작품을 통해 만난 선배님들이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멋진 배우가 되신 것처럼요.
연기할 수 있는 촬영장이 행복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힘든 점이 있겠죠?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여전히 힘들어요.
연기만큼 잘해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요? 연습생 때 잘해내서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습생 생활은 결국 서바이벌이잖아요. 굉장히 치열하고. 데뷔만을 꿈꾸며 엄청 열심히 했어요. 연기를 시작하고 꼭 연습생 생활을 다시 하는 기분이에요.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느낌이죠. 마치 청춘이 다시 시작된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았으니 그 청춘의 시간에는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큰 후회는 없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나요? 집에 돌아오면 매일 저를 칭찬해줘요. 주변 사람들이 매일같이 제게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않잖아요. 말하기 쑥스러울수도 있고. 지난해부터 부모님 집을 나와 독립해서 살고 있는데,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촬영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대화도 나누며 하루를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빈집에 돌아오면 너무 적막해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오늘 수고했어’ 하고 스스로 칭찬해줘요. 그럼 이상하리만큼 힘이 나요.
지금은 배우로서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는 데 중요한 시점이겠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중요하고요. 늘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런데 가고 싶은 길을 꼭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잃고 싶지 않은 점이 있어요. 함께 일했을 때 기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 오래도록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그것만은 놓치지 말아야죠.
사람들과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람이 없으면 제가 지금까지 해올 수 없었겠다 싶어요. 요즘은 문득 가끔 헬로비너스 멤버들과 싸웠던 일이 생각나서 전화해서 그때 얘기를 하며 웃기도 해요.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현장에서 만나는 새로운 스태프들과 동료, 선배 배우들이 많이 챙겨주시니까 저도 의지하게 되거든요. 저도 제가 받은 만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고 다짐하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이태원 클라쓰>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덜 후회되는 작품, 그리고 <나의 아저씨>처럼 마음이 따듯해지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해요. 오늘 아침에 일어나 제 장면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떼어 책꽂이에 꽂아놨어요. 여전히 갈 길이 많이 남았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에 이미 제게 소중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