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촬영일 기준) 일주일 후에 영화 <승리호>가 공개됩니다. 완성된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이 시기는 어떤 마음인가요? 잊고 지내다가 갑자기 떨리기 시작하는 시기죠. 촬영이 끝난 지는 한참 지났고, 후반 작업 할 때는 배우가 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잠시 잊었다가 이맘때가 되면 긴장돼요. 그 떨림은 많은 사람이 가진 기대감이 있을 텐데 그게 얼마나 충족될지에 대한 것이고요.
미리 영화를 본 입장에서 감상평을 남긴다면요? 아마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결과를 가늠하지 못한 채로 연기한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맞아요. 그래서 더 재미있게 봤어요. 특히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랐던 신이나 제가 나오지 않는 장면들을 정말 흥미롭게 봤어요. 제가 나오는 부분만 빼고요. 하하.
특히 어떤 장면이 가장 놀랍고 흥미로웠나요? 초반에 ‘승리호’의 역할과 목적과 성격이 드러나는 쓰레기 수거신이 나와요. 그 장면은 다 CG로 만들어진 건데, 사운드가 입혀진 완성본으로 보니까 가슴이 두근두근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잘 나와서 놀랐어요.
SF 영화의 실제 촬영장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 ‘현타가 온다’고 할 정도로 무의 상태에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승리호> 촬영 현장에서는 이런 괴리를 어떻게 메우며 연기했나요? 현타는 와요. 너무너무. 예를 들어 급격하게 선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라 온몸을 흔들면서 다급하게 연기하는데 옆에 스탭들은 부동자세로 절 바라보면, 그럴 땐 좀. 하하. 그래서 일단 그런 걸 못 견뎌 하는 마음가짐을 버리고 집중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보는 사람을 설득시키려면 나 자신을 설득하는 게 첫 번째거든요. 감독님이랑 얘기도 많이 했어요. 그 장면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는 감독님 머릿속에 가장 정확하게 있으니까, 이를 듣고 제가 상상하면서 구체화시켜서 연기를 하는거죠. 그리곤 계속 확인해요. ‘진짜 괜찮아요?’ 이러면 다들 괜찮대요. 그러면 ‘알겠어요’라고 하고 한 편으론 안 믿고.(웃음) 그런데 막상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더 했어야 했어요.
영화 속에서 맡은 장선장이라는 인물은 호칭 그대로 승리호의 선장, 리더예요. 그가 리더가 될 수 있던 명분이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 장선장이 제일 똑똑하고요.(웃음) 가장 커다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아요. 마이웨이 성향이 있지만, 그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고요. 저랑은 다른 사람이죠.
많이 달라요? 달라요. 저 엄청 쫄보란 말이에요.
직접 연기함으로써 SF 작품에 대해 깨닫게 된 지점이 있을까요? SF는 어떤 장르인 것 같나요? SF를 생각하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이미지, 가짜 같은 느낌이 있는데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간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끝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우주에서 아주 작게 보이는 지구, 그보다 훨씬 더 작은 인간에게 집중하는 장르니까요.
<승리호>는 국내 최초의 SF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내딛은 첫 발이 이후의 국내 SF 작품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되게 한국적이라고 생각했어요. SF인데 우리의 정서가 많이 녹아있었어요. 해외 SF 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게 한국에서 만들어지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 해보곤 했는데, 딱 이런 느낌일 것 같더라고요. 아마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들도 한국만의 정서를 가진 형태가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대가 돼요.
그 매력에 빠져서 차기작을 선택한 건가요? 다음 작품 <외계인> 역시 SF 장르예요. 그냥 운이 좋았죠. 지금이 이런 얘기들이 올라올 시기인 것 같고, 그래서 <외계인>도 만들어지는 거고, 그 와중에 전 타이밍이 좋게 합류할 수 있었어요.
필모그래피를 살펴봤습니다. 영화 <아가씨>부터 모든 작품이 나름의 의미가 있고 이를 열렬히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었어요. 이 정도면 좋은 작품을 발견하는 선구안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물론 좋은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좀 전에 운이 좋았다고 말한 거, 그게 진짜 중요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아야 할 거고, 하다 못해 촬영 스케줄도 잘 맞아야 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작이 큰 작품이었던 터라 더 큰 기회의 폭이 열린 거죠. 감사한 마음이에요.
몇 번의 인터뷰에서 ‘연기할 때마다 도망가고 싶다.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 같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말했어요. 지금도 같은 마음인가요? <승리호>때까진 그랬어요. 그런데 <외계인> 찍을 때는 그런 부분이 많이 해소가 됐어요. 작품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왜인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하는 칭찬이나 나에게 보내는 신뢰나 애정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쓸데없이 위축되지 않고 구렁에 빠지지 않고 좀 더 어깨피고 현장에 있을 수 있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몰라요. 또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지금은 괜찮은 상태입니다.
그런 마음이라니, 어느 때보다 즐거움이 큰 촬영장이었을 것 같아요. 현장에 있는 게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촬영장에서 스탭들 만나서 수다 떠는 거 너무 좋아요.
촬영장에서 인싸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하하. 구석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랑만 얘기해요.
일상의 즐거움은요? 취미생활이 자주 바뀌는 편이라 들었어요. 몇 년 전에는 게임을 즐긴다 말했었는데, 요즘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제과제빵과 재봉을 하고 있어요.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 해보는 중인데 꽤 재미있어요. 시간이 쭉쭉 가요. 코로나19 때문에 밖에 못나가서 요즘 더 심화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레몬케이크 만들어왔는데 다들 맛있다고 해줘서 뿌듯했어요.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 주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에요. 이 외에 다른 취미생활도 많아요. 독서도 하고 있고요.
최근에 흥미롭게 읽은 책 한 권을 추천해준다면요? 김초엽 작가님을 포함해 6명이 작가님이 참여한 SF 작품 <펜데믹>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많이 했을 텐데, 이 책에 재미있는 형태의 미래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재미있는 건 <승리호>처럼 결국 인간성이 전부예요. 로봇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분명히 인간이 아닌데도 인간미가 있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아요. 보면서 여러 생각을 했어요.
직접 미래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상상하나요? 모르겠어요. 저는 상상하면 다 디스토피아적으로 흘러가서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잘 굴러갔으면 좋겠다’ 이 정도의 생각이에요. 제가 상상하기 보다 누군가가 좋은 세계를 그린 게 있으면 그걸 살펴보고 싶어요.
그럼 멀리 있는 상상 말고, 당장의 내일의 기대를 해보면요? 운동하고 싶어요. 찬바람 쐬면서 달리기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일 엄청 춥대요. 그럼 아마 안 나갈 걸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