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마르니(Marni).

블랙 시스루 블라우스 막시제이(MAXXIJ), 팬츠 네이비 스튜디오(Navy Studio), 샌들 렉켄(Rekken).

니트 스웨터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팬츠 몽클레르(Moncler).

<어쩌다 발견한 하루> 제작 발표회가 있던 날 인터뷰했으니 거의 1년 만이네요. 맞아요. 늦은 시간에 촬영했죠.

그때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준비할 때 인물에 대해 메모를 한다고 말했어요. 첫 주연작인 <도도솔솔라라솔>의 ‘선우준’을 만들기 위한 메모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뭔가요? ‘싫어’. 선우준의 ‘싫어’라는 말에 담긴 감정을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말에도 싫다고 하고 나쁜 말에도 싫다고 하는 선우준의 마음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죠. 왜 그 말을 이렇게나 많이 하는지 생각하는 중이에요. 이 친구는 왜 이렇게 힘든 건지부터 시작해서 선우준의 거칠고 차가운 말투와 어두운 마음을 살피고, 그 이유를 주변 관계나 환경에서 찾아가며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어요. 선우준은 말이 많지 않아 대사로 전달하는 감정보다는 표정으로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메모하고 나서 더 펼쳐나가는 게 아니라 쓴 걸 다시 들여다보게 돼요.

선우준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어요? 텍스처가 굉장히 거칠었어요. 준이 말하는 언어는 굉장히 거칠지만 이상하게 부드러움이 느껴졌어요. 작가님이 대본에 쓰신 ‘슬며시 웃는 우리 준’이란 표현처럼 츤데레 같은 면이 있죠. 표현은 거칠게 하지만 부끄러움도 많고 서툰 아이예요.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부드러운 친구죠.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어요.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재미있나요? 재미있기만 할 수는 없어요. 영화나 드라마 속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인물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잘 표현해서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 된 것 같은데, 저는 아직 멀었죠.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자꾸 의심하게 돼요. 새로운 작품에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재미보다는 불안한 감정이 더 커요. 고민 끝에 완성한 인물을 현장에서 보여줬는데 감독님이 생각한 그림과 다를 수도 있고…. 다양한 카드를 들고 현장에 가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현장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전혀 없을 거예요. 그런 확신은 무엇으로부터 올까요?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보는 것으로 확신을 가지려고 해요. 그리고 슛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죠. ‘지금 이곳에서 선우준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건 나야.’ 그렇게 되새기면 촬영 들어가기 전에 위로가 될 때도 있어요. 이렇게 두세 달간 준비한 끝에 첫 촬영을 하게 되면 그제야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친 인물이 입체적으로 변해요. 입체적으로 변하는 순간이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빨리 현장에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어져요. 그래서 첫 촬영이 늘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도도솔솔라라솔>은 첫 촬영을 혼자 했어요. 몇 달간 글로 쓰고 생각한 끝에 저와 선우준이 만나는 날이었죠.

니트 스웨터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팬츠 몽클레르(Moncler).

재킷과 셔츠 모두 구찌(Gucci).

선우준을 어떤 인물로 완성하고 싶나요? 준이는 굉장한 비밀을 가졌어요. 그 비밀을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싶어요. 베일에 가려진 비밀을 교묘하게 숨기는 게 제게는 쉽지 않은 숙제예요.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분명 밝고 명쾌하고 상큼하지만 그 안에 갈등도 많이 담겨 있죠. 인물에 대한 기승전결을 잘 구축하고 싶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인 <나의 아저씨>처럼 ‘기억에 남는 드라마’라는 숲에 잘 어울리는 나무가 됐으면 해요.

시놉시스에는 선우준에 대해 ‘알바 만렙’이라고 쓰여 있어요. 실제로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 덕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작업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 같아요.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일해봤고 세차장이나 고깃집에서도 일했어요. 아마도 연기하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들을 표현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일하면서 만난 한 사장님 말씀이 제가 오디션 볼 때 큰 힘이 됐어요. 멋진 분이었는데 항상 너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가게를 벗어나면 손님과 너는 모르는 사이일 뿐이니 부당한 상황을 참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었죠. 그런데 이 말이 오디션 볼 때 생각났어요. 내가 지금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지만, 어차피 합격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 앞에 서 있는 것뿐이니 떨 필요 없다고 되뇌었어요.

오늘은 오랜만에 드라마 촬영이 없는 날이겠어요. 내일 아침부터 촬영해야 해서 드라마 의상 피팅하고 바로 목포에 내려가요. 아름다운 도시에서 촬영하다 보니 그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요.

작품을 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그러다 보면 자신을 너무 몰아붙인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어 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한 성장 과정. 고민하고 글로 적어보고 모니터링하고 다시 해보고 부딪혀보고 또 모니터링하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작품을 선택해야 할 때면 잘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스스로 저울질해봐요. 어렵고 힘들고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해보려고 해요. 로맨틱 코미디는 아직 해보지 않은 장르여서 <도도솔솔라라솔>을 하고 싶었어요. 이 다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더 크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나요? 현장은 항상 즐거워요. 이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는 슬픔보다 기쁨의 순간이 더 많죠. 한 장면 한 장면을 연기해 한 회가 되고, 그게 다시 16부작으로 완성되어가는 것도 즐거움이죠. 그렇게 완벽하게 즐거움을 느끼려는 순간 작품이 끝나요. 그러고 나면 다시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증이 생기죠. 빨리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고 싶고, 인물을 분석하며 공부하고 싶거든요. 물론 늘 즐거운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에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다 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이에요. 드라마에 들어가기 전에 혼자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많지 않고, 만나더라도 금방 헤어져요.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함께한 로운이 형과 (김)혜윤이 누나도 가끔씩 만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해요. 그래서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럴 때 로운이 형이 많이 의지가 돼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많은 위로를 받거든요.

배우의 세계에 들어와서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난 것 같아요. 맞아요. 없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로운이 형은 친형 같아요. 집도 가까워 종종 만나는데, 형이 제 얘기를 잘 들어줘요.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도 이 일의 큰 즐거움이에요. 사람들이 있어서 촬영하며 지나온 시간이 더 소중하게 남아요.

배우로서의 삶을 위해 지금의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 뒤돌아봤을 때 좀 더 어릴 때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달리는 중이에요. 작품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고 감정의 소모가 크더라도 지금은 그저 열심히 달려야 할 때예요.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늘 도전적이고 캐릭터를 만나는 과정을 즐거워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르면 저도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할지도 모르죠. 잘할 수 있는 것, 꼭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더 도전적이고, 더 많이 고민하는 배우로 살아갔으면 해요.

지난해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했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아, 그때가 제 생애 첫 화보였어요. 나중에 잡지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이거였어요. ‘어? 걱정한 것보다 괜찮은데!’(웃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게 분명 있어요. 형식적이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더 애쓰고 있고, 저만의 말투와 행동, 표정을 가지고 싶어요. 그런 점이 결국 배우가 가지는 무기가 되는 것 같아요. 저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쌓기 위해 지난 1년간 많이 노력했어요.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면 정해진 대로 연기하기보다 내 생각대로 해봐야겠다고 다짐하죠.

반면에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여전히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 문득 제 복을 올해에 다 써버린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요. 신인 배우들에게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날것 같은 거죠. 그 에너지를 기반으로 잘 성장하지 못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신인 배우로서의 가치도 사라져요. 지금 이 순간을 잘 깎고 다듬어야 오래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끔 제가 잘못 깎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해요. 연기가 어려운 점은 배움의 끝이 없다는 거예요. 부족한 점이 계속 생겨요. 그래서 스스로 배우로서의 가치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돼요. 저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싶지 않지만, 제 가치가 아직 높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많이 달리고 저 자신을 예쁘게 다듬으려고 노력해요.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 스물세 살은 참 좋은 나이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나이죠. 청춘의 시간을 잘 배우며 보내려고 해요. 서핑이나 웨이크보드도 배우고 싶고, 외국어 공부도 해야 하고, 연기 관련 서적도 읽고 싶고. 연기 서적은 틈 날 때마다 읽는데 못 읽은 지 꽤 됐어요. 계속 이렇게 배움을 갈구하며 20대를 꽉 채워 보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