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장에 오며 다시 보니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8백50만여 명이에요. (스위스 전체 인구가 8백70만여 명이다.) 저도 왜 이렇게까지 오르는지 알 수가 없어서. (잠시 휴대폰을 본다)
지금 확인한 거예요?(웃음) 네. 제가 자주 뭘 올리진 않는데….
SNS를 즐겨 하는 편은 아닌가 봐요. 3~4년 전에 누가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제가 제 얼굴을 찍는 일도 거의 없었어요. 어색해서. 모델 할 때는 해시태그도 막 달아야 팔로어 수가 오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러네요. 저도 신기해요. 어색하긴 한데 팬분들이 봐주시니까 조금씩이라도 올리려고 해요.
많은 사람의 큰 관심을 받고,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빠지기도 했죠. 변화의 한가운데서 본인의 일상을 잘 지키려고 하는 편인가요? 아직 신인이라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과거의 내가 나인지, 지금의 내가 나인지. 두 모습 다 내가 맞긴 한데. 아직 노련하지 못한 거겠죠?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에는 뭘 자꾸 하려고 하거나,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지금 드는 생각들을 글로 써요. 마인드맵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적으면서 간결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편이에요.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혼자 음악 듣고, 걷고. 지금 제 상황에는 이러는 편이 더 맞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동화되기 쉬운 직업이잖아요. 주변 분위기에 취하기 쉬워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고 하고요. 인엽 씨는 20대 후반에 배우가 되었잖아요. 간혹 늦게 배우로 데뷔한 분들이 늦게 연기를 시작한 것이 배우 생활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해요. 인엽 씨도 그런가요? 제 바람대로 됐다면 조금 더 어릴 때 배우를 시작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주저하는 소심한 면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5년 전에 배우를 했으면 잘했을까 상상해보면 그러지도 못 했을 것 같거든요. 그때, 그 선택이 최선이었던 거죠. 그래서 지금이 좋아요. 일찍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한데 그랬으면 잃는 것도 있었을 테니까요.
당시에 왜 소심했다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중이 저를 봐주시는 일이잖아요. 처음에는 주변에 대중이 없었지만 그만큼 주변 지인들을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이 저렇게 생각하니까 그럼 나는 안 되겠구나 하는 식으로. 다른 누구보다 내 내면의 이야기를 더 들었어야 하는데, 그때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에 급급했어요. 내가 연기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그랬겠죠. 그게 소심함으로 표현된 것 같고요.
그럼에도 배우가 되고자 한 것, 배우가 된 데는 어떤 힘이 작용한 것 같나요? 합리화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만약 어떤 걸 하고 싶다면 그 이유는 그냥 ‘하고 싶어서’여야 한다고요. 이래서 하고 싶고, 이게 나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해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서, 정말 좋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왜 배우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냥 하고 싶다’고 대답하자. 정말 좋아서 하는 거니까. 근데 사람들은 늘 가능성과 확률을 따지고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가름하잖아요. 그 가운데서 ‘하긴, 이게 어려우니까’ 혹은 ‘그래, 이래서 하면 안 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합리화하지 않고, 솔직하려 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음… 오기 전에 그동한 한 인터뷰를 찾아 읽었는데, 오늘 대화가 이렇게 흘러갈지는 몰랐어요.(웃음) 되게 발랄해 보였죠?
지금 답변을 들으면서 순간순간 놀라고 있어요. 그동안은 아무래도 저에 대해 잘 모르시니까 저와 작품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오늘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며 해야 하는 질문들이 있어서 최대한 진실하게 대답하려고 하는데. 좀 밝게 할까요?(웃음)
아니요. 좋은데요. 배우가 되기 전부터 갖고 있던 자신의 것, 기질적인 면에서 배우로 살면서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면이 있나요? 저는 승부욕이 없어요.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아요. 돋보여야 한다는 마음도 별로 없고요. 내가 어떤 위치까지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많은 과정에서 누군가를 넘어서거나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최대한 조화롭게 흘러가고 싶어요. 이건 비단 배우라는 직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삶을 살고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승부욕을 가지고 누구를 이기겠다고 마음먹으면 내가 너무 불행해요. 제 성격에는 그게 잘 맞지 않아요. 그래서 승부욕 넘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엄청 단순한 게임이라도 웬만하면 그냥 못하는 척 져요. 물론 진짜 질 때도 있어요.(웃음)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거든요. 만약 내가 무언가를 잘 한다면, 드러날 때가 되었을 때 드러날 거라고 생각해요. 이야기하다 보니 단순히 긍정적인 사람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기려고 하기보다 열심히 하는 거죠.
그런 태도에 대해 혹자는 집념이, 열정이 없다고도 하잖아요.물론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내가 누군가를 밟고 일어나서 무조건 이기려 하고, 욕심내서 가지려는 것이 집념이고 열정이라면 그건 없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나 외의 불필요한 것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거죠. 사람들은 늘 수치를 가지고 이야기하잖아요. 100점, 95점, 80점… 그런 걸 떠나서 내가 온전히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만약 똑같은 선상에서 누군가와 나란히 있는데 상대보다 잘하려고 해봤자 상대가 뭘 하는지도 난 모르니까 나에게만 집중하는 거죠. 그런 편인 거 같아요. 오늘 인터뷰가….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처럼 느껴져요. 마지막 질문은 가볍게 할까요?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사소하고 작은,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은 욕심이 있다면 뭔가요? 혼자 살아보고 싶어요. 가족들이 서운해하려나….
혼자 살게 되면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어요? 요리를 좋아해요. 얼마 전에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맛있더라고요. 제가 간을 좀 잘 맞추는 거 같아요. 테이블에 그릇만 놓지 말고 테이블보도 깔고 예쁘게 세팅도 해보고 싶어요. 얼마 못 갈 수 있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