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기 사흘 오! 주인님 살바토레 페라가모 Salvatore Ferragamo 코스 COS

 

이민기 사흘 오! 주인님 프라다 Prada

베이지 스웨트셔츠, 화이트 셔츠, 베이지 팬츠 모두 프라다(Prada), 스니커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민기 사흘 오! 주인님 구찌 Gucci

체크 셔츠, 캐릭터 프린트 티셔츠, 로고 패턴 팬츠 모두 구찌(Gucci).

이민기 사흘 오! 주인님 지미추 Jimmy Choo 코스 COS

핑크 셔츠와 핑크 팬츠 모두 코스(COS), 머스터드 컬러 스니커즈 지미추(Jimmy Choo).

 

드라마 <모두의 거짓말> 이후 1년여 만의 인터뷰예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일상을 보냈나요? 오컬트 장르물인 영화 <사흘>의 촬영을 마치고 지금은 드라마 <오! 주인님>을 촬영 중이에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전거를 열심히 탔어요. 이제야 자전거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됐어요.

자전거를 타면서 알게 된 즐거움은 뭔가요? 말하자면 ‘멍때리는 것’의 즐거움.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멍하니 있지만 몸은 에너지를 쏟아내며 뭔가에 집중하게 돼요. 자전거를 타는 것 자체도 좋고, 자전거를 타며 새로 알게 된 즐거움도 있어요. 서울 근교에서도 많이 탔는데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과 소리, 온도를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배우에게는 연기하지 않는 시간도 연기하는 시간을 위해 중요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질문을 받고 깨달은 건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많이 안 해요. 좀 덜해졌네요.(웃음) 과거에는 연기하거나 연기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 외에는 인생에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자전거 타는 걸 그 자체로 즐겼어요. 1~2년 전이라면 자전거 타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니니 무의미하게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조금씩 덜어내면서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어요. 10여 년 전쯤 이명세 감독님이 잘 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진짜 쉰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이 없는 시간을 잘 흘려 보내기 위해 뭔가를 했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랐어요.

요즘은 드라마 <오! 주인님> 촬영으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겠어요. 로맨틱 코미디예요. 그 안에 판타지 요소도 있고, 가족에 대한 얘기도 있어요. 무엇보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전반적으로 내용이 밝고 코믹한 요소도 있어요. 오랜만에 코믹한 연기를 하는 거라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거예요.

극 중에서 스릴러 드라마 작가를 연기하죠? 괴팍한 인물이에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타인에게 피해주는 걸 싫어하지만 동시에 도움 주는 것도 싫어해요. 그냥 혼자 살아갈 테니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게다가 고집불통이에요. 그러다 나나 씨가 연기한 인물을 만나 그런 벽들을 하나씩 깨어나가요.

‘한비수’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다른 장르의 작품과 좀 달라요. 가령 오컬트 장르물인 <사흘>과 비교한다면 그땐 최대한 정확하게 연기 하려고 했어요. 그 회차의 특정 신에 적합한 연기인지, 관객의 입장에서 보기에 수위가 적당한지를 생각하며 정확하게 연기하려 했죠. 그런데 <오! 주인님>은 좀 더 열어놓고 연기하는 편이에요. 로맨틱 코미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두 배우의 케미이니만큼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부분이 커요. 그래서 각 배우의 취향과 성향이 현장에서 더 잘 드러나죠. 함께하는 배우들의 그런 지점들을 접할 때 재미있고요.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을 잘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부분이 있나요? 드라마 작가라는 게 극 중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어서 크게 준비할 필요는 없었어요. 다만 노트북과 좀 더 친해지려고 했어요. 제가 평소에 컴퓨터를 거의 켜지 않아요. 아예 안 하는 데 가깝죠. 드라마 작가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써봤어요. 보통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캐릭터를 떠올리며 뭔가를 끄적이곤 하는데 이번에는 수첩 대신 노트북을 이용했어요. 수첩에 적을 땐 짤막한 느낌을 적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글로 써보려고 했죠.

손으로 하는 것 중에 또 좋아하는 게 있어요? 손재주라고 할 만한 건 딱히 없어요. 그런데 지난해에는 친한 후배가 권해서 그림을 그려봤어요. 그때 백무산 시인이 쓴 ‘내가 계절이다’라는 시를 읽지 않았더라면 그림을 그릴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위로가 되기도 하고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고 채찍질해주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 시가 너무 좋아 무언가로 시를 표현하고 싶었고, 때마침 후배가 그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권했어요.

시나 소설, 영화나 음악 등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많이 접하는 것들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즐겨 하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곤 하잖아요. 가령 여행을 좋아하는 제 지인은 여행 다니면서 보는 문을 좋아해요. 그래서 항상 그 문들을 사진으로 남기더군요. 저도 제가 즐기는 것들에 영향을 받아요.

지금까지 해온 작품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나요? 의식하지 않으면 작품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히 작품을 마칠 때마다 뭔가를 남기겠죠. 그냥 연기했던 순간들이 그 자체로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때론 저보다 어른인 캐릭터를 만났을 때 무언가를 배워요.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생각과 배려를 하게 되기 때문이죠.

세월도 많은 영향을 미치겠죠? 그건 무조건이에요. 20대는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어요. 습득하고 알아가고 배우고 느끼며. 30대인 지금은 지나가는 것, 보내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에너지를 많이 써요. 20대 때 했던 연기, 캐릭터, 감정과 성향을 떠나보낸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할수록 고통의 순간이 많나요, 행복의 순간이 많나요? 재미와 고통의 반복이에요. 힘들 때가 더 많고요. 20대에는 저보다 나이 어린 역할을 하면 이미 지나온 길이라 생각하며 연기했고, 나이가 많은 역할을 할 땐 주위의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살아보지 않은 나이다 보니 호기심도 컸고요.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여러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았죠. 하지만 이제는 과연 그때만큼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 그만큼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또 저보다 어른인 사람을 연기할 때도 그 깊이를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해요. 20대에 열아홉과 스물아홉의 인물을 생각하는 것과 30대 때 스물아홉과 마흔 무렵을 생각하는 건 느낌이 달라요. 아마도 이제는 사람과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게 되어서 섣불리 캐릭터를 이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배우는 채워둬야 할 게 많은 직업인 것 같아요. 보다 다양한 감정을 채우는 것도 필요하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으면 유리하고요. 자신에게 더 채우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다들 있을 거예요. 몇 년 전에 한 선배가 자신이 점점 소모되고 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모든 감정과 일을 다 겪으며 살 수는 없어요. 비슷한 경험을 책이나 영화로 접하고 꺼내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같은 걸 꺼내 쓰게 될 수도 있죠. 그 선배가 더 이상 꺼내 쓸 새로운 것이 없어서 고통스럽다고 했어요. 그때는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를 좀 더 알게 되었어요. 저보다 어른인 인물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과 제게 없는 것을 향한 갈망이 점점 쌓여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고통스러운 부분에 대해 더 고민하게 돼요.

고통스러운 부분을 계속 이겨내야 결국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거겠죠. 그것도 결국 일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최근 읽은 책에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유토피아에 대한 글이었는데 결점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어요. 불안과 공포가 없으니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없는 세계라고 해서 행복으로만 가득 찰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에요. 배우 일도 마찬가지예요. 고통이 있으면 행복의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있기에 계속 나아갈 수 있어요.

그 행복의 순간은 언제예요? 나도 모르는 날 발견할 때. 연기력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에요. 감정적인 측면에서 나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어떤 감정을 표현하거나 대사를 연기하면서 생소한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런 지점을 발견했다는 건 사실 그 감정을 쓴 거죠. 내게 있는지 몰랐던 감정을 쓰는 동시에 내게 담기죠.

10년 후의 자신에게 더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요? 여전히 고민하는 사람이길 바라요. 그냥 있는 대로 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꺼낼 게 없어서 고민하던 선배처럼 계속 고민하고 싶어요. 이미 가진 것 중에 찾으려 하지 않고 소진되었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꺼내려 애쓰고 고민하며 무언가를 채울 욕구와 의지를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가 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