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 국내 첫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다. 제목을 <Roommate Search>라고 지은 게 흥미롭다. 내 이미지에 맞는 컨셉추얼한 콘서트를 열고 싶어 직접 기획했다. pH-1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홈바디(homebody), 집돌이, 주황색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린다. 이를 차용하다 보니 단독 콘서트를 일종의 집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내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을 초대하는 거니까. 그래서 ‘나의 집에 당신들을 초대한다, 룸메이트가 되어줄 사람을 찾는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콘서트 소개 영상 하단에 ‘홈바디’를 시작으로 10여 개의 단어가 나열돼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적어놓은 건가?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보통 취향이나 성향이 서로 잘 맞아야 룸메이트가 되지 않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알려줄 수 있는 단어들을 적어놓은 거다. 이를테면 그중 ‘미스터 화이트(Mr. White)’는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인데, 작업실에 그의 피규어를 놓아두고 반려견의 이름까지 미스터 화이트의 딸과 똑같이 ‘홀리’라고 지었을 정도로 좋아한다.
다른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고 페스티벌 무대에도 여러 번 올랐다. 그동안 단독 콘서트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 내 스타일로 꾸미는 공연을 갈망하긴 했지만 준비가 될 때까지 하지 말자는 생각이 있었고, 이왕이면 더 많은 관객이 찾아오길 바랐다. 그래서 나와 내 음악의 인지도가 가진 몸집을 키우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았다. 이번 콘서트의 좌석이 매진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Roommate Search> 티케팅을 직접 해봤다고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예매 시작 시간에 맞춰 웹사이트에 들어갔는데, 앞쪽의 몇 좌석에 도전했다가 놓쳤고 안전하게 뒷좌석을 공략했을 때에야 비로소 성공했다. 내가 구매한 티켓 두 장을 이벤트를 통해 팬들에게 나눠 주려고 한다.
2월이면 한창 추울 시기다. 겨울에 콘서트를 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추운 계절에 하게 됐다. 그렇지만 여름이었다면 콘서트를 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듯하다. 분위기가 뜨겁고 뭔가 빵빵 터져야 여름 공연 같은데, 내 음악은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것이 많으니 여름보다는 겨울이 더 어울린다고 느낀다.
콘서트를 앞둔 기분은 어떤가? 기대되는 한편 걱정과 긴장감이 90%쯤 차지한다. 약 2시간을 혼자 채워야 하는 단독 콘서트인 만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노력 중이다. 관객이 자주 가봤을 힙합 공연이나 페스티벌과 다를 수 있게 신경 쓰고 있는데, 무대장치와 비주얼적 요소에 공을 들이고 있고 라이브 밴드와도 협업할 예정이다.
1월 9일 싱글 앨범 <Nerdy Love>를 발매했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백예린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다. 목소리가 좋고 가창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음원까지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는 아티스트와 협업하니 여러 사람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을 주제로 다루면 좋을 것 같았다. 또 내가 무의식적으로 자존감 낮은 인물의 입장에서 가사를 쓴다고 느끼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너드(nerd)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듯하다. ‘가진 게 난 없고, 아주 가끔 너도 나보다 멋진 사람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랑 말이다.
이번에도 모키오(Mokyo)가 프로듀서로 함께했다. 오랜 기간 같이 작업하며 서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내 음악의 분위기가 밝다면 모키오는 조금 어둡고 축축한 감성의 곡을 주로 만든다. 그래서 모키오는 나와 작업하면 상대적으로 밝은 느낌이 들고, 반대로 나는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 밸런스가 좋아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지난해 모키오가 전곡 프로듀싱에 참여한 첫 정규 앨범 <HALO>를 발매했을 때 상반된 느낌의 더블 타이틀곡 ‘Like Me’와 ‘Malibu’로 대중성 실험을 해보겠다고 말한 적 있다. 최근에는 대중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당시 대부분 ‘Like Me’를 선호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진한 랩을 하는 ‘Malibu’도 그만큼 인기가 있어 기분이 좋으면서도 놀라웠다. 전에는 랩만 들려주면 사람들이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용기를 내도 되겠다고 느꼈다. 힙합의 파이가 점점 커지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 그러한 생각을 반영한 곡을 발표할 계획이 있나? 콘서트 이후에 믹스테이프를 내려고 한다. 처음부터 ‘힙합 팬을 섭렵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약 10곡으로 구성할 예정이고 많은 곡이 완성돼 있는 상태인데, 거의 다 말 그대로 랩이다. 협업해보지 않은 아티스트들의 조합으로 탄생한 곡도 들어볼 수 있을 거다.
다수의 곡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참여하고 있다. 피처링 제의가 들어오면 큰 고민 없이 하고 있나?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 스스로 세워놓은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평소 그 아티스트의 작품을 인정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일단 곡 자체가 좋은지 생각해본다. 참여하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내 음악의 색을 돋보이게 하되 곡과 잘 어우러져 분위기를 살려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원래 이런 척 저런 척하지 않고 내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며 음악을 하기 때문에 여러 작업을 해도 나만의 색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 같다. 피처링을 부탁받으면 보통 당일 저녁이나 다음 날 완성한다. 몇몇 아티스트는 내가 작업을 빨리 끝낸다며 놀라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대충 만들지 않았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단골 멘트처럼 덧붙인다.
가사를 빨리 쓰는 편인가 보다. 맞다. 하지만 그만큼 비트와 피처링을 부탁한 아티스트가 그려놓은 그림이 흥미로워야 한다.
‘집돌이’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집에 오래 머무르나? 집 안에 작업실이 있고 그곳에서 모든 작업을 한다. 그래도 영감을 받기 위해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느꼈다. 가끔 놀 땐 나와 같은 하이어뮤직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을 주로 만나는데, 내가 노는 모습만 보고 ‘집돌이라고 컨셉트 잡는다’고 말하기도 하더라.(웃음)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SNS를 통해 팬들과도 교류한다. 실제로 내가 태그된 스토리를 보고 다이렉트 메시지도 자주 읽지만 답장을 많이 하진 않는다. 이 사 람에게 정을 주면 저 사람이 서운해하는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는데, 그 때문에 자책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고마운 팬들이라도 약간 거리를 두고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사람 마음이 참 어려운 것 같다.
SNS 프로필에 ‘I’m Not Yours But You Could Borrow’라는 문장이 있다. 이 또한 비슷한 맥락인가? 누가 나에게 강제로 뭔가를 하려는 순간 뒤로 빠지는 성향이 있다. ‘나는 나고 내 공간은 나의 것이지만, 너에게 어느 정도 사랑은 줄 수 있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별명 ‘홈바디’를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개인의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 것 같다.
국내 콘서트를 마친 후 3월에 <Roommate Search> 로 유럽 투어를 떠난다. 첫 지역을 유럽으로 정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가을쯤 박재범 형의 <SEXY 4EVA> 투어에 게스트로 참여하며 유럽에 처음 가봤는데 너무 좋았다. 각 도시가 예쁜 것도 그렇지만 유럽에서 공연할 때 현지 팬들의 반응이 특히 엄청났다. 미친 듯이 놀고 춤추고 난리가 난 거다. 그 순간 무대 위에 있으니 록 스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때가 그리워 유럽을 먼저 가고, 그곳에서 힘을 얻어 다른 지역의 도시들도 방문할 예정이다.
장르를 떠나 스스로 pH-1의 음악을 표현한다면 뭐라고 말하고 싶나? 고급스러운 편안함. 사람들이 내 음악을 편하게 듣고 그냥 ‘좋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짜치는 것’으로 보이기는 정말 싫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거다. 이번에 ‘Nerdy Love’가 그동안 냈던 곡들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pH-1의 음악은 언제나 지금처럼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