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레이블 ‘VMC’의 앨범 큐레이션 프로젝트 ‘보일링 포인트’를 통해 첫 정식 앨범 <SINCE 16′>을 세상에 내놓은 래퍼, 신스. 음악을 만난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앨범처럼 솔직했던 그와의 대화.
VMC의 앨범 큐레이션 프로젝트 ‘보일링 포인트’를 통해 지난 7월 16일 첫 정규앨범 <SINCE 16′>이 발매되었어요. 먼저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 덕분에 앨범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주신 딥플로우 오빠에게 감사해요. 앨범 발매 당시에는 세상에 제 앨범이 나온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지 못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받아서 얼떨떨하기도 하고요. 이 기세를 몰아 더 많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웃음)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작년에 제가 참여한 된 공연에 딥플로우가 스페셜 게스트였는데 제 공연을 본 후 잘 봤다고 말해 주었어요. 이때다 싶어 작업물을 공유했고 보일링 포인트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죠. 그렇게 앨범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 SINCE 16′>은 이름처럼 제가 음악을 처음 시작한 16년도부터 음악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이나 겪었던 일을 풀어낸 앨범이에요. ‘신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음악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래퍼를 하기 전에는 공무원 준비를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학교에서 행정학과를 전공하고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다른 성향의 직업이죠. 원래 힙합을 좋아했던 터라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랩을 했어요. <쇼미더머니>에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죠.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랩하던 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한 것을 후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죠. 결국 음악을 해야겠다 결심하고 바로 서울에 올라와 방을 구했어요.(웃음)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6개월 동안 돈만 벌었어요. 점점 컴피티션에 참여하면서 여러 아티스트도 알게 되고 시야를 넓혔죠. 이때부터 음악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뿐만 아니라 이전 곡들도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한 작업이 많아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즐기는 편인가요?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도 좋지만, 다른 아티스트와 한 곡에 함께 있을 때 주는 시너지가있어요. 같은 비트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고,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어 더 풍부하고 재미있는 작업물이 만들어지죠.
< SINCE 16′>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봄비 (Feat. Rakon)’와 ‘추억엔 힘이 없지 (Feat. MELOH)’를 타이틀 곡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노래 중에서 ‘봄비 (Feat. Rakon)’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가사도, 무드도 좋았죠. ‘추억엔 힘이 없지 (Feat. MELOH)’도 이와 같은 이유로 타이틀 곡이 되었어요.
평소 랩스타일과 다르게 타이틀 두 곡 모두 싱잉 랩으로 흘러가요. 원래 싱잉 랩도 구별하지 않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저를 사람들한테 처음 각인시킨 게 타이트하고 거친 래핑이라 새롭게 느끼실 분이 많을 것 같아요. 특별히 싱잉 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고 곡의 분위기에 맞춰 퍼포먼스가 달라졌을 뿐이에요.
이번 앨범 속 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가 있을까요? ‘Interlude’라는 곡의 가사가 제 이야기를 듬뿍 담아 마음이 가요. ‘닮지 않기를 바랬지 고생하는 삶 / 내 이름처럼 그냥 평범하길 근데 난 / 그렇게 살지 못해 떠났어 그날 밤에 현실은 / 네 뜻대로 안 된단 아빠의 마음엔 / 아직 그 흔적이 보여 마음이 안 놓여 위로…’ 이 부분이요. 본명이 ‘수진’이예요. 되게 평범한 이름이잖아요. 아버지가 고생을 많이 하셔서 저는 고생하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셨어요.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왔죠.(웃음)
평소 가사를 쓸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나요? 일상. 특히 힘들 때 소재를 많이 얻어요. 떠오르는 가사는 그때그때 메모장에 적어두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가사 하나하나 뱉어가면서 완성하는 편이에요. 다음 날 보고 또다시 보면서 더 좋은 표현들을 찾아가죠.
개인적으로 1번 트랙 ‘홀로 (Hol’ up)’ 중 ‘선 넘은 오지랖부터 걸그룹 힙합 제안 *발 웃겨 / 절대 그 두 개 못 묶어 놔 개 같은 버릇 못 숨겨‘ 라는 가사가 눈에 띄었어요. 본인의 이야기인가요? 네. SNS로 힙합 걸그룹 제의를 받았어요. 이때 주변에서도 나이가 적지 않은니 다른 방향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말도 종종 들었고요. 전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했죠.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여성 래퍼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요? 이야기한 것처럼 걸그룹 제의를 받는 황당한 일도 있지만 제가 여자라서 특별히 힘들거나 한계를 느껴본 적은 없어요. ‘카디 비’나 ‘메건 더 스탤리언’이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듯 여성 래퍼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죠. 성별을 떠나 각자의 실력을 증명하고, 어떤 음악을 선보일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 똑같죠. 열심히 살고, 음악이 안 나오면 스트레스도 받고.
이번 앨범의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스머글러스’라는 프로듀스 팀이랑 함께 앨범을 만들었는데, 제가 평소 작업했던 방식이랑 달라 새로웠어요. 작업 공간에 모여 그 자리에서 리듬 찍고, 피아노 올리고, 기타 올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갔죠.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신선하고 재미있더라고요.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 있나요? 요즘은 ‘500raxx’의 노래처럼 여유롭고 칠(chill)한 바이브에 끌려요.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로 자신을 표현해 두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큰 이유는 없어요. 술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스스로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웃음) 술을 많이 먹긴 하지만 ‘내가 나를 언젠가 치료하겠지’하면서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로 표현하게 됐죠.
최근 인스타그램에 <쇼미더머니10> 지원 영상을 올렸어요. 다시 지원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편하게 원하는 음악만 할 수 있지만 때로는 경쟁이 주는 에너지가 있어요. 결과가 어떻든 이 또한 경험이죠. 이런 경험이 모여 저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거니까. 아직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요.
대중들에게 어떤 래퍼로 기억되고 싶나요? 무엇을 하든 ‘나다운 래퍼’로 남고 싶어요. 랩을 하든 다른 음악을 하든 저답게 잘 소화하고 싶어요. 그냥 사람 자체가 멋있는 사람도 있잖아요.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멋있는 아티스트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아요.
30대에 들어섰어요. 20대의 신스와 30대의 신스를 비교하자면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일단 체력 차이가 커요. 원래 4~5시간 정도 잤는데 이제는 체력적으로 힘드니까 예민해지는 게 느껴져요. 살기 위해 운동하려 노력해요.(웃음) 반대로 좋은 점도 있어요. 20대에는 항상 걱정하고 불안해했다면, 지금은 ‘안되면 어때’, ‘그럴 수도 있지 뭐’, ‘지금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돼’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면서 여유로워졌죠.
불안해했던 과거의 모습처럼 지금 아티스트를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본인이 꿈꾸는 것이 있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해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많이 흔들렸었고 지금도 흔들릴 때가 있죠. 이런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다잡는 게 정말 중요하다 생각해요. 음악적인 조언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아티스트의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어야 해요. 일을 하다 보면 나를 갉아먹는 일이 많거든요. 이럴 때마다 바닥에서 다시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하죠. 꾸준히. 누구에게나 다 때가 있듯 언제 올지 모르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많은 유혹과 좌절 속에 스스로를 잘 보듬어 버텨내는 내면의 강인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후 예정된 작업이 있다면요? 8월 31일에 싱글 앨범이 곧 나옵니다. 이번 앨범이 20대의 불안과 걱정을 담았다면 새로운 싱글앨범은 ‘나 잘 될 것 같아. 지금 잘 돼가고 있어.’ 이런 긍정적인 내용을 담았어요.