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든’ 역으로 출연 중인 드라마 <오! 삼광빌라!>가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지난해 말에는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죠. TV에서 보던 장면 속에 제가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어요. 수상 소감을 말하는 것도 처음이라 많이 떨렸고요.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1987년에 열린 제1회 KBS 연기 대상 신인상 영상이 방송되었는데, <오! 삼광빌라!>에서 ‘우정후’ 역을 맡고 계신 정보석 선배님이 받으셨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선배님이 제게 다가오시더니 수상을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셔서 마치 꿈만 같았어요. 아주 행복한 하루를 보냈죠.
<오! 삼광빌라!>는 <당신의 하우스헬퍼> 이후 약 2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이자 총 50부에 이르는 장편이에요.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 처음이에요. ‘멋진 선배님들 사이에서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그만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았어요. <오! 삼광빌라!>는 2017년에 방송한 제 첫 주연작 <란제리 소녀시대>를 만드신 홍석구 감독님과 윤경아 작가님의 작품이에요. 두 번째로 함께하게 되었으니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해든은 당차고 애교 많은 성격을 지닌 인물로 아이돌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어요. 실제로 우주소녀로 데뷔하기 전에 겪은 연습생 시절이 떠올랐을 것 같기도 해요. 맞아요. 해든은 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연습생이 되지 못하고, 이후 연예기획사 직원으로 근무해요. 걸 그룹 멤버들이 춤추는 모습을 뒤에서 몰래 훔쳐보는 등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아픈 장면이 많았어요.
연습생 경험이 있어 더 재미있게 연기한 순간도 있었나요? 해든이 삼광빌라 세입자인 ‘김확세’(인교진)에게 춤을 배우는 장면이요. 저는 가수로도 활동하니 노래와 춤이 익숙하지만, 해든은 그렇지 않은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못 출 수 있을지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웃음) 실력은 모자라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다크서클까지 그려가며 촬영했죠. 다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인물을 연기하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오! 삼광빌라!>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삼광빌라라는 공간에 모여 가족을 이룬다는 점이에요. 해든은 삼광빌라 사장 ‘이순정’(전인화)이 입양한 삼 남매 중 한 명이죠. 얼마 전 언니 ‘이빛채운’(진기주)이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대본을 보니 ‘눈물짓고’라는 지문이 적혀 있었죠. 당시에는 ‘기쁜 소식인데 왜 울까?’ 생각했는데, 촬영에 들어가니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이처럼 삼광빌라에서 생활하는 해든을 연기하며 상상한 것과 다른 ‘순간의 감정’이 나올 때가 있어요. 그 감정에 몰입하려고 노력 중이고요.
한편 최근 해든이 일하는 온라인 쇼핑몰 대표인 ‘장준아’(동하)와의 케미스토리도 흥미로워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관계이기도 하고요. 30회를 넘어선 지금은 준아가 해든에게 관심이 있어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요. 대본에는 없더라도 어떻게 해야 더 재미있을지 현장에서 자주 이야기해요. 저도 아직 결말을 알진 못하지만, 앞으로 둘의 케미스트리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약 6개월 동안 촬영이 이어지고 있어요. 현장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테죠? 이제는 다들 아주 친해졌어요.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으면 연기하며 서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애드리브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힘들 때도 있어요. 함께한 기간에 비해 남은 촬영이 많지 않아 ‘끝나면 되게 허전할 것 같다’는 말도 하고요.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과 함께하며 무얼 얻고 있나요?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와요. 선배님들이 제게 여‘ 기선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알려주시기도 하고요. 거의 연기 레슨을 받는 듯한 기분이에요.(웃음)
그중 기억에 남는 레슨이 궁금해요. 해든이 패션 기업 대표 ‘김정원’(황신혜)을 친엄마라고 착각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이순정의 동생인 ‘이만정’ 역으로 출연 중이신 김선영 선배님이 “말도 안 되는 듯한 이야기라도 잘 연기한다면 사람들이 네 감정을 따라오게 될 거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세트에 오셔서 한 시간 가까이 제가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봐주시기도 했고요. 이런 식으로 많은 분들이 값진 레슨을 해주셔서 무척 감사해요.
연기를 하며 스스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연기는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가는 일이니까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여러 감정을 배울 수 있어요. ‘이런 감정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이 감정은 뭐지?’ 하고 고민하기도 하죠. 그리고 실제 제 성격도 많이 달라졌어요. 원래 표현을 잘 안 하고 낯가림도 심한 편이었거든요. 제가 맡은 인물들이 대체로 활발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오! 삼광빌라!> 현장에 가면 “점점 해든이를 닮아가는 듯하다”는 말도 자주 들어요.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기가 있나요? 성격이 마냥 밝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확실히 이야기하며 어른스럽게 무언가를 헤쳐 나가는 독립적인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판타지 장르의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꼭 오길 바라요. 평소 판타지물을 즐겨 보거든요.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해리 포터> 시리즈예요. 최근에는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발견했는데, ‘호그와트에 가고 싶었다’고 밝힌 한 독자의 후기를 보고 구매해 단숨에 다 읽었어요.
만약 호그와트에 간다면 어느 기숙사에 들어갈 것 같아요? 음…. 아마 해리가 속해 있는 그리핀도르에 가지 않을까요? 보통 주인공의 관점을 따라가며 작품에 깊게 빠지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가 영화 등을 보며 다른 세계로 가는 거예요.
배우 보나와 가수 보나 그리고 일상 속 자신의 모습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요? 한창 드라마를 찍다가 오랜만에 공연을 하면 ‘역시 재미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배우로서는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고, 무대에 오를 땐 멤버들과 함께 연습한 걸 멋있게 보여주려고 해요. 그런데 바쁘게 활동하다 보니 밖에서는 행동이 빠르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느려져요. 예전에는 편히 쉬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휴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스케줄이 없는 날엔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휴대폰도 방해 금지 모드로 설정해놓고 가끔씩만 봐요.
반대로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면도 있나요? 항상 진심을 다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먼 미래를 떠올리기보다는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하고요.
2월 25일에 데뷔 5주년을 맞아요.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느껴요. 그런데 차근차근 잘 살아온 것 같아 후회는 없어요.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요. 그동안 해온 것처럼, 현재에 충실하며 앞으로의 나날들을 보내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상상도 하지 못한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