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정
재킷과 팬츠, 안에 입은 화이트 셔츠 모두 리리(LEE y.LEE y),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호정
블랙 드레스, 레이스업 슈즈 모두 프라다(Prada),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호정
이어링 일레란느(ille lan).

 

드라마 <알고있지만,> 촬영이 빨리 끝났다고 들었어요. 네. 촬영은 사흘 전에 끝났습니다. 되게 홀가분해요.

‘시원섭섭’에서 섭섭이 없어 보이는데요?(웃음) 시원해요. 전혀 섭섭하거나 서운한 건 없어요. 후회 없이 끝난 것 같거든요.

어떤 일이든 후회 없이 시원하게 보내주는 것만큼 좋은 마무리가 있을까요. 캐스팅 확답을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어요. 3개월? 4개월쯤? 그 때 제가 많이 간절했거든요. 기다리는 동안 제가 할 거란 마음으로 계속 준비했어요. 오랫동안 바라고 준비한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 후회가 없어요. 아쉬운 마음이야 물론 있죠. 그런데 제가 애쓴 시간을 생각하면서 홀가분하고 좋은 마음으로 ‘윤솔’이라는 캐릭터를 보내주려고 해요.

왜 그렇게 윤솔이라는 인물이 되고 싶었어요? 저랑 닮은 점은 없는데, 왠지 저와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솔이는 뚜렷한 사람이에요. 진로에 대한 목표가 명확하고 재능도 뛰어나요. 인간관계에서도 여러 사람을 살피기보다 우직하게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요. 캐릭터 미팅 때 제가 소나무에 비유했는데, 신기하게도 감독님과 작가님도 생각이 같으셨어요. 이렇게 우직하고 단단한 솔이를 제가 표현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했죠.

솔이를 표현해내기 위해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 목소리를 두 톤 정도 더 내리고, 붕 뜨지 않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습관적으로 툭툭 내뱉는 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말끝마다 ‘감사함다, 죄송함다’라는 인사를 붙였어요.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감사함다’로요. 여기까진 제가 준비한 거고, 현장에서 배워서 입힌 부분도 많아요. 촬영장 분위기가 진짜 열정적이고 좋았어요. 다들 또래이다 보니 서로 연기에 대한 얘기도 서슴없이 주고받으면서 즐기듯 배울 수 있었어요.

이 작품을 얘기하는 표정에서 얼마나 열성적이고, 즐겁게 임했는지 보여요. <알고있지만,>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제겐 좋은 계기로 남을 것 같아요.

계기요? 제가 작년 한 해 동안 아예 쉬었거든요. 그때 좀 힘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저도 예정된 일정이 밀리고 영화도 개봉하지 못하면서 답답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이 저한테 필요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면서 연기를 배우고,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요. 계속 다듬어 나가면서 어떤 캐릭터를 맡게 된다면 이전보다 그가 잘 보이고 이해되도록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고, 때마침 그즈음에 윤솔을 만났어요. 전과는 달라진 마음으로 만난 첫 캐릭터였고, 윤솔을 연기하면서 이제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 면에서 계기라 말하고 싶어요.

 

이호정
블랙 터틀넥, 쇼츠 모두 몽클레르 컬렉션(MONCLERCOLLECTION), 레그 워머 잉크(EENK), 스트랩 슈즈 디올(Dior).
이호정
재킷, 티셔츠, 데님 팬츠 모두 셀린느(Celine).

 

연기를 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는 말로도 이해되는데요. 글쎄요, 방식은 아직도 찾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그보다는 마음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갇힌 모습이 있었어요.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어떤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올바른 방식이라 생각했고요. 예를 들어 되게 슬픈데 스스로에게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하거나, 반대로 행복할 때도 그 정도는 아니라며 자중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표현도 한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연기를 했으니 만족할 수가 없었죠. 아마 보는 사람들도 제가 연기한 인물을 선명히 기억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제야 제 감정에 솔직해진 채로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 커요. 그땐 왜 지금과 같은 마음과 태도를 갖지 못했을까 싶은 거죠.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이미 지난 걸. 이제라도 잘해야죠.(웃음)

이제 배우라는 세계에 확신이 생긴 건가요? 네. 심지어 지금은 너무 재미있어요. 한동안은 모델과 배우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방황을 많이 했거든요. 모델은 제가 어릴 때부터 너무나 하고 싶은 일이었고, 그래서 이걸 놓으면 포기하는 거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와중에 운 좋게 작품을 할 기회가 주어지면서, 오히려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다가 어떤 스위치가 켜지는 것처럼 번뜩하는 선택의 순간이 오더라고요. 집에서 영화만 엄청 보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저기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배우라는 새로운 길에 완전히 발을 디딘 것 같아요. 물론 이후에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헤맬 때가 많았지만, 확신에 대해서 묻는다면 지금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요.

이런 마음이라면,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저도 기대 중이에요. 스스로 확신이 없어서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음을 생각하면 설레고 신나요. 저를 이렇게 만들어준 작품이 <알고있지만,>인 것 같아요.

지금은 연기에 대해서 어떤 고민에 빠져 있나요? 또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궁금하긴 해요. 솔이는 저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잖아요. 그래서 저와 닮은 캐릭터를 만나면 어떨지 궁금하고요. 단순하게는 잘하고 싶어요. 어떤 캐릭터가 와도 제 식대로 잘 소화하고 싶은 거죠. 그러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솔이는 좀처럼 웃지 않는 인물인데, 오늘 보니 이호정 배우는 유쾌하게 잘 웃는 사람인 것 같아요. 다음엔 이 호탕한 웃음을 들려줄 수 있는 인물을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으하하! 아니면 분노에 가득 찬 사람은 어때요?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듯이 뜨거운 사람도 만나보고 싶어요.

다음을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에요? 준비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윤솔의 생각과 태도가 많이 밴 것 같아요. 이를 비우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빨리 비우고 다시 저로 돌아와서 잘 살아보려고요.

잘 사는 것은 뭘까요? 으하하! 이게 배우로서도 잘 사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가족, 동료, 친구 등 모든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요. 그럼 제 주변의 모든 이들도 다같이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그걸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 그게 잘 사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